냉장고 속 보리차 두 병

일상성의 가치를 그리며

by dia soleado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지는 않았지만,

방영 시에 하도 인기가 있었던 탓에

몇몇 유명한 장면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90년대를 살아온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극 속 장치 중의 하나는

'델몬트 오렌지주스' 병에 담긴 보리차였다.


"맞아. 우리 집에서도 저 병에 보리차를 담아서 마셨었어!"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냉장고 속에도 항상

두꺼운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가

두어 병씩 들어 있었다. 물이 가득 담겨 있으면 한 손으로 잡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쿠팡으로 생수를 대량 주문해 집에 쌓아 놓고 먹는 것이 흔해졌지만, 그 시절에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집에서 수돗물을 끓여 먹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우리집도 보통은 큰 주전자에 보리차를 끓인 후 식혀서 물통에 담아 놓고 마시거나 할머니께서 이따금 동네 산에 올라가 떠 오신 약수를 식수로 활용했던 것 같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니 이따금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보리차이다.


구수~하게 우려낸 보리차 맛을 그리워하며 한 번은 겉보리를 찾으려고 곡물시장을 몇 바퀴나 돌기도 했다. 시장에는 몇 블록에 걸쳐 세상의 모든 곡물이 다 모여 있는 것같이 보였는데, 아무리 물어보고 살펴봐도 내가 원하는 겉보리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큰 시장에 갔는데도 없으면 없는 것이다 하며 겉보리에 대한 마음은 포기했지만, 결핍과 갈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했던가. 덕분에 생전 안 해보던 일도 하게 되었다. 겉보리 대신 동네 마트에서 흔히 보이는 굵은 옥수수를 사다가 마른 프라이팬에 덖은 후 옥수수차를 끓여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약한 불에 팬을 올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무주걱으로 옥수수를 이리저리 굴리고 저어 덖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이걸 마시고 싶은 건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갈색 옷을 갈아입은 옥수수를 끓는 물에 와르르 부어 넣고 보글보글 노랗게 끓여 한 컵 떠 마시면 그리웠던 향과 구수함이 순식간에 입속에 확 퍼지는 것이 좋았고, 나는 이후로도 꽤 자주 가스불 앞에 서서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며 옥수수를 덖었다. 그리고 혹 한국에 갈 기회가 있으면 보리차 티백을 잔뜩 사 오곤 했다.




나는 결혼을 한 이후로도 꽤 종종 보리차를 끓였다.

해외생활 10년이 넘었지만 주방을 담당하는 엄마의 입맛이 여전히 한국생활하는 사람처럼 한식을 찾으니,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레 현지식보다 한식을 훨씬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리차, 옥수수차를 매우 좋아한다.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면 현지에서는 탈수 방지를 위해 pedialyte를 마시지만 우리 아이들은 보리차를 마셔 줘야 한다. 학교에 보내는 물통에도 생수보다 보리차를 담아 주면 좋아하고, 평소 가타부타 표현이 별로 없는 우리 남편도 어느 날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따라 마시며 혼잣말인지 나에게 건네는 말인지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 냉장고에 차가운 보리차가 있는 게 너무 좋아.




온 가족이 이렇게나 보리차가 좋다고 하니 웬만하면 끊기지 않게 준비해두고 싶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수고하고 집에 돌아온 가족들이 언제든 냉장고를 열면 차가운 보리차 두어 병이 들어 있어서 꺼내 마시며 하루의 시름을 씻어버릴 수 있도록.


그런데 그게 왜 이리 쉽지 않다는 말인가.


우리집에서 가장 큰 냄비 한가득 보리차를 끓이면 에누리 없는 딱 두 병의 보리차가 나온다.

그리고 대부분 하루 반나절 정도 만에 그 두 병이 모두 소진된다. 이러한 패턴에서 보리차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려면 나는 거의 매일 보리차를 끓여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여간 쉽지가 않다.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 루틴에 매일의 지속성을 부여하 못하고 있는 것에 하여 때로는 황당하고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엄마, 보리차 없어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응. 없어, 오늘은."이라고 답해야 할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 냉장고 속 보리차 두어 병이 떠오른다.


냉장고 문을 열면 사계절 내내 들어 있던 보리차.


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그걸 항상 준비하셨던 건지.

때로는 귀찮지 않았을지. 수 십 년이 지나서야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어떻게 우리집은, 갑작스러운 친구의 방문도 그저 반가움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늘 그리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지, 어떻게 배고플 때 기다림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국이나 찌개나 반찬이 항상 있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보리차는 또 당연했는지.


우리의 부모님들은 어떻게 그 일상의 항상성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었는지. 식구들을 건사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시절의 당연함에 새삼 존경심을 갖게 된다.


오늘은 얼마 전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결명자차 티백으로 조금 수월하게 또 한 냄비 끓여서 냉장고에 쟁여 두어야겠다. 시원한 고향의 차 한 잔에 하루의 수고가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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