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깨끗한(척 하는) 사람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SF/개그 활극 '은혼'. 하나의 굵직한 스토리라인은 있지만 일상편에서는 성역없는 온갖 패러디와 디스, 병맛 개그로 가득 차있는 정신없는 작품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셔도 좋겠다.
각설하고, 은혼의 에피소드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편집부가 실시한 캐릭터 인기투표를 거쳐 나온 인기순위를 토대로, 각 등장인물들이 좀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였다. 애니메이션 기준 182~184화.
이 에피소드에서 각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공격해 추한 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상위권 캐릭터의 순위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온갖 중상모략을 서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인기 캐릭터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관 밖으로 나가 원작자를 습격(...)하는 행위까지 벌인다.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주요 캐릭터들. 그런데 이런 피 튀기는 싸움이 펼쳐지는 와중에도, 순위가 떨어지지 않고 현상유지되는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평소에도 온갖 저질 개그를 담당하던 캐릭터, 콘도 이사오(위 사진에서 대자로 뻗어있는 인물). 저질개그가 아이덴티티 중 하나인 은혼에서도 상당히 막나가는 축에 속하는 캐릭터다. 저렇게 추한 꼴이 됐음에도 순위가 저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저 캐릭터가 '원래 저런 캐릭터'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더러운 캐릭터였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네거티브 진흙탕 싸움에 있어서는 저 녀석을 따라갈 캐릭터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 에피소드는 상상도 못한 반전으로 마무리되지만,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 얘기를 하려고 너무나 먼 길을 돌아왔다. 이번 대선은 양강 후보로 언급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에게 심각한 도덕적 흠결이 있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정치인 중에 '뽑을 놈이 없다'는 말은 모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공약이 아닌 네거티브 추문 싸움으로 흘러갔던 선거가 또 있었는지 싶다.
당장 대통령 선거까지 3주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이 후보들이 무슨 공약을 내놨는지 도무지 머릿속에 남는게 없다. 선거를 하겠다는 건지 개싸움을 하겠다는 건지. 오로지 남는건 대장동, 무당, 혜경궁 김씨, 김건희 파문, 막말, 가족문제, 신천지... 누가누가 더 저질인지 대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이런 와중에도 누군가 뽑히긴 할테니, 지지율 추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아직까지 TV토론이 몇 차례 남았고, 이 정도 차이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수치니 속단하기는 이르다.
사실 윤석열 후보는 이번 대선이 정치인으로써의 첫 행보다. 그 동안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정치판에 기웃거려본적 조차 없는 정치 초짜다. 일생을 검사로만 일해왔기에 경제나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없어 보인다. 청약 만점이 몇 점인지도 몰랐고, 주 120시간 노동을 허가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윤석열 후보와 반대로 이재명 후보는 2006년 무렵부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다면 굵고, 없다면 없다. 당내 주류로 분류되지 않았기에 일단 민주당에 적을 두고는 있었지만 사실 이렇다 할 정치적 기반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필터 없는 언행으로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고, 가족을 둘러싼 문제도 그의 비호감 이미지에 한 획을 추가했다. 그럼에도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당시 높은 공약 이행률로 업무능력 하나는 인정받았다.
완전한 정치 초짜 윤석열과 실무능력 하나는 검증된 이재명. 사실 후보 무게감만 놓고 보면 이 싸움은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 이 후보는 윤 후보의 지지율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 왜 그럴까?
지난 2019년, 대한민국 청년 세대로 하여금 문재인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만든 사건, 이른바 '조국 사태'. 깨끗한 척, 도덕적인 척 하던 문재인 정권도 결국 똑같은 비리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사실 필자는 소위 말하는 '윗분들'은 좌나 우나 가리지 않고 썩을대로 썩어있다고 믿는다. 10명의 높으신 분들이 있으면 그 중 9명은 부패했고, 1명쯤은 덜 부패했을 것이다. 사실 털어서 먼지 안나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다들 암암리에 쉬쉬하면서 들키지 않게 서로 모른 척 하고 있을 뿐. 이 나라... 아니, 이 세상은 그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 냄새라도 맡으려면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서 인맥을 잘 쌓거나, 처음부터 부모님을 잘 만나야 한다.
어쨌거나 그렇게 모두가 썩어있는 와중에, (자칭)진보정당과 (자칭)보수정당은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점을 보인다. 둘 모두 썩어있지만, (자칭)진보정당은 평소에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척, 깨끗한 척, 도덕적인 척 한다. (자칭)보수정당은 뻔뻔하다. "내가 썩어있는데 국민 니들이 어쩔건데? 니들이 선택한 국회의원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ㅋㅋㅋ" 이러는 것 같다.
'조국 사태'가 집권여당이던 (자칭)진보정당에 더욱 치명타로 작용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깨끗하고 도덕적인 척 하던 그들의 민낯이 드러나니 국민들의 실망감이 더욱 컸던 것이다. 차라리 원래 더럽고 뻔뻔한 스탠스를 취하던 정당이었으면 '에휴 니들이 그럼 그렇지'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랬으면 '촛불 정신'으로 세워진 문재인정부의 탄생 자체가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특혜수주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던 박덕흠 의원, '이부망천' 발언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정태옥 의원, 당직자 폭행 논란을 빚었던 송언석 의원. 모두 스리슬쩍 국민의힘으로 복당조치 됐지만 그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도 않았고, 지금은 이들의 이름이나 발언을 기억하는 국민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왜냐고? 국민의힘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비호감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자칭)보수정당은 오래 전부터 막말이나 추문이 있더라도, '그들이 집권한 시기에 경제는 살리지 않았냐'는 이상한 프레임이 있어 지지를 받아왔다. 오죽하면 2007년 제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비호감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두고 "OO하면 어떻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유행어가 밈처럼 확산됐었을까.
이제 결론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번 대선은 각 후보 간의 공약대결이나 검증보다는 상대의 추문 들춰내기 중심의 네거티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란게 원래 이런 거라고? 사전적 의미의 정치는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인데... 대한민국 정치판이 천박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거나, 이런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가면 과연 유리한 것은 누굴까? 불리한 쪽은? 당연히 평소에도 뻔뻔하고 지저분한 이미지였던 세력이 더 유리하고, 평소에 깨끗하고 도덕적인 척 하던 세력이 불리할 것이다.
사실 양강 후보 중 누가 정권을 잡아도 차기 정부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뒷수습도 해야 하고, 문재인정부가 확실하게 조져놓은(..) 부동산 정책도 수습해야 한다. 이 밖에도 외교-안보-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양강 후보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됐건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고, 이번 투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중차대한 한 표가 될 것이다. 필자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그나마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