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금쟁이 Dec 05. 2021

포유류 다이빙 반사 (반응)

부재 : 내면을 스캔하라!

“ 다이빙이 생계이신가요? "

“ 안 하면 죽을 것 같고 그래요?"

“ 이거 꼭 해야겠어요? 그렇게 사랑해요? "


         새초롬한 젊은 이비인후과 의사 양반이 내 코에 이관 검사를 한다며 무려 20센티나 되어 보이는 카메라를 콧구멍에 쑤셔 넣으며 한 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붓는다. 이 사람은 애초부터 나의 대답을 들으려는 의지가 없다. 콧구멍 안에 마취까지 해놓고, 고개를 쳐들고 구멍 안으로 한없이 카메라를 쑤셔 넣고 있는데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들으려는 의지가 없는 그에게 나도 애써 대답하지 않았지만, 생계냐는 질문에는 답을 듣고 싶었는지 검사가 끝나고 재차 묻는다. 그리하여 생계도 아니고 해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이관이나 고막에는 문제가 없어서 이퀄라이징 – 바닷속으로 내려갈 때 생기는 압력을 맞춰주는 작업 –이 신체적으로 안 되는 사람은 아니라는 판명을 받았으나 급성중이염이니 3주간 다이빙 금지와 일주일치 먹는 약을 처방해주셨다. 


꼼짝없이 3주간 바다와 짜이찌엔. 세이 굿바이! 강제 이별. 


       누군가 그랬다.  바다가 거는 주문에 빠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젊은 의사 양반이 이 주문을 받았더라면 다이버나 해녀 할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좀 더 호의적인 처방을 주지 않았을까, 아니 이 주문을 받으라는 저주를 내뱉고 씁쓸히 병원을 나섰다.   


       프리 다이빙을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다이버 자격증을 신청해서 강습을 받고 도전했지만 동기 4명 중 혼자 똑 떨어졌다. 일찌감치 몸으로 하는 건 찐으로 못하는 편이라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막상 혼자 떨어지니 뭔가 낙오자처럼 무능력해 보이기도 한다.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핀잔에 특강까지 받고 있는 나에게 급성중이염이라는 진단과 의사 선생님의 걱정인지 위안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구박을 받고 나니 조금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이다.  


         잘하지 못하는 것들만 골라서 좋아해 왔고 재능은 없지만 근성은 있어서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편인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못하게 됐다는 자괴감.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내 몸과 나이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나마 조금의 위안이 되었던 건 올해는 늦은 장마가 시작되어 내 다이빙 금지 기간 동안 모든 이가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쯤....   


         프리다이빙 자격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PADI 초급 다이버에 도전했다. 실내풀에서 1분 30초 숨 참기와 25미터 잠영하기 그리고 마지막 해양에서 10미터 줄을 잡고 내려갔다 오는 프리 이멀전과 덕 다이빙으로 줄을 잡지 않고 내려갔다 오는 콘스탄트 웨이트 다이빙에 성공하면 초보 프리다이버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어떻게 숨을 1분 30초나 참느냐는 거였는데, 기적처럼 2차 시도만에 나는 무료 2분 35초를 참았고, 잠영 25미터도 거뜬히 성공하였다. 흔히 프리 다이빙은 체력이 20%, 정신력이 80%라고 한다. 침착하게 내 몸을 스캔하고 몸에 스트레스를 줄이고 긴장 없이 평온한 상태로 만들어줘야 숨을 오래 참을 수도, 깊은 수심까지도 내려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도와줄 수가 없고 오롯이 자신에게 달려있는 일. 


       자신을 수양하는 내면 성찰 스포츠. 내면을 스캔하라니… 이것은 요가나 명상에서만 들을 법한 말 아닌가. 하지만 숨 참기 시도에서 이 말은 마법처럼 통하기 시작했다. 30초도 못 참을 것 같았는데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내 머리부터 가슴 어깨허리 다리 발끝까지 스캔하며 긴장을 완화하자, 숨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온 몸뚱아리가 평온 해졌고 2분 35초라는 기록을 남겼다. 미용실 샴푸 시간에도 힘 좀 빼라고 구박받던 내가 말이다. 


이것은 나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더 신기한 사실은 포유류 다이빙 반응이라고 물속에 들어가면 인간에게는 어떤 신체적 변화들이 생긴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말초혈관이 수축해서 뇌와 주요 장기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한다 거나 심장 박동수가 감소한다. 적혈구를 방출해서 체내에서 더 많은 산소와 결합해 숨 참는 능력이 향상되는 일 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포츠 중에 하나라는 프리 다이빙에 이렇게 귀여운 이름의 논리가 붙다니. 

사랑스럽다.  


         내면을 스캔하고 인체의 신비 같은 논리를 이론적으로 배우고 나니 자신감 +1 이 상승하는 것 같았지만, 실내를 떠나 바다로 가자 그것이 주는 공포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은 너무나 위험한 곳이고, 항시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걸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자연 앞에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실내에서도 발이 닿지 않으면 공포감을 느꼈는데 정말 조류에 어디 떠밀려가지 않을까 하는 근심 걱정에 몸은 잔뜩 긴장했다. 설상가상 시야도 좋지 않았고, 수심 4미터만 찍어도 바늘로 귀를 찌르는 고통에 금방 올라와 버렸고 나는 그렇게 실격했다.   


        해양 2차 시도 도전 전날 밤. 나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프리 다이버가 되겠다고 서귀포 끝자락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그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는 범섬.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의 섬까지 용감무쌍하게 떠난 처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꿈. 새벽 3시. 눈치 없이 퍼붓는 빗소리마저 야속하게 들리고, 아프다고 할까. 회사에 일이 생겼다고 할까.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할까… 기껏 머리를 굴린다고 굴린 게 엄청 티 나는 핑계만 잔뜩 떠오른다. 그리고 이내 다짐했다. 욕심 내지 말자. 무리하게 시도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살아서만 돌아오자고..


        범섬. 멀리서 볼 때는 몰랐었던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는 모습과 엄청 난 높이의 절벽 그 웅장함과 위용에 감탄하다가도 또다시 주눅이 잔뜩 들었다. 몇 번의 시도가 계속되었지만 10미터는커녕 5미터 지점에서 계속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귀가 아픈 건 아니었고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다. 아드레날린은 위험했다. 수심 6미터 지점이었던가… 침착하자 나는 2분 35초나 숨을 참을 수 있는 처자가 아닌가. 다시 침착하게 나는 괜찮다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자 긴장이 풀리고 7미터, 8 미터, 9 미터, 그리고 10미터 성공!  7 미터 이하부터는 물의 온도와 소리 색깔마저 틀린 것 같았다. 뭐랄까 다른 Universe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 수심 10미터에서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평화로운 바닷속에 오롯이 해양 생물들과 나뿐.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존재하는 기분. 말과 글로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이나 수능시험 만점자의 인터뷰 18번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고들 하는데…. 살면서 절대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말을 불혹의 나이에 시작한 프리 다이빙에서 깨닫게 되었다.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안에서 침착하게 내면의 평화를 찾아야만 가능한 일. 


        프리 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친구나 회사 동료들의 첫마디는 무섭지 않느냐이다. 왜 그 무서운 걸 하느냐. 위험하지 않느냐고 한다. 맞다. 불혹의 이 초급 프리 다이버도 여전히 바다가 무섭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조금 더 편안하게 다이빙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바닷속의 경이를 오롯이 느끼며 자유롭게 다이빙할 수 있는 날을 매일 같이 꿈꾼다.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 작금의 강제 감금 시대에 사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건 내면의 평화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 아닌가.

 

작가의 이전글 손가락은 기억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