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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Mar 18. 2022

죽을 고비

        나른한 점심. 강제 감금의 시간들이 지속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세계 곳곳에서 테러와 전쟁. 각종 사고의 위협 속에서 살던 어느 날. 이제는 언제 어떻게 죽어도 놀랍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가 폭파되거나 조종사의 고의 추락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달리던 버스에서, 평온한 오후의 커피숍에서, 마라톤을 하다가도 뜬금없는 폭탄 테러가 터지기 일쑤인 세상에서 살던 시절. 그때 내가 생긴 버릇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세상! 하루하루 열심히 재밌게 살아보자는 파이팅 넘치는 다짐이 아닌 " 집 청소"였다. 집을 나서는 날이면,  다시 못 돌아올 것을 대비하여 깨끗이 방과 주방을 정리하고 나의 재정 상태를 가족들과 공유한다. 생뚱맞은 빚 공개에 가족들은 당황하지만 내 앞으로 된 사망 보험금의 액수에 놀라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집 청소를 할 때의 내 마음 가짐이란... 뭐랄까.. " 죽은 자의 집 청소 "라는 베스트셀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고 할까.. 내가 돌아오지 않는 내 방의 한 켠 한 켠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굳이 들어내고 싶지 않은 나의 평소 청결 상태와 됨됨이가 드러날 생각을 하니 아찔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또 나는 강제 미니멀 리스트가 돼 보기로 결심을 하기도 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가족들의 핀잔이 나의 이 허무맹랑한 상상의 나래를 잠재우며 애꿎은 "집 청소"라는 버릇만 남겼다.

        

          "테러"라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위협을 조금 벗어나니 이제는 역병의 시대가 도래했다. 역사책에서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만 보고 듣던 흑사병, 콜레라, 스페인 독감.. 등등  정말 역사에서만 있을 법한 역병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제 40년 넘게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겪는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역사의 순간에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 코로나 시대에,  돌이켜 보면 초창기에는 확진자가 나온  건물 근처에도 못 갈 만큼 위협적이었는데 이제는 주변에 확진자가 없으면 친구가 없는 것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오늘의 확진자 수가 제일 적은 확진자 수가 되었다.  


          나는 최근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예측 불가능한 테러의 위협에서도, 지난 24개월 범유행 전염병 공포 속에서도 무탈하던 내가 말이다. 첫 번째 고비는 프리 다이빙을 시작하고 용감 무식하게 따라나간 첫 번째 번개 모임에서이다. 서귀포에 위치한 태웃개라는 곳에 따라나섰다가 물속에서 나의 버디도, 강사님도 잃어버리고 혼자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파도는 나를 바위들이 산적한 곳으로 계속 떠밀었고 바닷물을 한 사발 들이마셨을 때쯤  "아, 나는 이렇게 곧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사실 너무 당황해서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나는 곧 죽을 목숨이라는 공포와 대면했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목덜미를 낚아채셨다. 번개를 주관했던 강사님이었다.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이렇게 혼자 여기까지 오면 어떡하냐는 핀잔을  받았지만 " 아 나는 이제 살았구나 " 하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두 번째 고비는 커다란 초보 운전 딱지를 붙이고 애월의 어느 시골길을 운전하던 중에 일어났다. 시속 30킬로도 밟지 않고 운전하던 나는 뒤에 따라오던 차들이 얼마나 욕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 바로 그 찰나에 " 쾅 " 하는 소리와 함께 운전석 앞으로 남색 BMW 스포츠카가 나를 들이박았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조석에 앉아 있던 지인의 고함 소리와 붕 뜨는 순간을 목도하며 "이게 뭐지.."라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차가 부딪혔을 때 나는 충격과 굉음이 그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내 두 팔과 내  두 다리, 내 머리  내  몸둥아리...내 사지가 온전하다라는 걸  확인한 순간에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아 나는 이제 살았구나.."


        짧은 기간 동안 나는 무려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희한하리만큼 그 찰나의 순간은 모든 게 슬로오 모션으로 너무나 선명하게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마음에 아로새겨져 있다. 보통 죽일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다고들 한다. 이 소중한 목숨을 다시 얻었으니 더 즐겁고 더 재밌게...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고비들로 인해 다시 다이빙을 갈 수 있을까? 다시 운전을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나를 더 압도하고 있고 그것들은 트라우마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되어 내 세포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있다가 또 일어나지도 모른다는 미래의 공포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방법은 없다. 아니 나 스스로 이겨내지 않으면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겨낸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고 내 마음 가짐 하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제주 아일랜드에서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에서 차 없이 사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고립이다. 


사고가 나고 그렇게 석 달이 흘렀다.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방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조급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6개월이 됐던, 1년이 됐던 내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려주자...


이것은 고비일 뿐이고, 이 고비를 넘기면 생은 계속되지 아니한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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