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다니던 호텔업계를 그만두고 럭셔리 업계로 이직했다.
43년 인생에 서울 생활은 처음이다.
그렇다. 내 나이는 43세다.
나는 정말 도전적 여성이었나? 뒤돌아 보니 정말 대단한(?) 도전이었다.
내가 잘하고, 잘할 수 있고, 심지어 싫어하지도 않던 호텔 일이었다.
이렇게 계속 혼자 살게 되면 총지배인까지 올라가 보고 싶던 일이기도 했다.
나는 부유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 한국에도 이런 동네가 있나 - 하는 산동네에서
태어났다. 즉, 앞으로 60살까지 밥벌이는 나 스스로 해야 되는 삶을 살아내야 되는데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업계의 경험을 쌓는 것도, 서울의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 단 하나였다. 인상된 연봉은 서울 월세로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으니 금전적으로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제 8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나는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아직도 고비를 넘기는 중이다.
일 년만 견뎌보자 하는 마음으로.. 6개월 남았다, 5개월 남았다. 이제 곧 4개월만 견디면 1년이다.
이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끝지점을 정해놓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혐오한다.
생산적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개념을 탑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게 영화를 보단던지, 책을 읽는다던지 하는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한량스런 운 삶을 사는 게 나의 인생목표지만, 게으른 삶을 못 견디는 건 나의 성정이다.
그러던 내가 40을 넘으며 생긴 노화작용인지도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 침대 위에서 일어날 엄두도 내고 있지 못한다. 지지난주도, 지난주도. 그리고 오늘도 하루종일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입사 4개월 차에 번아웃이 왔다. 몸에 에너지가 고갈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몇개월간의 걸친 극심한 야근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돌아오는 건 - 넌 뭔가 부족해 - 하는 눈빛과 - 넌 뭔가 눈치가 없어- 라는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
이 업계에 들어와서 내가 가장 주의하는 건 자존감 지킴이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대화법이다.
정신 바짝 붙잡고 있지 않으면, 내 자존감과 자신감을 묘하게 흔들어 놓는다.
나는 회사에서 부쩍 말이 없어졌으며, 내 의견을 어필하길 포기했다.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걸...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오히려 내가 여기 와서 하는 일은 대리급정도의 일에 불과하다.
불필요한 에너지와 프레셔를 쏟아붓고 코너로 몰아넣는다.
다행인건, 나는 저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무너져버릴 만큼 약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들보다
나에게 관심이 더 많을뿐더러, 나를 위로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법을 안다. 다만 내가 힘든 건
나를 위로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못할 만큼의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다는 거.
새벽에 발레학원을 다니고 종종 피아노를 치러 다니고, 늦은저녁 수영을 하러 다니고 매주 연극과 공연을 보면서 내 영혼에 위로를 채워넣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또 어둡고 외로운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갈 것이다.
이제 4개월만 견디면 1년이지 않는가.
내가 왜 이런 뜬금없는 이직 결정을 했는지, 이 결정을 통해 내가 얻는 것과 잃은 것.. 남은 건 무엇인지는
먼 훗날에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