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 떠나지 못했을까

by 기어코
5년 뒤, 해외의 한 카페.

누군가의 일상 속에 잠시 섞여든 이방인처럼, 나는 구석 자리에 노트북을 펼쳐 둔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상관이 없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울린다. 문장이 막히면 턱을 괴고 창밖을 본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그 말들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들 역시 내 노트북 속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괜찮다. 나는 더 자유롭게 쓴다.


나는 종종 이 장면을 상상한다.


그곳에서의 나는 전형적인 사회적 기준을 다 내려놓은 사람이다. 쌩얼인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 사회적 지위가 어떤지,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졌는지 아닌지 따지지 않는 사람. 그저 한 도시를 살아내며, 내 속도로 글을 쓰는 사람.


그런데 나는 아직 그 카페에 없다. 3월 1일부터 다시 학원에 출근하는 선생님이고, 돈도 모아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피부가 약해서 낯선 도시의 물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떠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직 떠날 준비를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떠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언젠가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며,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생각을 정제해 꺼내놓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닿고, 온라인 어딘가에서 그 생각을 두고 수다를 떠는 삶. 그게 내가 꿈꾸는 여행이다.


그래서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기록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 채널은 거창한 여행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떠나지 못한 날들의 기록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주, 아주 구체적으로 그 장면을 떠올린다.


어쩌면 이 글들은 어딘지 모르는 그곳으로 가기 전,

나에게 건네는 예행연습 같은 기록이 될 것이다.




[내가 믿어온 것]

- 떠남은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만 할 수 있다


[내가 기어코 선택한 것]

- 완벽하지 않아도 기록 시작 (브런치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