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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an 11. 2024

묵은지 만두

새해 복만두 받으세요~

어릴 적엔 엄청 추운 날에 옷을 단단히 무장을 하고 마당에 김장 재료를 들이고 해가 들지 않는 쪽의 마당에 언 흙을 삽으로 파내고 항아리를 묻고 김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도 작더라도 마당을 가지고 주택에 살던 때여서 그 연례행사는 전 국민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추울 때 하지 않으면 백 포기나 되는 그 많은 김치를 겨우내 보관할 수가 없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 살며 김치냉장고가 항아리를 대체하면서 점점 김장을 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서 연초엔 그냥 먹기엔 맛이 없는 묵은지가 많아지고, 슬슬 겉절이나 생채 같은 신선한 것들이 먹고 싶어 진다. 묵은지의 활용도야 넘치고 넘치지만 묵은지의 가장 화려한 변신인 만두를 만들기로 한다. 만두는 무엇이 들어가도 간이 안 맞아도 모두 다 맛있으니 만두의 정확한 레시피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남은 쿰쿰한 묵은지 두 폭의 속을 털어내고 물에 헹구고 한 10분쯤 담가 시큼털털한 냄새를 빼주고 꼭 짠다.

돼지고기 간 것 1근(600g), 쇠고기 간 것은 반 근 정도의 비율로 섞고, 시판 숙주나물 한 봉지를 데쳐 꼭 짜고, 부추도 있으니 한 손에 쥘 수 있는 만큼 넣어주었다.

쫑쫑썬 파 한 대접, 다진 마늘 수북이 한술을 넣고, 묵은지를 깨끗이 씻어냈더니 허여멀겋게 돼서 고춧가루도 한술, 진간장 두 술과 소금반술을 넣어 간을 한다. 간을 한다기보다 조미료처럼 감칠맛을 더하는 정도이다.

묵은지 만두는 김치가 많이 들어가니 씻어낸다 해도 스스로의 간으로 알맞고, 만두는 초간장을 찍어먹으면 별미이므로 간을 신경 쓰지 않고 대충 한다.

고기와 김치 맛을 완화할 요량으로 당면도 한 줌 삶아 잘게 썰어 넣고, 시판 큰 두부 한모도 넣는데 너무 꽉 짜내면 빡빡하고 부드럽지 않아서 물기를 대충 빼고 넣었다.

부추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고 잘 버무린 후 마지막에 부추와 참기름을 한 바퀴 휘이 둘러 버무려 만두소 만들기를 완성한다.

만두소를 만들 때 꽉 짜고 다지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어 버무리기를 하고 나면 손가락과 손목이 아파온다.

속이 완성되면 집에 있는 모든 이의 손을 빌어 만두를 빚는다. 요즘은 주로 남편과 둘이 빚는데 남편은 국에 넣을 동그란 모양의 만두를 빚고, 나는 구워 먹을 기다란 모양의 만두를 빚는다.

만두피는 키친타월이나 깨끗한 면포를 물에 적셔 덮어놓고 만두 빚기를 하면  만두피가 촉촉하여 만들기가 좋다. 이런저런 얘길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쟁반 가득 빚어지면 긴 만두는 찜기에 올려 10분간 찌고, 동그란 만두는 멸치육수가 끓을 때 국간장 조금과 소금으로 슴슴한 밑간을 하여 만두를 넣고 바닥에 붙지 않도록 살살 저어주며 끓여주다가 만두가 동동 떠오르면 다 익은 것이다.

만두를 완전히 식힌 후 냉동실에 얼려두고 만둣국으로 끓여 먹고 전골도 해 먹고 긴 만두는 출출한 밤에 자글자글 구워서 초간장에 콕 찍어 먹으면 야식으로 최고다.

많은 품을 들여 빚어진 맛있는 만두를 먹는 것은 다 먹도록 마치 행복한 복주머니를 먹는 기분이다. 마지막 냉동만두를 털어 먹을 땐 참 아쉽지만 한동안 다시 만들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연초엔 집만두를 먹어줘야 제 맛이다.

“아이코! 손목이야!”

파스를 미리 사두는 걸 잊어버렸네~

찐 만두는 예쁜 모양을 유지해서 마치 시판 만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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