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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ul 03. 2024

사랑을 느낄 때

SNS 세상 속에서 2.. 그리고 브런치 생활 하반기


싸이월드. 프리첼. 다음 카페.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메일을 주고받는 것을 제외한 나의 SNS 살이가 시작된 건 2000년도쯤이었다.

모르는 사람과의 친분이 생기는 SNS 세상은 참 신비롭고, 재밌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SNS상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인간관계였다.

접속하지 않고, 나가면 끊어지는 관계 속에 무슨 감정이 있을까 싶지만

희로애락의 감정이 느껴지고, 소외감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나는 초창기 다음 카페의 지역카페 주인장이었다.

카페의 정회원을 가족이라고 칭했다.

여러 커뮤니티의 회원으로 지내며 느낀 생각을 적용하여 몇 가지의 규칙을 정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실명을 사용할 것

한 달에 질문이 아닌 2개의 글을 쓸 것

아는 사람과도 온라인 카페 내에선 존대어를 사용할 것

종교색을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말 것

사적인 대화는 사석에서 나눌 것

1년에 한 번은 정모에 참석할 것


지금이라면 강압적이고, 못된 주인장이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도와줄 이 하나도 없는 힘든 외국살이가 시작되었을 때 땡볕의 아스팔트 위에 내동댕이 쳐진 기분을 경험했다.

“한인교회나 한인성당에 가봐. 도움받고 나중에 안 가면 되지. 많이들 그래 “

그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혼자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정착기가 지나고 1년만에 드디어 정신이 들었다.

종교가 없어도 서로 도우며 의지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라인 지역카페를 만들었다.

정착기의 사람들에게 알뜰살뜰 도움을 주며 한 달의 한번 정모 자리를 갖었다.


정모(정기모임)는 중요했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은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주로 우리 집에 모였고, 대부분 새댁인 동생들에게 나는 점심밥을 해주었다.

이후 점점 늘어 어른 열명이상과 아이들이 모인 작은 집은 마치 터질것 같아 감당할수 없었다.

마켓영어가 전재산인 내가 수십 명이 모일 장소를 물색하고, 예약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고, 라이드 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용기 내어 처음 참석한 사람옆이 언제나 내 자리였고, 말주변 없는 내가 낯선 사람의 옆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서 계속 말을 해야 했다.

한번 만난 사람과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다음에 어디선가 만나면 불러줬다.

이름을 기억해 주는 일을 사람들은 참 기뻐했다.

나는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외국살이를 하며 나와 관계된 누구도 외로워지거나 슬프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온라인상에서도...

오프라인의 관계만 유지했었도 되지만 매개로써의 온라인 공간에 신경을 썼고, 나름 치열했다.

어쩌면 글을 쓸수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 그렇게 잠을 못자며 많은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는지 당시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나보다 나이 많은 가족은 다섯 명을 넘지 않았다.

언니들은 활동에 소극적이었지만 물심양면으로 내겐 큰 의지가 되었고,

처음 시기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서로 도움을 자청했다. 감동스러운 일이었다.

가족들은 불만스러울 수 있는 규칙을 잘 지켜주고, 화합이 잘 되어 분란이 일어난 일은 없었다.

시골의 작은 한인 사회였고, 온라인 활동을 소수의 사람들이 했던 시대였는데 금방 200명 이상의 가족으로 늘어났다.

이방인은 언제나 불안한 존재였으므로 우린 비상 연락망도 구축했다.

띠동갑 이상의 젊은이들이 늘어났고,  체력의 한계와 세대차이가 느껴지던 쯤에 나는 주인장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운영진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또는 가족들이 운영진에 불만이 생길 때도 “언니” 하고 나를 찾았다.

여전히 내 이름이 박힌 규칙에 대한 공지글이 맨 위에 존재하고, 일명 왕언니로 불리며 그림자처럼 맴돌았다.

나의 존재가 운영진이 계속 바뀌면서도 부담이 되는 것처럼 느껴져 인사를 하고, 애정이 담긴 정든 카페를 탈퇴를 했다.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동생들은 자꾸만 집으로 찾아왔다.


“왜 자꾸 나를 찾아. 똑똑하고 젊은 너희가 알아서 좀 해라~”

“언니 없으면 안 돼요!”

“잘하면서 괜히 그런다. 몰라! 나 한국 간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좋았다)


물론 서로의 도움이 필요했던 지역카페란 특성으로 서로의 신분을 알게 되었지만

온라인 카페 내에서 하는 활동은 또 다른 관계와 분위기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더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달랐다.

말로 나누는 대화에선 닫힌 마음을 열수있고,

글로 나누는 대화 속에서는 사람의 중심에 있는 진심의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글 두 개를 규칙으로 넣었던 이유다.

초면의 모르는 사람과 도움을 주고받는 일엔 마음을 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 달에 질문이 아닌 제약 없는 글 두 개가 어렵다고 하나로 줄여달라는 건의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가 좋은 사람인 나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단 하나의 문장을 쓰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에 대한 이해부족일 수도 있었다.

마음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끝까지 규칙을 유지했고,

가족으로 묶이고 싶었던 동생들은 의무를 위해 꽤나 괜찮은 글들을 썼고 글을 읽는 것이 즐겁고 뿌듯했다.

그 정도의 호사쯤은 누렸어도 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쓰고, 모든 글에 편지 같은 댓글을 달아주었다.

모든 일은 대가 없는 봉사였고 힘들기는 했다.

막내인 나에게 많은 여동생들이 생겼고, 그 안에서 보람을 느꼈고,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언니의 글이 참 좋아요 “

충격! 나는 살면서 내 글이 좋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계기가 된 말도 그곳에서 처음 들었다.

그것은 최고의 애정표현이었고, 칭찬이었다.


그곳을 떠나올 때 온라인 카페엔  친분이 있고, 아는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몇 년 전 인가 카페의 문전까지 들러보았다.

카페의 첫 화면 대문의 문구가 내가 써놓은 첫 마음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근두근 하며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이 일었다.

캡처를 하고 돌아섰다.

 저희 카페는 ㅇㅇㅇㅇ위한 친목의 공간입니다.
향수병을 함께 달래고 서로 좋은  정보도 공유하면서
모두가 재미나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스쳐 지나간 이삼백 명의 인연 중 아직도 지속되는 관계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나간 SNS 속의 인간관계에서도 분명히 우정과 의리와 사랑을 느꼈다.

그런 좋은 경험을 했었기 때문일까?

일방의 관계일 수 있는 냉정한 온라인상에서의 인간관계에 연연하다가 상처받으면 스스로 치유한다.

온라인 속의 긴 세월은 나의 자가면역 지수를 자라게 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SNS상에서 언제나 모순 같은 따뜻한 감정을 찾아 나선다.




< 슬기로운 브런치 생활 하반기를 맞는 마음 >


7월이다!

보통 1년의 상반기는 좀 더디게 지나고, 하반기는 빠르게 지나간다.

브런치의 초보 생활 반년은 댓글창을 열어 즐겁고 값진 소통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다른 어느 SNS의 소통과도 다름이 있었다.

글과 관계된 어떠한 바깥활동을 하지 않는 내가 어디서 이렇게 멋진 작가님들과 글을 주제로 대화를 하며 연을 잇고,

문우라는 벗을 알게 될 수 있을까?

브런치 안에서 분명 우정을 느꼈고, 용기를 얻고, 원동력이 되었다.


온라인상의 브런치에서도 만나고 떠나는 일방의 감정을 경험하며 외로워지고, 우정도 느낀다.

남은 반년은 댓글창을 닫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집중하여 글을 쓰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어린 나는 원고지의 빨간 네모칸을 보면 그렇게 두근거리고, 모양이 예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연필로 사각사각 채우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200자 원고지 다섯 장을 메우느라 문장을 늘리던 것을 시작으로 한 오십 년쯤 뭔가를 쓰고 있는 내 글이 지치지 않기를 원한다.


외로워지는 것도
사랑을 느끼는 것도

모두
글!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를 지키자
안간힘을 써보자


슬기로운 브런치 생활의 6개월을 지나며

슬기로운 브런치 생활의 1년이란 글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brunch.co.kr/@fca6aff9f1cc48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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