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참치캔 뚜껑을 따고 기름을 꼭 짠다.
볼에 참치를 넣고 튀김가루를 솔솔 뿌린다.
달걀 두 개를 깨 넣고 재료들이 잘 섞이게 저어준다.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기름을 붓고 밥숟가락 하나 분량으로 팬에 올려 뒤집개로 꾹꾹 눌러주며 노릇하게 구워내면, 10여 분 만에도 완성할 수 있는 요리, ‘참치부침개’다.
참치부침개는 요리에 영 소질이 없는 내가 엄마의 레시피를 가장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반찬 중 하나다. 엄마도 그걸 아셨던지 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던 날에 도시락 반찬으로 참치부침개를 싸주셨다. 원래도 배앓이가 잦았던 나는 시험날 긴장했던 탓인지 배탈이 났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본 시험 점수는 평소보다 30점이나 낮게 나왔다. 재수는 꿈꿀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고, 그때 남은 아쉬움은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매년 수능시험 날이면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곤 했다. 하지만 그 씁쓸한 기억 곁에서 조용히 떠올라 위로하는 기억 한 조각이 엄마의 반찬 '참치부침개'이다.
결혼 후 참치부침개를 해 먹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에 맞추다 보니 참치부침개보다는 참치김치찌개가 식탁에 올랐다. 그러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애들 입맛에 맞는 요리를 찾던 중 기억 저편에 있는 엄마의 레시피, 참치부침개가 생각났다. 생선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에 비해 딸이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딸의 생일날이면 빠지지 않고 올리는 요리가 되었다. 맛있게 먹는 딸을 보면서 나는 “이게 할머니가 엄마 어릴 때 자주 해주시던 반찬이고... 엄마 수능시험 볼 때도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셨으며... 우리 딸이 이렇게 좋아하면 딸 수능 볼 때도 반찬으로 싸줘야겠네”라며 수다스러워지기도 했다.
지난 겨울방학 때 딸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수학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 학원에 갔다. 잠 많은 딸이 방학에도 아침 일찍 공부하러 가는 게 안쓰러웠는데 딸은 일주일에 몇 번씩 이어지는 단원평가, 월말평가, 승급시험 같은 시험 스트레스도 큰 것 같았다. 쫓기듯 공부를 하던 딸은 어느 날 그동안 자신이 받아본 적 없었던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점수를 확인한 딸이 학원을 나서고 선생님께서 걱정되셨는지 나에게 미리 상황을 알려주셨다. 나도 내심 속이 상했지만 딸은 얼마나 더 속상했을지 마음이 시큰했다.
딸이 학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시간 10여 분.
나는 '딸깍' 참치캔을 따고 튀김가루와 달걀을 섞고 참치부침개를 부치기 시작한다. 아침도 대충 먹고 가서 배고팠을 텐데 점수 때문에 모래알 씹듯 입맛이 없어졌을 딸을 위해 바쁘게 뒤집개를 움직인다.
삐삐삐삐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집안 가득 전해지는 참치부침개 냄새를 맡은 딸이 날 보더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멋쩍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