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데이트
12시 10분 전. 하던 일을 대충 밀어놓고 허둥지둥 나선다. 늘 이런 식이다. 10분 일찍 챙기면 좋을 걸 매번. 사람 참 쉽게 안 바뀐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는 아마 20분 전부터 옷을 다 챙겨 입고 앉아 계셨을 것이다. “언제 와?” “가고 있어요.” “어!” 뚝~ 12시 5분 친정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마당에 나와 계셨다.
아빠와 둘이 차에 탄 건 아빠가 내게 운전을 가르쳐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가족끼리 운전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아빠는 무던한 선생님이었다. 큰 소리도 없고, 놀라지도 않고, 그저 “옆으로 더” “살살~” 몇 단어로 나를 가르치셨다.
주차하고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을 앞둔 병원은 한산했다. 오후 2시 진료를 보기 위해 12시 반쯤 와 접수를 한다. 세 번째로 이름을 적고 점심 드시러 가자고 했다. 나주곰탕 집. 전에 와봤던 식당인데 맛이 좋아서 생각해뒀다. 3월의 꽃샘추위가 매섭지만, 아빠는 감기 때문인지 연신 땀을 닦으며 곰탕을 드셨다. 드시면서도 딸에게 감기를 옮길까 걱정되는지 김치를 덜어 드시고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 덕분에 외식한다면서 열심히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 때문인지 땀을 잘 안 흘리는 나도 머릿속에 땀이 맺혔다. 밥을 먹고 식당을 나선 아빠는 “나주에서 먹는 것보다 낫네~” 하며 웃으셨다. 나는 나주에 대해서 몇 마디 더 물어보고 “저 옆에 깍두기 맛있는 설렁탕집도 있어요. 담에는 거기 가요~” 했다.
지하수, 수도, 댐 공사 일을 주로 하셨던 아빠는 내가 어릴 때 집 떠나 일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공사가 한 번 시작되면 몇 달 동안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1~2주에 한 번쯤 집에 오셨다. 그런 현장 중 한 곳이었을 나주에서 드셨던 곰탕보다 맛있었단 말이었다. 나는 젊은 날 아빠의 일터를, 아빠가 만나셨던 사람들을, 가장 고달팠을 아빠의 삶을 잘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IMF로 온 나라가 휘청거릴 때, 아빠의 회사도 문을 닫았다. 당시 나는 그게 아빠에게 얼마나 큰 시련인지 몰랐다. 연일 앵앵거리는 뉴스 앞에서 말없이 앉아 있던 아빠의 뒷모습을 자주 봤을 때가 그 무렵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 시련을 겪고도 아빠는 자식 넷의 대학등록금을 한꺼번에 챙겨야 했던 해에 말없이 내주셨다. 그때부터 아빠의 통장에 쌓인 마이너스 기호를 없애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시간이 오래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아빠가 요즘 숨 쉬는 게 가쁘다는 건 남동생을 통해 알게 됐다. 아빠 입으로 몸이 불편하다고 인정했다는 건 참을 수 없다는 거다. 급하게 병원을 알아봤고 오늘 아빠와 병원을 찾은 것이다. 진료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만기가 다 된 아빠의 자동차보험을 다이렉트로 가입하자고 했다. 혹여나 병원에 안 가시겠다고 할까 봐 병원에 가서 기다리면서 보험 가입도 하자고 한 것이다. 아빠는 모범생처럼 미리 찍어온 자동차 번호 사진과 주행거리 사진을 내게 주시며 지루해하지 않았다.
드디어 진료 순서가 됐고 아빠는 엑스레이와 심전도 검사, 그리고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참았다가 세게 내쉬는 폐기능 검사를 받으셨다. 심전도 검사를 받으면서 손목, 발목으로 삐져나온 아빠의 내복은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체중을 재면서 3kg이나 더 많이 나간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는 모습에선 아홉 살 아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폐기능 검사도 어찌나 열심히 하시는지... 그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참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의사는 나이가 들어 폐의 기능이 떨어진 폐기종이라고 했다. 젊어서 핀 담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고, 최근 걸린 감기 때문에 증상이 심하게 느껴졌을 거라 했다. 미세먼지 많은 날 마스크를 꼭 하고, 노화이기 때문에 좋아질 수는 없으니 평생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종양이 있거나 심장 쪽 문제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감사했다.
진료실을 나와서 아빠에게 의사의 말을 다시 전했다. 아빠는 10년 전쯤 진주종 수술을 받고 한쪽 청력을 잃으셨다. “별거 아니네~” 하시면서 웃으셨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진주종 때문에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시고 수술받으셨을 때도 나는 아빠와 병원에서 커피를 마시고, TV 속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일부러 욕하며 시간을 보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나는 아직 아빠와의 병원 데이트가 좋다. 그동안 효도의 ‘ㅎ’ 자도 그리지 못했으니 아빠가 큰 병원에 가야 할 때, 휴대폰으로 세금을 내야 할 때, 돼지카드를 충전해야 할 때, 열심히 찾아와 빈 획을 채워야지. 아빠가 행여 지나간 시간을 꺼내 곱씹으시면, 그 시간은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고, 자식들의 꿈을 키운 밑거름이었으며, 끝내 잘 견뎌낸 대단함이었다고 물들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