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로 산다는 것

by 정양갱

대학에서 무역학과 중국어를 공부하며 교직을 이수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과 임용고시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어 교사는 많이 뽑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후 하나의 문이 닫혔다. 여러 기업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 보기를 반복하던 중 다니던 대학에서 방송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포스터를 봤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했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으며, 방송 환경이 궁금했던 나는 홀린 듯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방송아카데미에서는 한 달가량 지역방송국에서 근무하는 PD, 기자, 기술국 감독님들, 카메라 감독님들, 방송작가님들이 강사가 되어 수업을 진행했다. TV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기획, 구성, 촬영, 편집, 원고작성과 더빙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보는 실습 위주의 수업이었다.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갈 무렵 당시 강사로 오셨던 한 작가님이 나에게 방송작가의 일을 돕는 자료조사 일을 아르바이트로 해보겠냐고 물으셨다. 아직 취직 전이었고 대학 내내 알바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방송국이라는 곳에 발을 들인 후 원고료로 밥벌이를 한 지 21년이 흘렀다.


흔히 방송작가라고 하면 ‘작가’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보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방송’이란 단어에 무게 추가 기운다. 편집된 영상을 보며 읽을 내레이션 원고나 방송 대본을 쓰는 작가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기본값이며, 이런 원고를 쓰기 전에 기획, 구성, 촬영, 편집과정에서도 기획안과 구성안 작성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따라붙는다. 원고작성과 기획안, 구성안 작성 외에도 방송일이라는 잡다한 플러스 α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인력이 많지 않은 지역방송국에서는 작가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PD나 기자들의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내가 아니면 그들이 해야 하는 환경에서 방송작가가 하는 일은 늘 차고 넘친다.


방송작가 일의 중요성을 놓고 보자면 원고 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섭외’다. 대부분 방송 출연 경험이 많지 않을 사람들을 설득해 카메라 앞에 세우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다시 물어보는 일을 허락받는 일. 아무리 유튜브가 일상이고, 1인 방송이 대세인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섭외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마주할 때 운에 기댄다. 그렇다 보니 내 곁에는 섭외가 잘되는 컵, 섭외가 잘되는 펜이 십자가처럼 함께한다. 그래도 걷잡을 수 없이, 둑이 터지는 것처럼 어떤 것도 효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은 잊을만하면 찾아온다.


이번 주 그 지옥을 다시 만났다. 내가 맡은 TV토론 프로그램의 섭외가, 정말 이렇게도 안 될 수 있을까 싶게 안 됐다. 시사적인 것을 다루는 TV토론방송은 방송일을 일주일 남겨두고 주제를 정한 다음 서너 명의 토론자를 섭외하기 시작하는데, 이번엔 사흘 동안 아이템을 네 번 바꿔야 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방송일은 다가오고, 섭외가 돼야 원고 작성을 비롯한 다른 작업도 할 수 있는데 계속해서 주제가 바뀌다 보니 말 그대로 피가 말랐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동동대다가 마침내 네 번째로 바뀐 아이템의 섭외가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시계는 오후 5시를 지나고 있었고, 아이들은 하교 후 집에 올 시간이었으며, 하필 그날은 딸의 영어학원에서 마련한 고등학교 입시설명회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서둘러 밥을 하고, 편한 티셔츠를 대충 주워 입고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다급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나와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멀리 고운 노을이 물들어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언젠가 아들이 포켓몬 카드를 정리하며 캐릭터를 소개하면서 했던 말처럼 ‘흑화’돼 있었다. 순간 어떤 사람도, 특히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만나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웃으며 인사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학원 지하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잠깐 차 속에 앉아있던 나는 학원 선생님들을 만나면 보여야 할 상냥함을 장착하고 설명회장으로 향했다. 설명회 내내 미소를 띠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받아 적었다. 1시간 반 넘는 설명회가 끝나갈 무렵, 설명회를 준비한 선생님은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여주셨다.


카자흐스탄 학생들의 체육대회 줄다리기 경기 영상이었다. 두세 살은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체구가 큰 아이들과 상대적으로 왜소한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영상은 작은 아이들 팀에서 맨 뒷줄에 서 줄을 잡고 있는 한 아이를 클로즈업해 보여 줬다. 그 아이가 경기장 중앙에 그어져 있는 선을 넘으면 끝나는 게임이라고 했다. 아이는 울면서 버티고 버티다가 끌려갔고, 다시 버티고 버티다가 앞으로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줄을 잡고 버텼다. 한 발만 더 끌려가면 선을 넘을 상황인데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상대 팀이 지쳤는지, 아니면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갑자기 그 아이는 중앙선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의 팀은 기적처럼 이겼다는 자막이 보였다. 영상의 어떤 포인트가 내 마음을 건드렸는지 모르겠지만, 내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차마 학원 설명회에서 그 눈물을 밖으로 떨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꾹꾹 삼키고 있는데, 흑화된 것 같다고 느꼈던 내 마음을 그 눈물이 적시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 한 걸음만 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마음은 일은 물론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하다. 어렵게 한고비를 넘기면 시원한 바람이 더 달게 느껴지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내리막길을 만나는 날도 있는 게 인생이다.


이날 밤 나는 밤을 새워 네 번째로 바뀐 토론방송의 원고를 작성했다. 다음 날 오전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수강생들과 함께하는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순번을 정해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고 정리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내가 발표해야하는 날이었다. 다 읽지 못한 책을 꺼내 읽으며 내용을 정리했다. 5강으로 구성된 책인데 일단 3강까지만 해보자, 4강까지만 해보자 하면서 5강까지 마무리를 했다.


날이 밝았다. 새벽에 깨어있는 게 오랜만이다. 아파트 베란다 쪽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에 듣는 새소리가 좋구나’ 생각하며 커피를 내렸다. 오전 동아리 수업을 마치면, 토론 방송과 병행하고 있는 다른 매거진 프로그램 생방송 참여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이 방송원고는 어제 토론자를 섭외하는 틈틈이 작성했다. 그러고 보니 토론 섭외와 매거진 방송원고를 쓰는 틈틈이 최근에 같이 하기로 한 다큐멘터리 전문가 섭외도 했었지... 그렇게 일을 했어도 오늘은 다시 할 일이 한가득이고 바쁜 일상 속에 던져질 나를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새소리를 들으며. 줄넘기 줄을 끝내 놓지 않았던 그 아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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