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의 행적
일하는 엄마에게 방학은 매번 큰 난관이다. 이번 여름방학도 ‘이 또한 지나가리니’ 마음을 다잡고 엄마들의 방학 ‘개학’을 기다리고 있다. 방학일수가 짧은 여름방학은 그나마 감사하게 여겨야지.
아들은 초3이다. 초3은 방학 중에 학교에서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없다. 오후 시간에는 방학 전처럼 학원 3곳에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데 오전부터 점심까지가 문제다. 오후에 출근해도 되는 날이면 밥을 먹인 후 학원 앞에 내려다 주고, 그게 여의치 않은 날은 친정 부모님께 부탁하고 있다. 부모님께도 미안한 생각이 들면 올여름휴가를 가지 않기로 한 남편에게 하루씩 휴가를 쓰도록 하며 버티고 있다.
아들은 2시부터 시작하는 오후 학원 스케줄 보다 20분씩 일찍 데려다 달라고 매번 조른다. 이유를 물으면 첫 번째 학원 끝나고 학교 앞에서 친구랑 놀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깥에 몇 분만 있어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날씨에 걱정도 되고 대체 뭘 하고 노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나는 취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20분의 행적을 알아야겠다.
“△△아~ 오늘도 피아노학원 끝나고 ㅇㅇ이랑 학원 앞에서 놀았니?”
(*ㅇㅇ이: 아들과 같은 피아노,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 친구. 첫 번째, 두 번째 학원 동선이 겹치는 친구인데
이 친구도 기어코 20분 일찍 피아노학원에 와서 끝나면 아들과 같이 논다고 함)
“응 어제는 ㅇㅇ이가 피아노 일찍 끝나서 먼저 나갔는데 오늘은 내가 더 빨리 끝나서 내가 먼저 나왔어."
ㅇㅇ이랑 놀려고 일찍 가는 거 아니었어? 기다리지도 않고 나온다고?
"어제는 학원 앞에 □□이가 있어서 □□이랑 놀다가 ㅇㅇ이도 내려와서 같이 놀았어.”
같이 끝나는 친구를 기다리지도 않고 서둘러 나올 만큼 1분 1초도 소중하다는 느낌이다.
“아~ (다른 학원에 다니는)□□이도 그 시간에 거기서 학원 차 기다리나 보네?”
그 친구랑 더 친한가?
“그건 몰라”
그딴 건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는 말투다.
“어 그래. 그래서 뭐 하고 놀았어? 요즘 날씨가 너무 덥잖아. 엄마는 너무 더워서 밖에서 노는 거 걱정되더라”
“오늘은 참새랑 놀았어.”
갑자기 참새 등장.
“친구들이랑 참새한테 젤리 줬는데 참새가 안 먹었어.”
“아... 참새는 젤리를 안 좋아하나 보다. 새들은 쌀 같은 곡식을 좋아하던데... 그럼 내일 쌀을 조금만 가져가 볼래?”
라고 생각 없이 뱉어놓고, 도로에 쌀이 뿌려져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후회했다.
“아니 괜찮아. 어제 비둘기들은 젤리 잘 먹었어”
비둘기는 젤리 먹어도 되나?
Anyway, 아들의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엄마 엄마!! 그런데 오늘은 참새가 자전거를 탔다. 하하하 하하하”
‘참새가 자전거를 탔다고?’
참새가 자전거 어디에 탄 건지 상상이 안된다.
“아... 그래? 그런데 참새가 자전거 어디에 탔는데? 핸들에 탔어 아님 그 자전거 대에 탔어”
당연한 걸 뭘 묻냐는 식으로 대답하는 아들.
“당연히 안장에 탔지!”
“아.... 안장”
자전거 안장에 서 있는 주먹만 한 참새를 상상한다.
“그리고 어제는 비둘기 여러 마리가 일렬로 줄을 서서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거야. 그래서 내가 뒤에 따라갔더니 날지도 않고 이렇게(뒤뚱거리며 비둘기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빨리 걸어가는 거 있지! 하하하 하하하”
줄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비둘기의 걸음걸이가 아들은 그렇게 웃겼나 보다.
이 정도 행복지수라면 아들은 그 횡단보도에 돌멩이들이 굴러가도 웃을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20분 동안, 아들은 친구들과 막대 아이스바를 사서 먹는 것이다.
항상 그 시간에 내 카드 사용 문자 600원이 찍히는데 600원이 막대 아이스크림의 가격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흑토마토처럼 그을린 얼굴로 친구들과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참새와 비둘기들을 보면서 재미있어할 아들을 생각해 본다. 아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진다. 날씨는 아직도 많이 덥지만 아들의 20분의 행적을 이해해 주기로 했다. 어서어서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타는 듯한 여름 볕이 식혀주기만을 바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