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에도 나이가 있나요?
따스한 봄날을 꿈꾸지만, 다음 주 꽃샘추위 소식이 아쉽게 들려오는 요즘이다.
그 흔한 사춘기도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쳐 온 내게 3월과 함께 내면 속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익숙한 노래 제목처럼 나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고뇌에 빠져 지내고 있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 사회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자꾸만 나의 꿈을 실현하고픈 욕망이 쉴 새 없이 꿈틀댄다. 묵혀든 열정의 첫 발걸음으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남기기 시작한 애송이가 어디 가당치 않은 말인가.
때론 하루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려 48시간이면 좋겠다는 위험한 상상도 해본다. 얼마 전 아이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열정과다 흥분 그 상태인 것 같다.
워워, 지금의 나를 위한 누군가의 적극적인 제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은 비교적 순탄하다고 여기며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프랜차이즈 속독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람도 느끼고 커리어도 쌓아나갔다. 그러다 문득 잊고 지낸 꿈이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 나의 유일한 취미생활은 독서와 라디오 시청이 일상의 반복이었다. 독서를 하며 좋아하는 글귀를 써 내려가거나, 찰나의 느낌들을 정리하는 것이 작은 행복 그 자체였다. 가끔은 라디오 애청자로서 사연을 보내고 방송에 소개되는 짜릿함도 맛보았다. 그럴수록 나도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헛된 꿈을 품게 되었다.
막상 마음을 먹으니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정들었던 아이들,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과의 이별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글 쓰는 일을 절대 직업으로 삼지 말라던 아빠도 스물여섯 살 딸의 완고한 고집은 꺾지 못하셨다. 일주일 만에 방송아카데미 여러 곳을 비교해 가며 개강일자가 빠른 KBS방송아카데미에 등록을 마쳤다. 그때 우리 집은 경기도 용인, 아카데미는 서울 여의도. 왕복 4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쉽지 않은 여정이었고, 배움에만 매진할 수 없어 저녁에는 카페 알바도 경험했었다. 구성작가 과정의 특성상 큐시트 작성, 구성의 기본, 그룹별 과제 등 늘 숙제가 많았지만 동기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운 좋게 현역에 계신 선생님의 라디오 생방도 구경 가고, KBS 선거방송의 알바로 투입되어 색다른 경험도 했었다.
잠재돼 있던 내 안의 열정이 행복의 도파민을 뿜어내며 '난 행복해'를 외치던 그 시절이었다. 한편으론 방송작가의 삶에 꽃길만 펼쳐질 수 없음을 느끼며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하게 되었다. 일단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비교적 많은 나이였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고, 어디든 작은 제작사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시작을 서둘렀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가장 힘들다는 다큐 프로그램 제작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한 달도 안 되어서 밤새는 일이 많아지자, 독립을 반대하던 아빠께서 먼저 자취를 권유하셨을 정도였다. 어리바리 적응기간이 끝나고 익숙해질 무렵 첫방 스크롤에 올라가는 내 이름을 보며 벅찬 감동이 밀려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리스마 넘치는 메인작가님이 미리 보기를 써 볼 기회를 주셨고, 잘 썼다는 칭찬과 함께 빠르게 입봉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다. 지금 돌이켜봐도 내 생애 몇 안 되는 힘든 시기의 연속이었지만 무언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꿈꾸게 했던 것 같다.
잦은 밤샘으로 나의 건강은 점점 망가져 갔고, 이렇게 살다가는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결국 더 나은 근무환경을 찾아 작은 방송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라디오 작가는 바늘구멍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진작에 내려놓았다. 넘치는 열정으로 몸이 축나는지 모르고 일했지만,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과감히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이 잘 때 자고, 먹을 때 먹고, 주말과 공휴일에 쉬는 단순한 이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두 번째 애정을 담은 프로그램은 시민제작 작품을 소개하고, 출연자와의 토크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제작자 한 분은 영화에 흥행한 감독님이 되셨고, 배우로 활동하는 등 나름 유명인이 된 분들을 보면 덩달아 기쁨을 느꼈다. 나는 분명 혼자서 조용히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는 동적인 활동들을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권태감과 따분함을 느꼈던 것 같다. 무언가 활동하며 움직이면서 그 안에서 얻는 시너지 효과가 나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요 근래 나의 일상에 수상한 움직임이 꿈틀댄다. 무언가 배움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과몰입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여길 수 있지만, 손에 익은 파트타이머 일도 따분하게 느껴져 마지못해 출근 중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새처럼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내가 진짜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은 마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늘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 많은 나지만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실제로 그 기회는 얼마 전 우연하게 찾아왔다.
나는 누군가와의 만남 속에서 대부분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에 속한다. 내가 모르는 편안함이 내게 있는 건지 처음 만나도 어려운 얘기를 술술 털어놔 몇 번은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진지하게 조언을 건네거나, 진심을 담은 위로로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질 때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하소연만 털어놓는 지인을 보며 '나는 신이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지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람의 심리, 마음을 읽는 학문에 관심이 많아 심리 관련 책을 집중해서 본 적도 있다.
다양한 심리자격증이 생겨날 때마다 나도 한 번 취득해 봐 이런 마음도 들었지만 늘 현실적인 부분에 가로막혀 실천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주저하는 마음 때문에 놓치고 후회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불현듯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내게 온 기회를 잡아보자는 강력함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제2의 삶을 위한 나의 결정과 실천은 이번에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의 폭을 넓히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역량을 넓히기로 했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수업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설렌다. 동영상을 보며 팔이 아프게 열심히 필기해 본 것도 20년 만의 일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 일련의 과정으로 매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현재는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미래에는 내가 배운 것을 글 또는 책과 연관 지어 발전시키고픈 무한 상상력을 펼쳐본다. 먼 훗날 오늘 나의 글이 희망적인 발판이 되길 바라며, 나의 자아실현은 영원한 네버엔딩스토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