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내 오랜 소망을 이루러 갑니다.

by 연서

내가 멀리 떠나 누군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이것만큼은 꼭 전달해 주길 바라. 첫 번째, 장례식장처럼 꽉 막혀 숨이 막히는 곳 말고 숲이든 바다든 사방이 뻥 뚫린 곳에서 나를 보내주면 좋겠어. 떠나는 나도 그렇고 남은 사람들도 그렇고 좀 숨통이 트일만한 곳에서 꼭 나를 떠나보내줘. 생각해 보면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숨통이 어떻게 트일 수가 있겠나 싶겠지만 그래도 따스한 해도 뜨고 시원한 바람도 분다면 칙칙하고 똑같은 온도와 조명인 실내보다는 실외가 숨이 조금이나마 더 잘 쉬어질 수 있을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두 번째, 너무 칙칙하게 검은색으로 맞춰서 옷 입고 오지 말고 다들 알록달록하게 제일 아끼는 옷을 입고 와줬으면 해. 나랑 마지막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너네들만 마지막이 아니고 어쩌면 나에게도 너네랑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니까 나도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던 사람들의 예쁜 모습들을 가득 담아서 안고 떠나고 싶을 거야. 세 번째, 일반적으로 장례식장에 잔뜩 있던 국화 같은 그런 꽃 말고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향긋한 꽃들로 데리고 와주면 좋겠어. 그냥 꽃집에 가면 파는 예쁘고 알록달록한 꽃들로 부탁할게. 나는 그런 게 좋거든. 네 번째,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제사음식은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러니 육개장이나 나물 같은 음식으로 밥 챙겨 먹지말자. 너무 맛없잖아. 안 그래도 분위기 때문에 입으로 밥이 들어가는지 코로 밥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잘 삼켜지지도 않는데 저런 음식들은 맛도 너무 없고 별로인 거 같아. 그러니까 그냥 최근에 계속 먹고 싶어 하고 떠오르던 음식으로 사 먹든 시켜 먹든 했으면 해. 치킨, 피자, 마라탕, 짜장면, 햄버거, 떡볶이, 등등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많으니까 맛있는 걸로 잘 챙겨 먹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꾸역꾸역 먹다가 체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네. 마지막으로 나를 떠나보내면서 너무 많이 울지 않았으면 해. 떠나보내는 그 아주 찰나의 순간동안만 딱 그 잠깐의 순간만 아주 조금 울어줘. 너무 나를 그리워하고 울어버린다면 내가 평생을 빌어왔던 J의 곁으로 편하게 여행을 못 떠나갈 거 같아서 그래. 그렇게 나를 다 떠나보내고 나서는 아주 가끔씩 내가 떠오르는 날만 그때는 재미있었지, 그때는 그랬었지 하며 날 추억해 줘. 너무 자주 나를 그리워하지 마. 차라리 나를 너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려도 괜찮고 좋으니까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해. 너무 오랫동안 내가 너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고 싶지 않아. 금방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웃고 떠들며 잘 지내길 바라. 누구든 나를 봤을 때 스스로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었는데 부끄러운 일만 가득한 거 같아서 미안해. 나도 너무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남들이 다 보내고 지내는 그 인생들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어. 다른 사람들은 잘 견디고 버티는 일들이 나한테는 쉽지가 않았어. 말하고 싶어도 마땅히 말할 곳도 없어서 자꾸 답답했어. 그냥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차마 입 밖으로 힘들다는 그 작은 말 한마디가 안 나와서 정말 죽을 거 같다고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조차도 말을 못 했어. 그래도 너네랑 같이 있을 때 즐겁다고 웃고 떠들었던 순간들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고 사실이었던 순간이야. 힘들었던 순간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즐거웠던 순간이 훨씬 더 많았었어. 그 추억들 덕분에 어쩌면 계속 버텼던 거 같아. 내가 힘들던 순간마다 날 만나준 사람들에게는 고맙다고 말 한마디라도 할 걸 그랬나 싶네. 아주 혹시 내가 너네한테 툭 던진 말들이나 잘 못 한 행동들이 있어서 상처받았다면 사과할게. 이렇게 떠나면서 사과하는 것도 웃기지만 용서해 줬으면 해. 너무 날 미워하지 말아 줘. 그냥 좋은 기억만 남겨줘. 언제 어디서든 바람이 되어 내가 몰래 지켜보다 필요한 순간마다 꼭 지켜줄게. 우리 다음 생에는 이번생에 함께 못 한 순간들까지 다 합쳐서 더 오래오래 보자. J가 나를 데리러 왔을까? 꼭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정말 J랑 나태하게 살러 떠나볼게. 내가 너무너무 오랫동안 꾼 꿈이고 내 평생의 마지막 소망이었어서 사실 실감은 안 나지만 설레서 미칠 거 같아. 이제 정말 편지 마무리할게. 다들 잘 지내. 나도 꼭 행복하게 잘 지낼게. 안녕.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