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by 이안



그들을 가슴에 묻고, 나를 꺼내며


어떤 이별은,

너무 조용하게 다가온다.

사전도, 예고도 없이.


그저 어느 날,

일상이 조금씩 변한다.


걸음이 느려지고, 말수가 줄고,

표정이 사라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예전의 모습이

아니게 된다.


아버지가 그랬다.

늘 단정하고, 깔끔하고,

묵묵히 가족을 이끌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점점 말을 아끼고,

움직임이 줄어들고,

결국엔 침대 위에서 눈빛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는 그 곁을 지켰다.

두 시간마다 아빠에 자세를 바꿔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매번 먹지도 못하는

끼니를 차려놓았다,

편히 잠드는 대신 아빠에 옆자리를 늘 지켰다.

엄마는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천 번도

넘게 견뎌냈다.


정작 자신이 병들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채.


나는 그 곁에서,

익숙한 것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손이 더는 따뜻하지 않고,

엄마의 눈가에 피로가 깊게 내려앉는 것을.


이 글은 그 조용한 변화들을

기록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스러져간 시간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

슬프다고만 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이

스며 있는 그날들에 대한 이야기.


엄마는 종종 말했다.


“삶이 영화 같지 않냐며, 책이 되어도 되겠다.


엄마의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아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누군가의 기억으로만 끝내기엔

너무 따뜻하고,

너무 애틋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자신의 시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조용한 이야기가

어떤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빠는 병들고, 엄마는 지쳤다.

긴 세월, 둘은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던 때가 더 많았다.


서운함도 많았고, 서로에게 내뱉은 말들로

가슴속에 못 하나씩 박아둔 날들도 있었고.


인생이 끝자락을 향해 가고 나서야

두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서로를 기다려온 사람들처럼

조용히, 따뜻하게 기대기 시작했다.


아빠는 몸이 아프고 나서야

엄마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알았고,

엄마는 지친 마음을 숨기고서

아빠를 밤새 돌보며,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사랑을

매일같이 행동으로 쌓아갔다.


누구보다 말 없던 아빠는

엄마 앞에서 말없이 꽃을 주워오기도 했고,

엄마는 그 꽃 한 송이에도

눈물이 차오르는 걸 애써 삼키며

그저 가만히 아빠 곁을 지켰다.


그렇게 서로를 탓하던 시간은

서로를 안아주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엄마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아빠 걱정뿐이었고,

아빠는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까지

엄마를 먼저 찾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두 사람은 끝까지 함께였다.

손을 마주 잡고 앉아 있진 않았지만,

서로의 이름을 마음속에 꼭 쥐고 살았던 게 아닐까.


사랑이란

꼭 젊은 날의 반짝이는 말들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엄마와 아빠는

그 마지막 계절에서야 우리에게 보여줬다.


마디마디 굳은 손으로

서툴게 서로를 닦아주고,

매일을 함께 견디고,

마지막 길을 서로의 온기로 따뜻하게

만들었으니까.


사랑은,

끝에서 더 진해지는 것 같다.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에 그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