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지 않았기에”

part 3.

by 이안


“진실을 말하지 않았기에”


엄마는 두려워했고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무너졌다.







진실을 말하지 않았기에


Chapter 1. 처음 맞선 고통


Chapter 2. 흉터보다 깊은 상처


Chapter 3. 다시 살아내는 길 위에서


Chapter 4. 머리카락보다 무거운 용기






Chapter 1.


처음 맞선 고통


항암치료는 마치 전쟁 같았다.

엄마는 병명도 모른 채,

그저 이겨내야 할 싸움이라

믿고 의연히 침대에 누웠다.


‘풀피리녹스’


이름조차 낯선 약물,

그 안에 담긴 부작용들은

누구에게는 독처럼 퍼지고,

누구에게는 생명을 지탱하는 희망이 된다.


2주마다 반복되는 입원과 치료.

5일간 병원에 머물고,

10일도 채 안 되는 회복 시간.


그렇게 숨 돌릴 틈 없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물 한 모금에도 토했고,

속이 다 뒤집힌 채 말없이 끙끙 앓았다.


누워 있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엄마”라고

거짓 위로를 건네는 것뿐이었다.


첫 항암은 급하게 시작돼

‘케모포트’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그저 팔 혈관에 직접 약을 주입했다.


엄마가 “팔이 너무 아프다” 고 했는데,


간호사는 “항암이 원래 그렇다” 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엄마의 고통이 당연한 듯 취급되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엄마의 등을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였고,


그 순간부터


‘치료’라는 단어는


‘고통’이라는 말로 바뀌었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견딘다’는 뜻이 되어갔다.





Chapter 2.


흉터보다 깊은 상처


첫 항암을 마치고 퇴원했지만,

엄마는 더 지쳐 있었다.


기력을 찾지 못했고 입맛도 잃어버린 채

밥 냄새조차 싫다며 고개를 돌렸다.


자꾸 토하고, 먹지도 못하고,

살은 빠지고 엄마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보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었다.


그냥 곁에 있는 것밖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때 엄마가 항암을

맞던 팔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핏줄을 따라 선이 번진 듯

누가 봐도 이상한 흔적이었다.


항암이 너무 독해서

엄마의 혈관이 다 타버린 거였다.


나는 그 팔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내가 맞았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팔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흉 져도 괜찮으니,

몸만 안 아프면 돼. 나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정말,

그저 살아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슬펐다.

그토록 담담한 말 안에

얼마나 큰 두려움과

버텨냄이 숨어 있었을까.





Chapter 3.


다시 살아내는 길 위에서


퇴원 후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엄마.


그런 엄마가 누룽지 몇 숟갈을

겨우 넘기는 걸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먹는다는 건,

살아보겠다는 의지였으니까.


정말 작은 한 입이었지만,

그건 희망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조금 나아진 엄마는 아빠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아빠가 떠나고 처음으로,

엄마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던 노래.


“고맙소”라는 노랫말이

엄마의 마음을 건드렸고

엄마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엄마의 손을 꼭 잡아줬다.


“울어도 돼. 엄마, 지금은 울어도 돼.”


납골당에 도착하자 엄마는

아빠 앞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유지 아빠, 나 아직 애들이랑 더 살아야 해.

아픈 거 좀 낫게 해 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뒤에서

조용히 따라 기도했다.


“아빠, 엄마 지켜줘.

제발 엄마를 지켜줘.”


한 달 만에,

엄마는 떠난 아빠 앞에서

흔들리는 삶의 끈을 다시 붙잡으려 했다.


그 길은 아픔을 향한 길이자

다시 살아내기 위한 시작이었다.






Chapter 4.


엄마의 머리카락


아빠를 다녀온 뒤, 엄마는 달라졌다.

그저 버티는 게 아니라,

꼭 살아내겠다는 다짐이 보였다.


감사했다.

그런 마음으로 몇 번의 항암을

더 견뎌냈다는 게.


항암치료는 잔인했다.


매번 입원한 후,

일주일 넘게 아무것도 못 먹고

몸이 깡그리 무너지고 말라갔다.


그러다 또다시,

입맛을 되찾은 며칠 동안은

엄마는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으며

사라진 체력을 애써 끌어올렸다.


그렇게 다시 항암.

그리고 또 무너짐.


살고 싶다는 의지가 이토록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네 번째 항암을 넘기며,

엄마의 머리카락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2차 항암부터 조금씩 빠지던

머리카락은 어느 순간 바닥을

덮기 시작했고, 집 안 구석구석이

엄마의 빠진 머리카락으로 가득했다.


나는 혹시 엄마가 보고 속상해할까 봐

한 움큼 빠진 머리카락이 보일 때마다

몰래 주워 담았다.


그 머리카락은 단순한 털이 아니라

엄마의 시간, 고통, 그리고 의지였기에.


엄마의 까맣고, 복슬복슬하던

곱슬머리는 하루가 다르게 사라졌고

속이 텅 빈 듯,

그 자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차마, 깎을 수가 없었나 보다.


빠진 머리를 드러내는 게

엄마에겐 너무 큰 상처였을 테니까.


그날부터 엄마는 모자를 벗지 않았다.


모자 속에 몸을 숨기듯,

조용히 아픔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