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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28. 2024

<보이지 않는 고릴라>

<태호와 테디> 두 번째 이야기

태호는 자다가 잠이 깼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몸도 같은 자세로 틀에 갇혀서 자서인지 뻐근했다. 안마를 하다 잠이 들어서였다. 리모컨으로 안마의자를  원위치로 돌리고, 마루 바닥을 디뎠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였다. 안마를 시작하고 거의 1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엄마, 엄마"


태호는 소리 내서 불러보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아무도 없었다.


 "아빠도 안 오셨네."  


부모님한테 혹시 연락이 왔나 해서, 핸드폰을 열었다. 가족 카톡방에 엄마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 아빠랑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서 늦을 거야. 12시 넘어 들어갈 것 같아. 아침에 말한다는 걸 깜밖했어. 새벽에 가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태호는 소파 위 벽에 걸린 자작나무 숲 속에 부엉이들이 커피잔들을 이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4마리였다.

'우리 가족은 셋이니까 부엉이를 세 마리 그리고, 죽은 테디를 그려 놓는 것도 좋겠다. 날개를 가진 갈색 푸들이 그림 속에 있으면 뭔가 더 재밌을 것 같은데.'

태호는 익숙한 그림이었지만, 오늘따라 관심이 갔고 테디가 떠올랐다.


거실 그림의 투명 아크릴 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애매하게 잠이 들었다 깨서 그런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태호는 채도가 낮은 주황색 소파에 앉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커다란 마루 유리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은 깜깜했지만, 큰 마루 유리창에 비친 거실의 모습과 부엌의 식탁과 의자들, 거실등들과 식탁등의 불빛들이 바깥의 어둠에 겹쳐 새로운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루가 데칼코마니로 확 넓어져 보였다. 보이고 존재하지만, 만져지지 않는 반사된 모습들. 거기에는 3인용 카우치에 앉은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저런 게 유령의 모습일까? 유령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유리에 비치거나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다른 실체로 보인 것은 아닐까? 태호는 유난히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밤이라고 생각했다. 곧 6월 모의고사가 있어서 정말 공부하기가 싫어서 그런 것 같았다.


 호가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거의 2년 가까이를 중학교를 다니지 않아 태호는 검정고시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학교 다니기를 거부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기야, 평생 집에만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나 정도야, 나쁘지 않아."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 다시 지훈과 한 반이 되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화난 국어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는 그의 어깨와 등을 흔들어 깨우면서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었을 때, 지훈은 태호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훈이 뒷줄에 앉아 있었다면 뭔가를 증언해 줄 수 있었을까?"


태호는 지금은 친해져서, 지훈에게 그때 상황을 물어봤지만, 지훈은 앞자리 친구들과 떠드느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해미안하다고  말했다. 물론, 미안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친해지고 나니 미안함이 살짝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그렇구나, 바로 앞이어도 못 보고 안 들릴 수 있구나. 바로 앞이면 특히 못 볼 수는 있어. 뒷통수에 눈이 달린 건 아니지. 인정."


태호는 자신이 졸다가 깨서 뭐라고 했는지도 못 들었냐고 재차 확인했지만, 지훈은 세월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태호 자신도 왜 그렇게까지 학교 가기를 거부했는지  상황들과 감정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교육 체계로 돌아오기 위해서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던 날의 기억은 선명했다.


 태호가 학교에 다시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집에 있은지 1년 반쯤 되었을 때였다. 그날 오전에 우연히 TV에서 사람의 주의력은 한계가 있어서, 인간이 특정 대상에 집중할 때 다른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프로 그램을 봤다. 방송 영상에서 흰옷을 입은 여성들이 농구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집중해서 보고 맞추라고 했다. 태호가 집중해서 셌고 16번이었다. 방송에서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 16번이라는 것을 맞췄을 거라고 했다. 태호는 뿌듯했다. 그 후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중간에 걸어가는 고릴라를 보셨나요? 아마 못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태호는 방송에서 다시 영상을 틀었을 때 너무나 뻔히 보이는 고릴라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프로그램은 이것이 미국 심리학자 다니엘 사이언스가 진행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라고 소개했다. 우리의 통념과 다르게 두 눈으로 무언가 보았다 할지라도 뇌에서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호는 갑자기 자신의 경우가 생각나서 마음이 괴로워졌다.

태호는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고, 게임이라도 하려고 옷을 대충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그런데, 아파트 정문으로  가는 길에 좀 특이하게 생긴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태호의 아파트동 출입문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벤치에서 두 개의 벤치를 지나 네 번째 벤치에서 잔머리가 전혀 없어  이마가 동그랗게 도드라져 보이는 올 백 단발머리 아저씨가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들이 검은 머리카락들과 반반씩 섞여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머리통에 가발을 모자처럼 씌어 놓은 듯이 보였다.


 태호는 그때까지 그 아저씨를 본 적이 없었다. 키가 매우 크고, 삐쩍 마른 외모를 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딘가 아파 보였다. 벤치 주변을 서성이다, 앉고, 다시 일어나서 벤치 주변을 맴돌았다가, 다시 앉았다. 그냥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태호는 그 아저씨가 무섭게 느껴져서 천천히 그 앞을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태호는 올백 단발머리 아저씨가 매일매일 같은 벤치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언제까지 그럴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태호는 키가 크고 마른 자신이 나이가 들면, 왠지 집에 있지 못하고 저 아저씨처럼 아파트 벤치에서 하루 종일 지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엄마가 내가 미워져서 집에서 쫓아내면 어떻게 하지? 몇 번 나가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태호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랐다. 다만, 한번 집에서 쫓겨난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자꾸 벤치 아저씨가 떠오르면서 무서워졌다.


"엄마, 저 검정고시 볼게요. 나보다 어린 애들과  중학교를 다니기는 싫어요."


태호는  학교를 다시 다니기로 마음먹은 후 엄마에게 말했다. 검정고시 접수일이 6월 중순쯤인데 접수하고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래? 검정고시 일정까지 알아봤네. 내년에는 고등학교 갈 수 있겠다."

 

현진은 속으로는 미칠 듯이 기뻤지만, 겉으로는 담담하게 별일 아닌 듯이 말했다. 년 동안 태호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별의별 말들을 하고, 프로그램들을 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진은  태호가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태호는 오늘도 올백 단발머리 큰 키 비쩍 마른 아저씨가 항상 같은 벤치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벤치 아저씨는 알까? 내가 아저씨 때문에 학교에 다시 가게 된 것을?"


오전 12시가 넘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태호는 부모님을 뵙고 자려다가, 오늘 일정이 너무 피곤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자려고 마루 불을 끄고, 자신의 침대로 갔다.


"어차피 사람은 주변 상황을 다 보지도, 다 듣지도 못해. 벤치 아저씨도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걸...."


 태호는 원망과 두려움, 자신만이 차별당하고 집단 따돌림을 겪었다고 느꼈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테디를 잃은 상실감에서 생긴 우울증 때문이었을까.

태호는 상담 선생님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들도 떠올랐다. 테디를 생각해도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약해졌다. 태호는  밝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달리는 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수능 보고 나서 운전면허 시험 봐야지. 공부하기 정말 싫다."

태호는 깼는지 자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운전면허 생각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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