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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27. 2024

<태호와 테디>

 현진은 소마미술관 수업 교실에 들어설 때, 두 명이 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책상  하나당  한 명씩 앉는 건데 왜 둘이 앉아 있지 ' 잠깐 생각했다. 그들 앞자리에 앉으면서 곁눈질로 얼핏 보니 한 명은 첫 시간에 못 본 얼굴이었다. 

  오늘은 두 번째 수업이었다. 미술사 선생님이 10시가 되자  인사를 하고 출석을 불렀다.


"질문이 있습니다."

뒷 좌석의 낯선 사람은 손을 들고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미술사 선생님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는 A반에서 B반이 어떤지 보려고 왔어요. 제가 3년 과정 중 1년만 들으려고요. C반은 전시과정이라고 하니 A, B과정 중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러세요. 오늘 수업을 듣고 비교해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미술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안내하신 후 컴퓨터를 켰다.


 오늘 수업은 러시아 화가들이 썼던 역원근법을 다뤘다. 설명을 듣고, 예시 그림들을 본 뒤 그 시점을 적용해서 각자가 가진 물건들을 그려야 했다.  개의 소지품들을 그리는데 , 각각의 그림마다  30분씩 주어졌다. 현진은 자신이 선택한 배낭을 역원근법식으로 해체하고 그리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은 빠듯한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뒷 좌석의 새로 온 여자분이 지숙에게 속닥속닥 말을 걸고 있었다. 지숙은 작년 한 해동안 현진과 수업을 들었다.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연장자로 보였다. 이제까지 이런 상황이 없어서 낯설기도 했다. 현진은 최대한 불만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뒤돌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외국에서 오셨어요? 1년 뒤에 돌아가셔야 하나 봐요?"


현진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도 지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얼굴 피부가 하얗고 팽팽한, 세련되고, 건강해 보이는  60대 후반의 노부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저, 외국에서 안 왔어요. 한국에서 살아요. 내년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요. 내년까지 살아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잖아요."


"아, 네."


현진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뜨고 ,  앞으로 돌아 앉았다. 그리고, 얼른 연필을 들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엥, 뭐지 뭐지? 일단 수업 끝나고 생각하자. 그림 그릴 시간도 빠듯한데, 어수선하다. 집중하자. 집중!"

 

현진은  머리 속으로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수업을 마친 후 노부인은  의자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면담을 요청했다. 현진은 스케치북과 미술 도구들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작년부터  수업을 같이 듣고 있는 하민과 지숙을 만났다.


  "새로 오신 분이 수업을 어느 반으로 선택하세요?"

하민은 지숙에게 물었다.


" 네, 아마 B반 들을 것 같아요. 다들 다음 주에 만나요."


지숙은 가볍게 손을 흔든 후 차에 탔다.


"네, 다음 주 화요일에 만나요. 다시 숙제 스트레스가 시작됐네요."


손을 흔드는 두 사람에게 인사한 뒤 현진은 차에 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다 마찬가지지. 나도 내일 어떻게 될지 알아?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1년은 장담하지? 암에 걸렸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차 안에서 현진은 예측할 수 없어서 당황했던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테디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었다. 년 전, 17년 1개월을 산 테디가 년 정도 투병 끝에 죽었다. 테디는 갈색 푸들로 심장병으로 고생했다. 시간을 맞춰서 하루 세 번씩 약을 먹이고, 2주에 한 번은 검진을 받아했다. 당시 교사였고, 학교가 집에서 멀었던 현진으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었다. 혹시 테디가 집에 혼자 있다가 죽을까 봐 겁도 났었다. 특히 낯선 사람들이 초인종이라도 누르면 짖다가 심장이 멈출 수 있었다. 현진은 태호가 6학년 때까지 13년을 돌봐 주셨던 유모에게 테디가 숨을 거둘 때까지  낮에는 집에 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테디를  현진의 가족들은 불안하게 바라보며 무척  안타까워했었다.


 테디의 죽음은 예견되어 있었지만, 태호의 반응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태호는 테디가 죽은 뒤 일주일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 정도로 타격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일주일이 지나고, 학교에 간 지 한 달 뒤 담임 선생님한테 지금 당장 상담을 하고 싶다는 문자를 받았다.  오후 2시쯤 연락이 왔는데, 현진은 마침 그날 오후 수업이 없어서 조퇴를 신청하고, 태호 학교로 갔다. 뭔가 큰일이 난 듯했다.


"테디 때문에 내가 학교를 그만두게 될 줄이야. 인생은 참......"

 현진은 운전을 멈추고 차에서 내렸다. 태호가 학교를 휴학한 후 현진은 혼잣말을 자주 했다.


현진은  집에 와서 커피 머신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서,  마루 창가에 있는 안마의자에 앉았다.  그러면, 불안한 생각이나 기분 나쁜 생각이 좀 가라앉았다.


  태호의 담임은 이성적인 여자 수학 선생님이었다. 같은 학교 후배여서  건너 건너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말을 아끼며 조심스럽게 태호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어머니, 태호가 자꾸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자요. 저도 오랜 친구였던 푸들이 죽었다는 건 태호한테 들어서 아는데, 최근에 하도 학과선생님들이 지적해서 연락드렸어요. 오늘 좀 일이 있었고요. 태호한테 정신적인 상처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담임 선생님은 그날 국어 시간에 또 엎드려 자고 있는 태호를 보다 못한 K선생님이 태호를 흔들어 깨우며 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니라고 물었는데, 태호가 개 같다고 말해서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했다.

은퇴를 1년 앞둔 K선생님은 태호가 본인을 개새끼라고 부른 것에 대해서 태호의 뺨을 때릴 정도로 단단히 화가 났단다.


"태호는요? 태호는 지금 어디 있나요?"


현진은 당황해서 태호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방과 후 수업까지 있는데, 태호가 수업을 다 참여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집에 일찍 가기 싫다고 지금 수업하고 있어요. 태호는 K선생님께 사과도 거부하고 있어요. 제가 K선생님께 부모님께 말씀드려 태호를 사과시키겠다고 약속해서 어머님께 급하게 연락드린 거고요. 다행히 빨리 오셨네요."


 현진은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태호를 만나 K선생님께 가서 같이 고개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태호는 자기가 분명히 "개가 되겠다"라고 대답했는데 K선생님이 태호가 개 같다고 말했다고 화를 내며 뺨을 때렸다고 억울해했다.  반아이들은 "개 같이 살고 싶다."하기도 하고, "개랑 같이 죽고 싶다."라고 하면서 다섯 무리가 각각 다른 증언들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현진은 태호에게 왜 수업 시간에 자꾸 자냐고 물었다. 태호는 테디를 보고 싶어서 그렇다고 했다. 현진은 아들의 말이 믿기지 않아서 여러 번 물었다.


"왜 테디가 보고 싶은데 잠을 자? 그것도 수업 시간에? 사진이며 동영상이며 테디를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잖아."


 " 자면, 꿈속에서 자주 테디를 만나. 테디는 가 태어났을 때부터 같이 있었어.  테디가 없는 세상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태호는 울기 시작했다. 테디가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테디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며, 젖은 눈으로 현진을  바라봤다. 아들의 슬픔에 가득 찬 눈을 보는 순간 현진은 온몸에 한기가 쫙 흐르며, 소름이 돋았다.

그해는 현진이 교사를 한 지 21년이 되는 해였고, 현진은  여름 방학이 끝날 때쯤 사표를 냈다. 그만큼 태호의 상태는 심각했다.


현진은 왜 미술관 수업의 노부인의 말을 듣고 테디와 태호가 떠오르는지 생각했다. 테디는 17년 1개월의 삶을 살고, 현진의 가족을 떠났다. 테디는 강아지로 태어나 개가 되어 살다가 죽었다. 태호는 이제 17살이 되었고, 곧 어른이 될 것이다. 소마 미술관 수업에서 만났던 노부인은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1년 후에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낯선 현진에게...


  태호는 학교를 1년 반을 쉬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태호는 학교를 가려고 하지 않았다. 태호는 수업 시간에 자기를 흔들어 깨웠던 선생님이 자기가 하지도 않은 말을 듣고,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일으켜 세워 뺨을 때렸던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자다가 일어나 정신이 없었던 상황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주변의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 웃었다. 현진은 어쩌다 친구들과 농담하던 '무서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위력을 경험했다.

 현진의 친구들은 학교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예측할 수 없고, 다루기 힘들다며, 농담처럼 우리나라는 중2가 지킨다고 했었다.


"북한군도 중2 무서워서 못 내려와"


그 말을 들을 때 현진은 분단된 나라의 현실이 자각되어 웃프다고 생각했었다

 태호의 반아이들은 태호의 상황을 단순한 이벤트로 여겼다. 반 친구들 중 태호의 말을 정확히 듣고, 같은 편이 되어준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울려 다녔던 4명의 친한 친구들은 못 들었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들은 못 들었다. 그 사실이 태호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친구라면 다 듣고, 자기편이 되어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친구라고 다 들리지 않고, 안 들리는 걸 들린다고 할 수는 없어."


현진은 태호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태호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들도 무서운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전생같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2년 전 일들을 떠올리면, 현진에게  그동안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했던 질문이 또 메아리쳤다. 질문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던져진 후 계곡을 따라 수없이 반향 되다 흐리게 사라진다.


 "K선생님은 왜 태호에게 과거나 현재의 상태를 묻지 않고, 미래를 물었을까? 아이라서?"


 노부인에겐 아무도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어른은 크지 않으니까. 적어도 육체적으로 클 수가 없으니까. 태호는 자기가 미래에 뭐가 될지 모르는데 왜 물었을까? 태호가 테디 때문에 자신의 삶을 멈추고 싶어 할 때, 책상에 엎드려 있는 무력한 태호에게  선생님은 미래를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지쳐서 자고 있니?"


 현진은 그때 K선생이 태호에게 이렇게 물었어도 태호가 "개가 되겠다"라고 대답하였을까 궁금했다. 현진은 태호가 '같다.'라고 말 안 했다는  확신도  없었다. 잠들어 있던 아들이 횡설수설했을 수도 있으니까. 지나간 , 보지도 못한 상황을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어쩌겠어. 다 생각이 다른걸. 그래서, 한 치 앞도 모르게 세상일이 흘러가는 것 같아."


 현진은 다 마신 커피잔을 안마의자 옆 티테이블에 놓고, 의자의 전원을 리모컨으로 켰다. 안마를 받으면서도, 태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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