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는 거울을 보며 우는 것을 좋아했다. 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뭔가 마음이 편안했다.
거울을 보지 않고 울면, 우는 내내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서 오래 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거울을 보기 위해 자신의 방이나 화장실, 현관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다.
'울 때 너무 찡그려서 주름이 많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아님 눈물을 많이 흘리다 다음날 눈이 부어 쌍꺼풀선이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현수는 울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거울을 보면서 울면 자기가 원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고 눈물의 양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했다. 계속 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 중간중간 쉬면서 울어야 했다.
우는 것을 유지하다 멈추고 싶을 때는 거울 속의 눈을 바라보았다.
‘왜 울고 있지? 그렇지 그렇지, 난 돈이 필요해.’
좀 쉬다 다시 울고 싶어질 때는 현수는 아빠 생각을 했다. 9년 전 돌아가신 아빠 생각을 하면 그녀는 금방 다시 슬퍼져서 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수는 자주 울었다. 어머니인 은정이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는 뜻이 관철될 때까지 소리 내서 며칠을 울기도 했다.
현수가 생각하기에는 은정은 무엇이든 조용히 부탁했을 때 들어주지를 않았다.
부탁할 게 있어 문자를 보내거나 카톡을 보내면 거의 답장이 없었다.
은정이 오후 8시쯤 집에 오면, 현수는 대답이 없었던 것에 대해 자주 항의했다. 은정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정말 바빴어. 치료하느라. 항상 하는 일이지만, 쉽지 않아. 그때그때 집중해야 해. 절대적인 시간도 필요하고."
엄마가 침놓아야지, 추나도 해야지, 환자들 정신적인 고충도 들어야지. 미안해, 우리 현수."
은정은 매번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침이 부황으로 바꾸거나 추나가 골타요법으로 바뀔 뿐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영혼이 없는 준비된 대답이었다. 현수는 어머니는 울며 이야기할 때 빼고, 자신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도 현수는 울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은정은 오전 진료만 마치고 학회나 친구 모임을 갔다.
오늘은 은정이 참여하는 목요일 모임의 한 친구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래서 모임이 취소되어 은정은 오래간만에 집에 머물렀다.
현수는 은정에게 6월에 갈 여행 이야기를 했다.
"요즘 불황이라 정말 돈 벌기가 쉽지 않아.
다른 친구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신이 번 돈으로 가는 건 어때?
참, 그리고, 도대체 언제 복학할 거니?"
"엄마, 9월에 학교에 갈 거라고 백번쯤 말한 것 같은데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요. 왜 제 말을 안 듣는 거죠?"
현수는 작년 가을부터 휴학상태였다. 현수는 공부를 썩 좋아하진 않았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다니는 동안, 현수는 전공과정이 잘 안 맞았다. 전과를 하려고 했으나 시기를 놓쳤다는 걸 알았다.
대학을 다시 공부해서 입학하려니, 수능공부는 하기 싫었다. 편입을 하기에는 현수가 다니는 대학이 서울 중위권 대학이라 애매했다. 현수가 편입한다고 해도 지금 대학보다 더 잘 가기도 힘들었고, 일류대학을 지원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현수는 공부하고 싶은 학문을 부전공으로 선택해서 복수학위를 따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수는 앞으로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해야 하니, 그전에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학기를 쉬었다.
그런데 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너무 편해서 1년을 쉬기로 했다.
"엄마, 다른 친구들 누구? 나랑 같이 여행 가기로 한 애들 중에 아무도 아르바이트해서 저축한 애는 없어요.
민주랑 정인이, 미성이 엄마들은 젊었을 때 무조건 여행 많이 가야 한다고 해요.
다들 두 말 안 하고 통장에 입금해 주셨대요."
현수는 엄마 말이 근거가 없다는 것으로 항변했다.
"그럼, 친구엄마한테 가서 딸삼아 달라고 하던가,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은정은 눈을 부라리며 현수에게 대답했다. 차분하던 평소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집에서 쉬니까 화 낼 에너지도 생긴다고 은정은 생각했다.
'하루하루가 정말 지쳤었구나.'
현수는 서러움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친딸한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현수는 은정을 흘겨보다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현수가 본격적으로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은정은 마루 소파에 앉아 현수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잠겼다.
현수는 참 잘 울었다. 은정은 어릴 때 현수의 모습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어찌나 울던지"
은정은 친구들에게 아이가 밤에 너무 울어서 밤잠을 설친 이야기를 졸리는 눈으로 말했다.
말하면서 하품도 한 번씩 했다.
"애가 안아주지 않으면 무턱대고 울어서 계속 안고 있느라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어."
은정은 당시에 대형 한방병원에 월급쟁이 의사라 몸을 많이 쓰는 추나요법을 담당하고 있었다.
젊어서 그나마 버텼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나이에 서글퍼졌다. 몸이 아무래도 그때보다는 빨리 지쳤다.
"사람들이 애가 손을 타서 그렇다고 하면 얼마나 억울하던지.
애가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우는데 안아주지 않으면 어떻겠어."
은정은 현수가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랐다. 현수가 휴학한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은정은 휴학하고 놀러 다니는 현수를 보면 좋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현재 은정의 경제 상황이라면 굳이 현수가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은정은 현수가 고생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자신도 남편처럼 어느 날 갑자기 현수 곁을 떠났을 때 철이 없는 현수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는 불안했다.
자상하고 다정했던 남편은 직장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좋지 않으니 정밀진단을 받아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얼마 뒤 그는 대장에서 발생한 작은 암덩어리가 간으로 전이된 후 사방으로 퍼져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말기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는 항암치료를 거부했고,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은정은 너무 괴로워서 울 수가 없었다. 방학이었던 12살 현수가 하루 종일 우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현수가 그녀의 몫까지 울어 주는 것 같아, 남편한테 덜 미안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을 위해 며칠을 쉴 새 없이 우는 우리 현수가 있어 덜 외롭게 떠났을 거예요.”
은정은 자신이 심한 우울감 때문에 감정의 마비가 왔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되어 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은정은 좀처럼 울지 않았다. 남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매우 사랑했었다. 그의 영혼은 자신과 현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고 있을 것이다. 은정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저는 앞으로 당신 몫까지 하며 현수를 키울게요. 제 앞에 펼쳐진 삶이 너무 두려워요."
은정은 오늘도 남편에게 다짐했다.
*
은정은 현수가 다섯 시간 이상 울다가 어느 순간 멈추었을 때 현수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현수야, 네 통장으로 여행비 보냈다. 잘 다녀와. 잘 준비해서."
현수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침묵이 자리 잡았다. 은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방 쪽으로 발을 뗐다.
"내가 우리 현수 잘 키울게. 힘들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하며."
은정은 남편이 곁에 있는 듯 조그맣게 속삭이듯 말했다. 은정은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옆 1인용 티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요일 스케줄을 살피려고 핸드폰을 켰다.
현수는 방에서 우는 것을 잠시 쉬고 거울을 보고 있었다. 울음을 이어가기 위해 아빠와 동물원에 가서 아기 사자를 보았을 때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멈췄다. 엄마의 여행에 대한 허락이 떨어졌다. 현수의 계좌에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떴다.
"엄마는 왜 꼭 내가 울어야지 돈을 줄까?"
현수는 안심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은근 내가 우는 걸 즐기는 것 같아. 울기를 바라는 느낌?"
현수는 어쨌든 친구들한테 여행 간다고 알려야 했다. 여행계획을 짜려면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수는 거울 앞에서 일어났다.
"우는 일은 참 피곤해. 그래도 거울이 있어서 다행이야"
현수는 핸드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