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예술품이다. 수진은 벌거벗은 채로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제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부기가 가라앉다니. 재수술이라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었다. 수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답고 큰 두 눈이 완벽해 보였다.
밥그릇을 두 개 엎어놓은 듯한 가슴과 빵빵해진 엉덩이는 허리를 더 가늘게 보이게 했다. 최근에 배에서 뺀 지방을 엉덩이로 재배치했다. 지방 500cc가 이렇게 다른 느낌을 주다니. 피부과에서 특별 이벤트로 기존 피부시술 고객에게는 50% 세일을 해줬다. 수진은 이제 호리병 몸매의 소유자여서 핑클의 전 멤버인 효리가 부럽지 않았다.
오뚝한 코, 요즈음 인기 있는 코 끝이 살짝 들린 코이다. 수진은 영어의 'nose in the air'라는 표현을 성형한 코모양이 제대로 자리 잡았을 때 떠올렸다. 도도하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새뜻한 미소를 지었다.
코가 낮아 빈대떡에 파리가 앉은 것 같다고 자신을 놀렸던 오빠가 생각났다. 오빠는 수진을 보고 뭔지 모르게 예뻐졌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도 작아지고 입체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오빠는 수진을 곰곰이 바라보다 살 빠지는 게 최고의 성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겠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완벽한 성형미인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수진은 자신이 피그말리온 같다고 생각했다. 수진은 자신이 만든 대리석 조각과 사랑에 빠진 키프로스의 조각가인 갈라테미아기도 했다.
대리석의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성형미인, 이 외모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수진의 아름다운 마음과 지성을 담기에 타고난 외모는 적절하지 않았다. 수진의 자신의 내면의 아름다움에 걸맞은 외모를 만드느라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시간과 돈을 쓴 것은 물론이고, 수술 후 통증을 견디며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다.
수진은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입학하기 전, 나이가 예순이 넘은 경험 많은 여의사에게 쌍꺼풀 수술한 것이 시작이었다. 명동에서 유명한 성형외과였다.
그 의사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서인지 쌍꺼풀을 가늘고 좀 작게 했었다. 게다가 10년이 지나자 속쌍꺼풀처럼 되었다. 수진이 볼 때, 자신의 눈이 시원하고 상큼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앞트임, 뒤트임까지 해서 눈이 2배쯤 커지고 시원해졌다. 이제야 수진이 원하던 외모가 완성되었다. 앞으로 세월이 지나면 또 눈꺼풀이 살짝 가라앉을 수도 있겠지만, 첫 수술처럼 되지 않는다고 의사가 분명히 말했다.
수진은 강남에서 연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의사인 것을 여러 번 확인한 뒤 2배 이상의 비용을 내고 재수술했다.
수진은 하루종일 거울 앞에 서있고 싶었지만, 1시간 뒤 약속 때문에 서두르기 시작했다. 빨리 샤워하고 여행계획을 세우러 가야 했다.
'이번이 기회야'
마음속으로 의지를 다지며 외쳤다. 이번 S대 공대 최고 경영자 과정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태국 치앙마이로 떠나는 골프 여행을 위해 수진은 많은 준비를 해왔다.
총동창회에서 준석을 보고 나서 수진은 올해 기수의 대표를 맡았다. 준석은 그녀보다 두 기수 위였는데 대기업 GK그룹의 아들이라는 것을 동기들끼리 대화할 때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총동창회 행사에서 준석이 일 년 동안 총동창회 회장을 맡게 됐다고 인사할 때였다. 수진은 동기인 지호에게 샴페인잔을 들고 다가갔다.
지호는 스노 크랩 살을 다져 소스에 버무려 얇게 저민 사과 위에 둥글게 얹은 애피타이저를 종이 접시에서 포크로 먹고 있었다.
"지호 씨, 올해 회장 잘 알아요? 자기가 GK그룹에서 근무했다고 한 것 같은데."
수진은 그에게 소곤거리듯 물었다.
"GK그룹 송 회장 셋째 아들. 미혼인지 돌싱인지 그래요. 아는 건 그게 다예요."
지호는 수진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꼭 집어 대답했다.
"누나, 오늘 너무 고혹적이세요. 원래 미인이시지만 광채가 나시는군요."
지호는 항상 사람들을 칭찬했다. 지호는 세련되고 편안하고 사교적이어서 인기가 많았다. 수진은 본능적으로 지호도 자기처럼 뭔가 타깃을 찾는 것을 알았다.
날씬하고 날렵하며, 항상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탐색하고 있는 지호의 눈동자들은 자주 수진의 눈과 마주쳤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지. 나는 너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아.'
수진은 지호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파티 잘 즐기라는 말과 다음 수업에서 보자는 의례적인 말을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수진은 총동창회 운영위원 중 총무를 자원해서 맡았다. 해외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았는데 바빠서 맡겠다는 사람들이 없었다.
젊고 아름다운 수진이 총무를 지원했을 때 동창회 운영진에서 반가워했다. '어린 사람이 하드렛일하는 게 당연하지'라며 경영자 특유의 오만함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진은 총동창회 회장의 비서를 만났다. 총동창회 부회장인 창회와도 합석해서 총동창회 골프행사의 대략적인 일정과 프로그램을 의논하고 헤어졌다.
*
수진은 석촌호숫가에 있는 복층 오피스텔 건물 11층에서 반전세와 월세를 내고 살고 있다. 천장이 낮은 부분 2층 공간이 있고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공사는 집주인이 일정한 금액을 내고 하기로 되어 있었다.
수진은 월세를 10만 원 적게 내는 조건으로 자신이 산 걸이용 계단 사다리를 사용했다. 부분 2층 공간에 이불을 깔고 침실로 사용했다.
1층에는 호수가 보이는 창 쪽으로 6인용 식탁을 놓아 그녀의 디자인 작업 책상 겸 식탁으로 사용했다. 현관문을 열면 작은 싱크대와 세탁실이 왼쪽, 샤워부스가 있는 화장실이 오른쪽으로 자리한 공간의 효율성이 극대화된 오피스텔이었다.
전망이 정말 훌륭했다. 서울 시내에 석촌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을 가진 공간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창을 통해서 보이는 호수 안에 자리한 마법의 성은 낮에는 하얀 성체와 옅은 파란색 지붕들이 이국적으로 보였다. 어린 시절 디즈니 만화를 볼 때 노래와 함께 보이는 바로 그 성이었다. 호숫물의 윤슬과 햇빛을 반사하는 황금빛 나무들 사이에서 마법의 성은 후광을 두르고 있는 듯 보였다. 수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며,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씩 들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밤이 되면 , 마법의 성은 다양한 조명들로 반짝반짝 빛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빽빽하게 돌아다녀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어느 날, 수진은 잠이 오지 않았다. 창의 블라인드를 치지 않은 상태에서 2층 이불에 누워 창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의 미모와 노력으로 저런 성의 주인이 될 거야'
식탁 옆에 세워둔 여행용 가방을 내려보며 곧 가게 될 여행에서 할 다양한 계획들을 세웠다. 만약 총동창회 회장이 너무 철벽을 치거나 공략하기 어려우면 다른 타깃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의 완벽한 외모와 지성, 인간적 매력이면 유혹 못할 상대가 없다고 자신했다.
“사람은 항상 플랜 B는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다 잠을 너무 못 자면 피부가 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려가서 블라인드를 치고 어두운 상태에서 푹 자야 했다. 안대를 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다리를 내려갔다 올라오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수진은 한밤 중에 계단 사다리를 내려와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를 내렸다. 식탁 옆에 놓인 여행가방을 바라보다 바닥에 주저앉아 팔로 가방을 감싸 안은 후 다리로 둘러쌌다. 가방을 안은 자세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놓여 있는 2층으로 올라는 걸이용 사다리를 바라보았다.
수진은 계층 사다리를 올라 원하는 것들을 얻고 싶었다. 명예, 돈, 아름다운 피그말리온에 적합한 마법의 성이 필요했다. 수진은 마땅한 대우를 제공할 수 있는 백마를 탄 왕자님을 기다렸다.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
수진은 마음의 소리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수진은 안았던 가방을 제자리에 놓고 푹 자기 위해 사다리를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