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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Oct 19. 2024

<우연한 만남>

은숙은  정순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정순은 시원한 수박주스를 천천히 한 모금 들여 마시고 카페를 둘러보며 만족해했다.


"여기 카페는 더울 때는 시원하고 추울 때는 따듯하고 정말 고마워요."


은숙은  미소 띤 정순에게 맞장구쳤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 <포근한 카페>에서  포근하고 시원한 카페로 이름을 바꿔야겠어요. 올해 여름이 더워도 너무 덥죠? "


"안 그래도 우리 교감 선생님 며느리가  웬만하면 집에 있으라고 난리도 아니었어. 아이코."


정순은  은숙의 눈치를 보며 입을 앙다물었다 폈다를 반복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자기야, 죄송한데 절대 우리 며느리가 교감인 거 말하면 안 돼. 우리 아들도 내가 이러는 거 싫어해요. "


은숙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휴, 걱정 마세요. 우리 사이가 하루, 이틀 사이예요. 작년 겨울부터이면 이제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저를 못 믿으시네."


은숙은  대답한 뒤 카페를 둘러보며 오른손 검지만 펴서  입술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카페 진열대로 가서 30분 전에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도 챙겼다.


"오늘 샌드위치 주문이 아침에 100개 들어와서 만들고 남은 재료로 할머니 생각해서 만든 거예요. 하나 드셔 보세요."


은숙은 매일 음료수 한 잔, 일주일에 샌드위치 하나, 쿠키 하나라는 주문에 정순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였다. 정순은 이상하게 생과일주스같이 비싼 음료수는 공짜로 줘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샌드위치나  쿠키는 처음에 먹으려 하지 않아서 은숙은 납득할만한 이유를 붙이기 시작했다. 먹고 살만큼만 장사가 되는 가게에 은숙은 자신의 소망을 닮은 이유를 달아 정순에게 샌드위치나 쿠기를 대접했다.

은숙이 지어낸 이유를 듣고 정순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한 번씩 그렇게 팔려 주어야지 숨통이 이지. 나  한복 바느질할 때 일감이 몰릴 때 힘든 줄도 몰랐어. 애 2명 학교 보내려면 번 돈이 어림도 없어 한숨 쉬다가, 아휴, 매일매일 울면서 살았지. 다음 날 끼니 걱정하며."


은숙은 미소를 띠며 정순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테이프 재생하듯 반복하는 정순에게 익숙해 있었다. 정순은 샌드위치까지 다 먹고 수박 주스 잔에 물을 부어 흔들어 먹었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난다.   큰 도로로 진입하기 전 동네 사거리 외곽지대에 있는 고물상이 카페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할머니, 내일 또 봐요. 일요일만 쉬시고, 참 부지런하셔."


은숙은 부엌 쪽문  앞에 내어 놓았던 종이박스등 재활용 쓰레기들을 정순의 리어카에 실었다. 흰 커트 머리에  마르고 몸집이 작은 정순은 리어카를 끌며 사라졌다.


은숙은 테이블을 정리하며 정순의 며느리를 떠올렸다.


"저희 어머니, 항상 울기만 하시는 분이세요. 만족이나 편안하게 쉬시는 걸 모르세요. 저희 입장에서 낯 부끄러우니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안 돼서 이렇게 부탁드려요.  이러다, 길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자식으로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겠어요. "


은숙은 카페 건너편 고급 아파트에 정순이 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몸빼 바지에 건한 러닝 같은 하얀 티나 초록 색 티를 주로 입고 카페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을 가져가도 되냐고 묻던 정순이 저기 산다고. 은숙은 배신감을 느꼈지만, 가만히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월권을 끊을 테니까. 어머님이 여기 오시면, 좀 살갑게 대해 주세요. 음료수나 샌드위치, 쿠기등 드시게 하시고요."


은숙은 속으로 기뻤다. 평소 카페의 재활용품을 수거하시던 할아버지가 넘어져서 다친 바람에 정순의 부탁을 들어줬는데 구독하는 고객이 생기다니. 

일주일 전 은숙은 하루동안  아메리카노만 10잔을 팔고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12시간을 꼬박 가게를 지킨 은숙이 자유를 포기한 대가가 3만 5천 원이었다. 최저 시급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이었다. 그럴 때는 은숙은 가게를 접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중년 여성을  파트타임으로 쓰는 카페도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 날이후로 은숙은  오후 8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았다.


"네, 그렇게 할게요.  커피나 차 한 잔은 3500원, 생과일주스는 6000원, 샌드위치는 8500원 대략 메뉴판 보시면 알겠지요? 일단 10만 원 결제하시겠어요?"


정순의 며느리는 메뉴판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계산을 했다.


"20만 원 결제할게요. 절대 돈 낸다고 하시면 안 돼요. 저희 어머니, 상상 이상으로  알뜰하셔서 비용이 지불된 걸 알면, 펄쩍 뛰실 거예요. 게다가, 저보고 울고불고하실 수 있어요. "


은숙은  노인이 공짜로 매일 차를 마실까 걱정이 되었는데 , 울고불고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왜 울어요?"


"저희 어머니, 친척들 사이에서  태어날 때부터 평생 울었던 사람 같다는 평이 자자해요. 마음에 안 들거나 뜻대로 안 되시면 그냥 우세요. 화가 나도 울고 슬퍼도 울고. 자세히 말하면, 집안 망신인 것 같아 , 이만 할게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 키워 주시고. 바람난 시아버지 대신 제 남편, 시누이도 가장역할하며 키우셨어요. 힘들어서 울만도 하죠."


은숙은 정순의 며느리의 태도에서 뭔가 이중적인 면이 보였지만, 굳이 정기 고객의 마음을 캐고 싶지 않았다. 며느리의 눈빛이 착해 보였고, 카드를 긁는 그녀의 손길이 고와 보였다.


"저 노인네, 웃기도 잘 웃네. 참, 볼 때마다 헷갈려.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건지....

다행히 냄새도 전혀 않나. 나면 이상한 건가?

손녀, 손자 용돈 주고 싶어 저런다니. "


은숙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들어오는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은숙은  밝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날씨 더워도 너무 덥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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