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 (2023) 리뷰
작년 개봉한 영화를 통틀어 국내 박스오피스 2위, 외화 중에서는 1위, 국내 총 관객 수는 7,239,470명. 국내 상영된 디즈니 & 픽사 애니메이션 중 역대 최고의 성적이며 지난 2019년 개봉한 <겨울왕국 2> 이후로 700만 관객을 동원한 첫 애니메이션 영화다. 바로 <엘리멘탈>의 흥행 기록이다. 개봉 이후 4주 연속으로 관객 수가 상승한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역주행까지 일어나며 한국은 졸지에 북미를 제외하면 엘리멘탈 흥행 1위 국가가 되었다. 이러한 이례적인 흥행 가도와는 달리, 무척 실망스러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에 출연한 캐릭터 강케 리는 한국계라는 설정이다. 그가 한국계라는 걸 증명하듯 침대 옆에 손흥민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손흥민은 톰 홀랜드와의 인연도 있고, 별명인 SONNY는 대놓고 SONY를 연상케 하니 여러모로 흥미로운 이스터에그다. 강케 리의 성우가 바로 엘리멘탈의 감독 피터 손이다.
피터 손의 부모님은 6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식료품점을 차려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 한다. 영화 속 앰버의 부모님이 겪은 일들은 곧 그의 부모님이 실제로 겪은 일들인 것이다. 이민자 구역으로 묘사된 파이어타운은 뉴욕의 코리아타운, 앰버가 아버지를 부르는 별칭 '아슈파'는 아빠, 웨이드가 진땀 흘려가며 먹은 숯콩은 한국의 매운 음식을 뜻한다. 앰버가 부모님께 절을 올리는 모습은 피터 손의 아버지가 한국을 떠날 때 형에게 절을 올리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불은 불끼리 만나야 한다는 앰버 할머니의 유언은 필히 한국 여성과 결혼하라는 피터 손 할머니의 유언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한다. 피터 손의 형제들은 할머니의 유언대로 모두 한국인과 결혼했으나 그는 유일하게 국제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웨이드를 만난 앰버의 모습과 겹친다.
이렇듯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고스란히 녹인 한국과 이민자 가정에 대한 여러 사랑스러운 표현은 영화 곳곳에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잠깐 지나가는 단순한 시각적 묘사, 극 흐름과 무관한 가벼운 디테일로 소모하여 아시아 문화를 영화에 녹여내는 방식에 있어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에 비해 이야기는 아주 평이하게 흘러간다. 플롯은 올드스쿨하고 주제 의식은 뻔하다. 쉬운 이야기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던 요인이기도 하나 단순하고 관습적이며 인물 간의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은 대부분 흐지부지 끝난다. 그동안 픽사가 보여준 '이야기의 힘'을 고려하면 그 이름값과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다.
영화는 가족의 이민과 정착 과정을 보여주며 이민자 및 인종 차별, 계급 갈등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깊게 다룰 것 같은 태도를 보이더니, 정작 갈등을 해결하는 단계는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겉핥기에 그칠 거였다면 피터 손 감독 본연의 삶을 녹인 이민자 서사가 플롯의 중심이 될 필요가 있었을까. 중반부터는 급격히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에 치중하다 보니 각 시퀀스가 분절되어 이야기가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영화가 사회적 이슈에 자신만의 해답을 명시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이민자 서사를 왜 넣었는가? 제대로 못할 거면 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거창하게 시작한 이민자 서사는 어느 순간 극의 흐름에서 완전히 이탈한다. 이민자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해 도식적인 접근, 평면적인 묘사가 있을 뿐이다. 영화 내 제시된 갈등 구조는 크게 봐도 3가지나 된다. 불과 타 원소 간의 인종 갈등부터 앰버와 부모님 간의 세대 갈등, 앰버와 웨이드 간의 계급 갈등까지.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첨예한 갈등들은 작품 속에서 미시적으로 나열되다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얼렁뚱땅 미봉된다.
이종 간의 차별 우화를 훌륭하게 엮어 낸 <주토피아>, 아시안 소녀가 부모의 요구를 거부하고 본인 의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메이의 새빨간 거짓말>, 가슴 사무치는 한국 이민자 서사를 담담히 표현한 <미나리>, 그리고 한국계 미국 이민자는 식료품점을 운영한다는 클리셰를 코믹한 시트콤으로 풀어낸 <김씨네 편의점> 등 엘리멘탈은 기존 작품들의 수많은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나 주토피아가 인종 차별에 관한 우화를 작품 전면으로 꼼꼼히 녹여낸 것과 달리, 원소 간의 갈등과 차별 문제는 잠깐 등장했다 빠지는 앰버와 웨이드의 로맨스를 위한 간단한 시련으로 전락한다. 차별 문제를 통해 현실을 꼬집을 것처럼 굴더니 로맨스로 관객의 눈을 돌려놓고 나 몰라라 하는 꼴이다. 사랑에 동반되는 주제 의식마저 매우 전형적인데 '사람은 저마다 다르지만, 인류는 평등하니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허울 좋은 원론에 머무른다.
무거운 주제 의식을 평범하게 다루는 노선을 선택했다면 최소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보여주었어야 한다. 엘리멘탈 시티의 외부인으로서 철저히 도외시되며 고난 끝에 외지에 힘겹게 정착한 앰버 부부의 서사는 앰버와 가업 인계 문제로 대립하는 가족 서사 내에서 이렇다 할 전환점 없이 두루뭉술하게 마무리된다. 불 앰버가 물 웨이드 가족에게 우리말을 잘한다는 차별적인 발언을 듣는 장면은, 미국에서 태어난 완전한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생김새로 인해 타자화되는 이민자 2세대의 단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물 일가가 특별한 악의 없이 매사에 친절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성격이라는 설정을 통해 참으로 편리하게 뭉뚱그려진다. 화목한 상류층 미국 가정에서 우환 없이 자란 백인 남성과 아시안 미국 이민자 2세 여성이 반대에 끌려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또한 기존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대로 따왔다. 특히 웨이드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앰버를 구하는 장면은, 강자인 남성이 약자인 여성에게 헌신하여 성사되는 수직적 로맨스의 전통을 따른다.
결국 영화는 계급과 인종, 명백한 두 가지 장벽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엘리멘탈 제작진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보다 깊게 다루려는 노력보다, 불과 물의 만남이 이뤄지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앞섰던 것 같다. 그렇게 로맨스가 가장 중요한 주제로 강조된 나머지 사회적 문제는 그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찰나의 장애물 정도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각적으로는 훌륭한 영화인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물과 공기를 표현하는 재치, 아름다운 엘리멘탈 시티의 전경, 웨이드와 앰버의 데이트 씬 등 픽사의 상상력이 십분 발휘되어 눈이 즐거운 장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픽사의 지난 작품들과는 달리 스토리텔링 대신 비주얼텔링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엘리멘탈을 스포일러 없이 영화관에서 감상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섞일 수 없는 불과 물의 스킨십을 어떤 픽사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구현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앰버와 웨이드가 손을 맞잡는 씬이 가장 실망스러운 지점이 되었다. 불과 물은 만날 수 없다며 펄펄 성내던 앰버의 부모님이 무색하게, 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원소 차이는 아무런 설명 없이 해소되어 버린다. "우리 체질이 바뀐 거야!"라는 웨이드의 대사 하나로 말이다. 아니, 그래서 체질이 어떻게 바뀐 건데? 금단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묘책으로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내내 기대하던 마음이 속된 말로 팍 식어버렸다.
특히 중후반부 플롯의 중심이 앰버와 웨이드의 사랑이었기에 불과 물의 화합만큼은 조금 더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길 바랐다. 더구나 이 클라이맥스는 로맨스의 절정일 뿐 아니라, 원소로 비유된 서로 다른 존재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방법을 제안했어야 할 영화의 핵심부다. 이민 서사의 개연성도 내팽개쳤고 갈등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비주얼텔링의 설득력조차 기준 미달인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서사가 밋밋하니 상대적으로 비주얼이 강조된 건 아닌가?
CJ와의 결탁으로 드림웍스가 상영관을 독점하던 2000년대, 디즈니가 한국 시장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 시절에도 픽사의 국내 팬층은 꽤 탄탄한 편이었다. <릴로 앤 스티치>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밀려 고작 서울 12만에 그치고, <로빈슨 가족>이 간신히 전국 10만을 찍던 때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은 전국 100만을 넘겼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애니메이션 영화가 100만 명을 동원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기존의 코어팬들은 과거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합병한다는 소식을 듣고 픽사만의 독창성이 디즈니에 잠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데 픽사는 합병 이후 <라따뚜이>, <월-E>, <업>, <토이 스토리 3> 등 미친 폼을 구가하며 전 세계적으로 대흥행을 거뒀다. 디즈니 역시 <공주와 개구리>로 점차 반등의 기미를 보이더니 <겨울왕국> 시리즈로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전국에 렛잇고 열풍이 분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심지어 인수합병은 20년이 다 되어간다. 엘리멘탈이 '디즈니스러운 픽사 작품'이라는 의견에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두 회사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지금의 디즈니와 픽사는 부정할 수 없는 한 몸이다. 묘하게 디즈니스러웠던 픽사의 <버즈 라이트이어> 다음 작품이 이번 엘리멘탈이다. 주토피아가 픽사스러움을 풍기면서도 과거 픽사 명작들과 견주기엔 화법이 다소 디즈니스럽다면, 엘리멘탈은 픽사 특유의 상상력은 살짝 부족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은 보장하는 정제된 공산품 같다. 이제 더 이상 두 회사 사이에 예전과 같은 뚜렷한 경계는 없다고 느낀다.
픽사의 디즈니화(Disneyfication)를 논하기엔 아득히 멀리 왔다. 디즈니피케이션은 도시가 디즈니랜드처럼 관광객을 위한 테마파크로 변모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영화에 쓰는 말은 아니지만, 이미 디즈니피케이션은 문화 콘텐츠 전반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가 마블 영화는 '테마파크'와 같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을 논리적으로 펼친 인물이 있었는가? <블랙 팬서>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보다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 밥 아이거? 아님, 톰 홀랜드? 엘리멘탈은 픽사의 사랑스러움과 디즈니표 테마파크를 적당히 섞어 만든 공산품으로서 국내에 7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픽사 팬으로서, 디즈니라는 거대 프로파간다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픽사의 현주소에 마음이 쓰라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