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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란 Jul 22. 2021

끈끈이 펜션

도윤이네 가족은 어깨에 날개라도 달린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끝자락에 ‘끈끈이 펜션’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는 펜션이 보였다. 동글동글한 화산 송이가 깔린 널찍한 마당에 아담한 집 두 채가 마주보고 지어져 있었다.

 “실례합니다. 오늘 펜션 예약한 사람인데요.”

 아빠가 주인집인 듯한 집의 현관으로 들어서며 두리번거렸다. 거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그물침대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하얀 레이스 실로 둥그런 식탁보 같은 것을 뜨는 것 같았다. 유난히 길고 깡마른 팔과 다리에 가슴 아래로 배가 불룩 나온 할머니였다. 짧은 회색 머리카락이 머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데다가 회색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열쇠 여깄수.”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휙 집어던졌다. 

 “필요한 건 다 준비해 놨으니까 모레 갈 때 거기 선반 위에 열쇠 올려놓고 가슈.”  

 할머니의 입에서 끈적하고 허연 침이 쉴 새 없이 튀었다. 엄마가 아빠 소매를 잡아끌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마당에는 오렌지만 한 감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우와, 엄마 저것 좀 봐! 대왕 귤이다!”

 도윤이가 감귤나무 쪽으로 달려갔다. 감귤나무가 가까워지자 도윤이가 화들짝 놀라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도윤이의 손바닥만 한 거미가 감귤나무 가지에 커다랗게 거미줄을 치고 매달려 있었다. 아빠가 스마트폰으로 거미 사진을 찍어 검색해 주었다. 

 “무당거미네. 다리에 이렇게 노란 줄무늬가 있는 걸 보니……. 히야, 근데 진짜 크다. 아빠도 이렇게 큰 거미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우와, 이 거미 타란툴라만큼 크네.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울까? 우리집에 있는 장수풍뎅이랑 싸움 붙이면 재밌겠다.”

 도윤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었다. 

 “그 거미 그냥 거기 놔둬!”

 갑자기 주인 할머니가 꽥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가족들이 서둘러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펜션 안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엄마가 흐뭇하게 웃으며 집안 곳곳을 살폈다. 싱크대 서랍, 냉장고, 화장대 서랍까지 구석구석 열어보며 감탄을 했다. 

 “응? 여기 사진이 있네. 주인 할머니 손자 사진인가?”

 화장대 서랍 깊숙한 곳에 작은 액자 하나와 공책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액자에는 노랑과 검정 줄무늬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감귤나무 옆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공책을 펼쳐 보려던 엄마는 괜한 짓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서랍 안으로 집어넣었다. 

  “엄마, 나 마당에서 무당거미 좀 더 보고 올게.”

 도윤이의 발소리가 들리자 나뭇가지에 거미줄을 치고 있던 무당거미가 도윤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도윤이가 무당거미를 요리조리 살피며 말을 걸었다. 웬일인지 무당거미도 도윤이의 말을 알아듣는 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이 거미는 아까 스마트폰으로 보았던 무당거미와 어딘가 좀 달랐다. 여덟 개의 홑눈 중에 두 개의 홑눈이 유난히 커서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보였다. 가족 모두 피곤했는지 저녁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도윤이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화장실에 들어간 도윤이가 엄마를 급히 불렀다. 

 “엄마, 엄마 여기 거미가 또 있어.”

 화장실 천장 구석에 작은 회색거미가 서너 마리 붙어 있었다. 

 “어머, 깨끗한 줄 알았더니 집안에 웬 거미라니. 할머니한테 에프킬라 좀 달라고 해야겠다.”

 엄마를 따라 도윤이도 쪼르르 마당으로 나갔다. 할머니도 일찍 일어났는지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 화장실에 거미가 있어서 그러는데 에프킬라 같은 거 있으면 주실래요?”

 엄마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했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또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뭉치가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깔고 앉은 건지 할머니의 엉덩이 쪽에서 실이 나오고 있었다. 

 “뭐여? 살아있는 거미를 죽이겠다는 거여? 그러려면 돈 돌려줄 테니까 당장 나가!” 

 할머니가 불같이 화를 냈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엄마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서 무당거미를 보고 있던 도윤이가 또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 거미줄 좀 봐봐. 이거 글씨 맞지?”

 아침 이슬이 맺힌 거미줄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미줄 한가운데 ‘도와줘’라는 글씨가 어렴풋이 보였다. 아침 이슬이 아니었다면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무당거미가 거미줄의 한쪽 끝에 앉아 도윤이와 눈을 맞추었다. 무당거미의 커다란 두 개의 홑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도윤이의 가슴이 울컥했다. 엄마는 웬일인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 아빠를 깨웠다. 

 “여보, 일어나 봐. 여기 뭔가 이상해. 할머니도 좀 이상하고 마당에 있는 거미줄에 ‘도와줘’라고 글씨가 쓰여 있어.”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느릿느릿 하품을 하며 일어난 아빠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게슴츠레 거미줄을 보던 아빠의 눈이 메추리알만큼 커졌다. 도윤이와 엄마, 아빠는 아침밥도 잊은 채 거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 맞다. 화장대 서랍 속에 무슨 공책이 하나 있었는데… 뭐라도 쓰여 있는지 봐야겠다.”

 엄마가 공책을 꺼내 왔다. 공책에는 일기가 쓰여 있었다. 펜션을 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펜션을 꾸려 나가던 젊은 남자가 쓴 일기였다. 그런데 마지막 일기가 조금 이상했다. 


   2018년 5월 10일 

 청소를 하는데 화장실에 작은 회색 거미 수십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는지 너무 작아서 자세히 안 봤다면 몰랐을 것이다. 에프킬라를 찾아 사정없이 뿌렸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회색 거미가 천장에서 내려와 손등을 물었다. 너무 놀라 에프킬라를 떨어트렸는데 큰 거미는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 독이 있을지 모르니 빨리 병원에 가봐야겠다. 나 이러다 스파이더맨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일기는 거기서 끝이 나 있었다. 한 달 전까지는 사진 속의 젊은 남자가 펜션의 주인이었던 모양이다. 아빠가 무언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주인집으로 향했다. 걱정이 된 엄마와 도윤이도 조금 떨어져서 아빠를 따랐다. 감귤나무 뒤에 숨어 우선 할머니를 훔쳐보기로 했다. 기이하게도 할머니는 그물침대에서 네 개의 팔과 다리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회색 원피스 밑에서는 흰 레이스 실 같은 것이 나와 그물침대를 더 단단히 엮고 있었다. 아빠는 하마터면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마당에 털썩 주저앉았다. 믿을 수는 없지만 세 사람의 예상이 맞는다면 저 할머니가 거미이고 마당의 무당거미는 사진 속의 젊은 남자임이 틀림없었다. 후들후들 떨며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믿기지 않는 듯 서로의 팔을 꼬집었다. 

 “여보, 당장 짐 싸자! 도윤인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아빠가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태평한 건 도윤이뿐이었다. 아니, 눈물짓던 거미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저 무당거미가 진짜 사진 속에 있는 형이라면 우리가 도와줘야지! 말도 못 하는데. 저 무당거미는 나만 믿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아빠, 우리가 도와주자. 응?” 

 “도윤아, 이건 장난이 아냐! 우리 모두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엄마가 여행 가방에 옷을 쑤셔 넣으며 도윤이를 나무랐다. 

 “엄마 거짓말쟁이! 엄마가 불쌍한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며! 지금 저 거미는 나만 믿고 있는데…….”

 허겁지겁 옷을 쓸어 담던 엄마의 손이 멈췄다. 

 “아빠, 아빠는 귀신도 안 무섭댔지?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그치? 맞지, 아빠?”

 엄마와 아빠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도윤이랑 당신은 우리 차 안에 들어가 있어. 차에 타자마자 문 꼭 잠그고. 알겠지? 내가 우선 할머니를 슬쩍 떠볼 테니까.”

 아빠는 곧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긴팔 티셔츠 위에 바람막이 잠바도 입었다. 손에는 등산 장갑을 끼고, 목에는 손수건까지 둘렀다. 아빠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흠, 흠,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 할머니, 마당에 있는 무당거미는 언제부터 있었어요? 너무 커서 신기해서요.”

 태연한 척 얘기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거미 할머니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물침대에 태연히 앉아 흰 레이스 실로 뜨개질을 하며 말했다. 아빠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뜨개질에만 열중했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빠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할머니, 사람들 참 이상하죠? 아무리 힘없는 동물이라고 막 잡아다가 가둬 놓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지를 않나, 해충이라고 죽여 버리지를 않나….”

 거미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아빠를 쳐다봤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니까 말여. 죄 없는 동물들을 왜 죽이느냐고. 그런 못된 인간들은 벌을 좀 받아야 해.” 

 그렇게 말하는 거미 할머니의 눈에 원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게요. 새끼 잃은 어미 거미는 얼마나 슬프겠어요.”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아빠의 말에 거미 할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빠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 실눈을 뜨고 노려보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아빠가 서둘러 차로 달려왔다. 다행히 거미 할머니는 따라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차를 몰고 펜션을 빠져나와 달리며 사이드미러로 펜션을 살폈다. 거미 할머니가 마당의 감귤나무 앞에 서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려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에서 태연한 척 바람을 쐬면서도 엄마는 도윤이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바다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빠가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여보, 우리가 그 주인 청년을 구해 줘야 하지 않겠어? 다른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을 거야. 그 거미 할머니도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은 것 같고…….” 

 다시 펜션으로 차를 몰았다. 대문과 주인집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며 무당거미부터 찾았다. 하지만 무당거미는 어디로 갔는지 빈 거미줄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조심스럽게 집안을 살폈다. 거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거실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무당거미가 그물침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어느새 아빠를 따라 나온 도윤이가 무당거미를 발견했다. 도윤이를 본 무당거미가 그물침대의 끝으로 가서 얇은 한 개의 다리로 거미줄에 싸인 번데기 같은 것을 가리켰다. 

 “아빠, 이 무당거미가 다리로 저 번데기 같은 걸 가리키고 있어.”

 도윤이가 황급히 아빠를 불렀다. 아빠가 장갑 낀 손으로 탁구공만 한 거미줄 뭉치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그 순간 시커먼 천장 구석에서 거미 할머니가 순식간에 뛰어내렸다. 

 “너, 이놈! 평생 거미로 살다가 죽게 하려고 했더니…. 내 새끼들을 다 죽이고도 네가 용서받을 수 있을 줄 아느냐?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마!”

 거미 할머니가 무당거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당거미는 아무 반항도 못 하고 와들와들 떨고 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도윤이가 무당거미 앞을 가로막았다. 

 “거미 할머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 형도 뉘우치고 있을 거예요.”

 “네 놈도 죽고 싶은 거냐?”

 거미 할머니가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어느새 거미 할머니의 팔은 가느다랗고 톱날 같은 거미 다리로 변해 있었다. 뒤에 있던 아빠와 엄마가 순식간에 달려와 도윤이 앞을 막아섰다. 

 “할머니, 얼마나 원통하실지 너무 잘 압니다. 저도 자식 키우는 어미인데요. 하지만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간절히 빌었다. 뒤에 있던 무당거미도 거미 할머니에게 사죄라도 하는 듯 머리를 바닥에 몇 번이나 부딪혔다. 거미 할머니가 들어 올렸던 기다란 팔을 천천히 내렸다. 거미 할머니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무당거미를 다시 한번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거미줄을 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엄마와 아빠, 도윤이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아빠와 도윤이가 거미줄 뭉치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왔다. 마침 마당 한 구석에는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다. 토치를 찾아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났다. 매캐한 연기가 마당에 안개처럼 깔렸다. 마침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기 시작했다. 서서히 연기가 걷혔다. 마당 한구석에 젊은 남자가 쓰러져 있다. 노랑과 검정 줄무늬 옷을 입은 사진 속의 그 남자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 좀 차리세요.”

 도윤이가 얼른 달려가 그 남자를 흔들었다. 젊은 남자는 정신이 돌아오는지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아빠가 그 남자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혔다. 젊은 남자가 아빠의 손을 잡고 자꾸자꾸 고개를 숙였다. 회색 유령거미에게 물린 후 자신은 거미가 되었고, 갑자기 이상한 할머니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가 자기를 물었던 유령거미라는 것은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거미로 살다 보니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며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초여름 밤의 푸근한 바람이 모든 걸 용서 한다는 듯 청년을 감싸 안았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너머로 거미 할머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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