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포르투 여행을 하고 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작은 골목길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걷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물이 나온다. 작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데 해물 밥이나 포트와인이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줄곧 케밥이나 인도 커리 등 독일에서도 익숙하게 먹던 음식을 찾아다녔다. 해산물도 술도 먹지 않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산물이 흔치 않은 중앙아시아의 내륙 지방에서 평생을 살았고 해산물의 생김새나 냄새를 기괴하게 여겼다.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심지어 아름다운 노을이 무척이나 유명한 포르투였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며칠 전 근처에서 일어난 큰 산불로 하늘이 온통 잿빛이었다. 맛있는 음식도, 환한 날씨도 즐길 수 없었던 이 작은 마을에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며 케밥 가게를 지나 예술가들의 거리로 접어들었다. 뾰로통한 기분에 걸음걸이는 무심히 빨라진다. 시끌벅적한 관광객들이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 앞에 모여있다. 그 할아버지 앞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듯한 커다랗고 복잡한 시계탑이 있고 그곳에 열 마리가 넘는 앵무새들이 앉아 있다. 아이들은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앵무새들을 홀린 듯 바라본다. 그곳을 지나 한층 조용한 골목길에 접어든다. 띄엄띄엄 앉아 있는 거리의 화가들이 자신이 직접 그린 듯한 엽서를 팔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젤을 세워두거나 자기 무릎 위에 올려둔 종이에 붓질하고 있는 남자와, 진열해둔 그림 옆에서 지루한 듯 거리를 응시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지나친다. 대부분인 중년과 노년의 남자 사이에서 젊은 여자 한 명이 눈에 띄고 나는 그녀의 그림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엽서 크기부터 커다란 전지까지, 다양한 크기의 그림들이 마치 빨래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정해 놓은 흰색 끈에 작은 나무집게로 걸려있다. 다른 화가들이 파는 엽서가 대부분 포르투의 풍경인 것과 달리 그녀는 단지 이곳에서 판매하고 있을 뿐 그녀의 내면세계를 그린듯했다. 한 명의 여인이나 자연, 동물들이 등장한 그림이 많았다. 그림 아래에는 에그하르트 톨레 풍의 문장들이 손 글씨로 적혀 있기도 했다.
사실 그림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마음에 든 건 그 그림들을 그렸을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 거리의 예술가는 곱슬곱슬한 검정 머리에 짧게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가졌고, 코에는 작은 은색 링 피어싱을 하고 있다. 니트 재질의 짧은 상의와 헐렁한 검은 바지를 입었다. 배에 보이는 꽤 큰 크기의 타투와 검은 바지에 찬 보라색 벨트가 눈에 띈다. 여자가 서 있는 곳 바닥에는 커다란 종이가 든 여러 개의 파일과, 물감과 펜, 벽에 늘어진 배낭 하나가 놓여있다. 그녀가 풍기는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낯선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물섬 같은 문구점처럼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왠지 재미있는 영감을 가득 지닌 보물상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배낭 안에서 구겨지지 않을만한 크기의 그림을 하나 골랐고, 가격은 10유로였다. 그 종이에 담긴 그녀의 예술적인 기운을 간직하고 싶었던 나는 현금을 뽑기 위해 얼른 근처 ATM기를 찾았다. 3.9유로라는 무시무시한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돈을 찾아 그림을 샀다. 그녀에게 사인과 함께 그녀의 다른 그림에 적혀 있던 문구 하나를 골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벽에 종이를 대고 글씨를 쓰는 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물었다. 그녀가 어쩌다 포르투의 거리에서 그림을 팔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을 산 건 그녀에게 말을 붙이기 위한 핑계였을지 모른다.
*그림을 그린 지 얼마나 됐어요?
-5년밖에 안 됐어! 별로 안 길지? 코로나 때 나는 이스탄불에 살고 있었어. 집주인이 있고 나는 2층에 세를 얻어 살았지. 밖에 못 나가고 집에 갇혀있다시피 하는데 그 집에 널린 게 종이와 물감이었어. 집주인이 화가였거든. 할 게 없으니까 집주인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어떤 색을 섞으면 좋은지 그런 걸 집주인에게 배웠어.
그녀는 자신의 첫 번째 그림이라며 내가 눈여겨보았던 그림 하나를 가리킨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춤을 추듯 팔을 하늘로 올리고 나풀나풀 걸어가는 모양새다. 배경은 검고 여자의 손끝 방향으로 금빛 새 한 마리가 있다.
-내가 처음 그린 그림을 보고 집주인은 “You can draw!”라고 말하며 놀랐어. 그리고 나도 놀라서 말했지. “I can draw! (나 그림 그릴 수 있네!) ” 나는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거야.
코로나 때 우연히 화가인 집주인을 따라 집에 갇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니, 그림을 그린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리에서 그림을 파는 삶을 살게 됐다니. 참 신기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그림을 받고도 질문을 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뭘 했어요?
-나는 과학 선생님이었고, 결혼 생활을 했었어. 나는 좋은 선생님이었고, 좋은 아내였고, 좋은 딸이었고, 좋은 시민이었어. 하하. 모든 걸 잘 해냈지. 하지만 매일 집에 돌아온 난 너무 지쳐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진정한 내 삶이 아닌 듯했어. 그래서 모든 것을 그만뒀어. 난 지금 가난하지만 행복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스탄불에 살며 결혼 생활을 했던 과학 선생님을 포르투 거리의 화가가 된 모습으로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내가 그녀가 과학 선생님이었을 것을 상상하지 못했듯 그녀 자신도 이렇게 포르투 거리에서 엽서를 팔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계획하고 노력해서 만들어 놓은 삶보다 계획 없이 만나지는 삶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지난 몇 년의 삶과 지금의 웃음으로 증명했다. 행복하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에게 자유를 찾은 사람의 향이 났다. 반복되는 일상을 깨뜨리는 두려움을 한번 넘어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향이었다. 그것에 이끌린 듯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 앞에 멈춰 섰다.
그녀와 헤어지고 거리를 걸으며 그의 말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 적었다. 그림을 포장한 봉투는 흔들리는 내 글씨에 옮겨진 그녀의 이야기로 덮인다. 내가 산 그림을 다시 한번 보았다. 정신없이 많은 물건과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눈에 들어오고 할 일들이 적힌 메모가 있는 방 한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즐거운 표정으로 명상하고 있는 여자가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여자가 그녀 같기도, 나 같기도 했다. 그림의 아래쪽에는 내가 고른 문구를 적어준 그녀의 손 글씨가 있다. Dear Hari, Trust your Art! 예술적인 삶을 사는 그녀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다. 하리, 너의 예술을 믿어!
내 가방에도 작은 수채화 팔레트와 붓이, 스케치북이 있었다. 내가 어느 날 거리에서 그림을 팔며 여행을 이어간다면, 그건 내가 내 그림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누구도 내게 그림을 그리라고 시키지 않고 예술적인 삶을 살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보고 싶다” “멋있다”하며 가슴이 뛸 때가 있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건 참 쉽다. 누군가 요구하지 않은, 시키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더 많이 쏟고 싶다면, 그리하여 남이 시키지 않은 무엇이 되고 싶다면 내 그림을, 스크래치를 예술이라 믿어봐야 한다. 시작은 다 그렇다.
“거리의 예술가 나도 해보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하자 지루한 케밥 생각에 뚱했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과학 선생님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람? 여행지에서 엽서를 그려 파는 많은 사람을 마주했지만, 한 번도 그림을 산 적이 없는 내가 그녀의 그림을 산 건 그림이 좋기도 했지만 거리의 화가인 그녀의 모습과 에너지가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유로운 에너지를 가진 이 사람의 조각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내 그림이 아니라 나를 보고 내 글과 그림을 사줄 것이다. 내가 삶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것은 겉으로도 티가 날 테다. 언젠가의 나도 어딘가 낯선 나라의 길거리에서 글과 그림을 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거리의 예술가 꿈나무가 된 나는 스케치북을 손에 꼭 쥐고 포르투 이곳저곳을 걸었다.
Dear All, Trust your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