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린 여행기

파리, 컨택즉흥 댄스, 유심 없이 여행하기

by 반하의 수필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어요. 비행기표 끊고 지도 하나 보면서 여행했어요.”


불편함을 토로하는 듯하지만 그 시대의 낭만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함이 느껴진다. 너네는 그런 고생 모르지? 스마트폰 없던 시절의 여행 이야기는 왠지 전설의 신화처럼 멀다. 편리한 여행은 모험이라는 말의 반대편에 섰다. 이 시대의 여행은 인터넷에서 본 사진, 누군가의 후기를 보고 진짜로 좋은지 직접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마치 도장 모으기 종이를 들고 부스를 돌아다니며 도장을 찍는 것처럼 비슷한 곳에서 사진을 남기고 비슷한 기념품을 손에 든다. 아무도 진짜로 살지 않는 꾸며진 것들 속에서 누구의 숨결과도 섞이지 않고 내 숨만 가쁘게 쉬다가 돌아간다. 그리고 말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남는 게 사진뿐인 여행이라면, 사실 여행을 하지 않은 거 아닌가?


같이 있는데 휴대전화를 보고 있느라 흐르는 침묵은 이미 죽어버린 대화의 장례식 같다. 베네치아의 운하에서 30분에 100유로짜리 곤돌라에 앉아 각자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연인과, 세바야의 광장에 앉아 연예인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나는 여행의 낭만을 망치는 주범이다. 이 시대의 편리함에 뒤처지지 않는 지난날의 낭만이 경험해 보지 않았어도 그립다. 여행은 소비와 관광으로 꽁꽁 묶였다. 우리는 곧잘 착각한다. 관광산업을 여행으로, 소비를 경험으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이 삶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체험들은 감정이 쌓이지 않는다. 여행지를 평면적인 사진의 배경에서 입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가지고 오기.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 유심 없어.” 여기 스스로 인터넷을 차단한 여행자가 있다. 인도에서 5개월을 지내다 한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독일에 있는 내 기숙사 방에 가는 중이다. 파리에서 출발해 열두 시간짜리 버스를 타고 늦은 밤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는 그는, 우리 집까지 오는 법을 미리 찾아 두었다며 기숙사 앞 역에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줬다. 나는 잘 오고 있는지 묻지 못했고, 그는 생각보다 빨리 갈 것 같다고 전하지 못했다. 어둠과 안개가 내린 역에서 커다란 가방을 메고 나를 기다린 그에게, 유심 사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사지 않냐고 물었다. 유심을 쓰지 않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내게 그는 답했다. “인도에서 유심을 사지 않고 아주 가벼운 가방으로 여행하는 사람을 만났어. 20대 후반의 루마니아 남자였는데, 그 사람을 보니까 유심 없이 여행하는 게 가능하겠더라고. 그래서 유럽에 도착하고 나서는 유심을 안 샀어. 카페나 숙소에서 와이파이 쓰고 오프라인 지도 앱 사용하면서 다니는 데, 별로 불편하지 않아. 오히려 더 좋아. 필요할 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돼.”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그건 전통적으로 누군가와 말을 트는 방법이었다. 길을 물을 일이 줄어든 요즘, 여행자들이 많이 하는 말은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이지만, 이건 주로 한국인끼리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사진 실력을 가장 신뢰한다) 우리의 문제는 유심을 사고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행 같은 순간은 대게 낯선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런 순간을 위해서라면 뭐든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드는 인터넷의 정보와 인공지능은 주머니에 숨겨두는 편이 낫다.


당신은 플라멩코의 고장 세비야에 왔고, 플라멩코를 배우고 싶다. 여행 숙소를 포함해 다양한 액티비티를 예약할 수 있는 사이트에는 이미 한 시간짜리 플라멩코 레슨 상품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1시간에 32유로! 유쾌하고 적극적인 아나이스 선생님과 신나는 시간! 추천해요!” 별이 다섯 개이고 후기가 많은 상품을 예약하기 망설이다가 당신은 구글맵을 켠다. 춤이라고 검색하니 여러 개의 춤 학원이 나온다. 당신은 그곳 중 하나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며칠 전 관광에는 삶이 없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에 틀에 박히지 않은 서비스를 찾아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후기는 하나도 없지만 그게 도전해 볼 이유가 된다.


“올라! (Hola)” 조금의 호의는 알아주길 기대하며 한마디만 스페인어로 뱉고, 곧바로 영어로 바꾼다. “플라멩코 배울 수 있나요? 세비야에 다음 주까지 있어요.” 수화기 너머 여자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듯 분주하다. 결국 번역기를 이용할 수 있는 왓츠앱 메시지로 연락 수단을 바꾼다. 이런, 여러 날을 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당신은 결국 에어비앤비 액티비티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플라멩코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한다. 그 수업은 우려했던 대로 재미가 없다. 정확히 지켜지는 한 시간은 너무 짧고, 구두를 빌려 신으려면 10유로를 추가로 내야 하며 선생님은 당신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는다. 그는 유쾌하고 적극적이지만 그의 멘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듯 뻔하다. 당신은 그녀의 빠른 박자에 맞추지 못하며 몸을 어색하게 움직이다 곧 이것보다는 한 시간짜리 플라멩코 전문가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한 명의 관광객이 되는 존재의 얄팍함에 당신은 이미 질려버렸다. 체험하는 곳에서의 체험과 경험하는 곳에서의 체험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이제 당신은 혼자 파리에 있다. 날씨는 선선하고 흐리다. 친구가 서울에서 다녔다는 컨택 즉흥 춤이 떠오른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걸 무척 좋아하던 친구의 이야기와 함께. 파리라면 그런 게 있을 것 같아서 구글에 컨택 즉흥 파리라고 영어로 검색한다. 구글이 자동으로 번역해 주는 어색한 한글에 따르면, 파리 마레 지구 근처의 한 스포츠 센터에서 컨택 즉흥 수업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예약 창은 없으며 당일에 현금으로 수업료 15유로를 내면 되는 듯했다. 별다른 일정이 없던 당신은 무언가 기대되는 일이 생긴 것에 기뻐하며 그곳에 가보기로 한다. 누군가의 추천도, 제대로 된 인터넷의 사진도, 네이버 리뷰나 블로그 후기도 전혀 없는 곳에 가는 일이 무척 낯설다. 어둑해진 저녁 시간, 흰색 외관의 스포츠 센터 앞에 자전거를 멈춘다. 아무도 당신이 오고 있는지,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에 발길을 돌려도 이상하지 않지만 당신은 기꺼이 발을 들인다. 그 건물은 5층짜리지만 구글에는 몇 층, 어떤 방으로 가야 하는지 적혀 있지 않다. 마침, 당신 앞에 운동복을 입고 걸어가는 여자가 나타난다. 당신은 그녀를 따라 계단을 오르고 3층에 도착한다. 조용한 건물 안, 오직 그곳에서만 빛과 소리가 퍼져 나온다. 당신이 옳은 곳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두 시간 뒤, 무표정했던 당신의 얼굴은 봄날의 벚꽃잎처럼 발그레해지고 차갑게 식었던 옷은 따뜻한 땀에 젖는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는 곳이었다. 머리를 대충 하나로 묶은 강사는 당신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으며 키가 크고 마른 프랑스 남자는 강사의 말을 영어로 당신의 귀에 옮겨 주었다. (당신은 그걸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중년의 여자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차가운 태도로 당신을 대했지만, 자신이 이 수업을 얼마나 좋아하고 오랫동안 참여했는지 설명했고, 당신은 감명받았다. 마치 개인 트레이너처럼 당신의 곁에 붙어 있는 편안한 티와 요가 바지를 입은 곱슬머리 남자도 있었다. 당신은 그와 오랫동안 등이나 다리, 팔을 맞대고 땅을 구르고 몸을 뒤집었다. 온몸의 세포가 방방 춤을 추는 것 같은 신나는 느낌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남아 있다.


토요일 오전, 당신은 친구를 데리고 그곳에 다시 한번 간다. 3층에 닿기도 전에 당신은 웃음이 터진다. 조용했던 지난 저녁과 달리 건물에 생기가 넘친다. 아이들의 펜싱 수업이 있었는지, 땀에 젖은 동글동글한 뒤통수들이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햇살이 그 아이들의 하얀 펜싱복에 내려앉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나비처럼 자유로운 아이들의 음성으로 웅웅 울린다. 파리 사는 사람들의 토요일 아침. 그토록 찾던, 정말 살아 있는 장면. 모두가 찍는 곳에서 사진 하나를 더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사진 찍지 않는데 나만 몰래 한 장 찍고 싶은 순간이다.




IMG_4795.JPG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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