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지르고 내가 메꾸며 살아가는 것
줄 이어폰 잃어버리기, 여행 가방에 칫솔 빼먹기, 뜯지 않은 와인병을 깨뜨리기 정도의 실수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망가지게 되었을 때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며 잠시 내가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떤 실수들은 아프다.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기차를 놓치거나 길을 잃어버리고, 지갑을 잃어버리는 등 외국 생활을 하며 내가 저지른 자잘한 실수들과 비교적 커다란 실수들이 쌓여 갔다. 그리고 한 시기에 그것들이 서로 엉키고 합해서 거대한 어둠으로, 불안으로 몰려왔다. 든든한 존재의 가장 반대편에 나 자신이 있다. 대체로 기차와 버스 등에서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에 어딘가로 가는 게 두려워졌다.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우니 계획을 짜거나 기대하지 못했다. 자주 꿈을 꾸었다. 낯선 곳에서 영영 버스를 타고 있는 꿈이었다.
괴로움이 커졌을 때 책상 앞으로 가서 일기장을 펼쳤다.
제목을 적었다.
실수 영수증
제목 아래 내가 했고 크게 당황했던 실수들에 번호를 매기고 나열한다. 너무 거대해 보이는 그 실수 산맥이 사실은 나무 몇 그루였다는 걸 깨닫고 싶었다. 겁먹고 굳어버리는 것보다는 꼼꼼한 성찰과 변화를 원했다.
실수영수증 no.1 우트레히트 가는 열차 -97€
막 여름 방학이 시작한 7월이었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에서 네덜란드 우트레히트(Utrecht)의 풍경을 보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아름다운 도시로, 한국인에게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우트레히트가 암스테르담보다 좋은 이유”라는 제목의 영어 영상이 여럿 있었다. 교통편을 찾아보니 근처의 칼스루에 기차역에서 우트레히트로 가는 직행 기차가 있었다. 7시간이 걸리고, 가격은 24유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네덜란드, 궁금한 도시에 고작 3만 6천 원 정도로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차표를 끊기에 충분했다.
칼스루에역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었다. 우트레히트로 가는 7시간짜리 기차는 1번 플랫폼에서 1시 20분에 출발한다. 독일 친구들이 이곳은 그리 위험하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기에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쌀쌀한 날씨와 많지 않은 사람, 아주 조용한 한 밤의 기차역에 혼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든다. 간간이 떨어지는 먼지라도 닦는 것처럼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중동계 남자가 내 발 아래쪽을 대걸레로 지난다. 아주 커다란 캐리어를 각각 끌고 있는 여자 세 명이 나타나더니 1번 플랫폼에 서 있던 기차에 탔다. 그 기차는 내가 도착했을 때부터 서 있던 것인데, 빨간색이 있는 독일의 DB 기차와 달리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객실 안의 흰 빛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잠든 사람들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다. 담요의 색이 일정한 비행기와 달리 이 객실의 밤엔 통일성이 없다. 이 기차가 떠나면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올 것이다. 1시 20분이 되자 기차의 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닫혔다. 불길한 느낌이 번뜩 스쳤다. 마치 버스에 일기장을 두고 내린 것을 깨달은 것처럼 등골이 오싹하다. 기차 앞으로 뛰어갔지만 이미 문은 굳게 잠겼고, 곧이어 열차는 출발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허탈하게 열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플랫폼에 다음 기차가 들어오지도, 전광판에 내 기차가 뜨지도 않았다. 내가 타야 하는 열차를 한 시간 동안 밖에서 구경만 하다가 보내다니. 독일에 남아 버린 이유가 너무 멍청했다.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는 기차가 30분 내로 있었다면,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는 열차는 새벽 6시에나 있었다. 집에 가려면 5시간을 더 기차역에서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 새벽 3시에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열차를 타고, 그곳에서 오전 6시에 우트레히트로 가는 열차를 타기로 정했다. 급하게 끊은 기찻값은 24유로의 4배쯤 되는 97유로였다. 우트레히트에서는 가방에 싸온 너구리 라면이나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2시간을 더 기차역에서 보냈다.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창피해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지도 않고 베터리가 닳아 미아가 될까봐 노래도 듣지 않았다. 게다가 그 위험하다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무슨 이런 실수가 있을까? 너무 긴 밤이 남아 있었다.
결론:
더 잘 물어보는 사람이 되자.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이 기차가 혹시 Utrecht가는 기차인지 물어 봤으면 알게 되었을텐데. 입은 장식으로 가지고 다니냐고, 아버지는 늘 내게 말했다. 그리고 IC기차는 ICE기차와 다르다. ICE는 독일 DB의 기차이지만 IC는 낯설게 생긴 외국 기차도 포함한다는 걸 알아둬라.
실수영수증 no.2 베를린에서 기차 -8€
친구와 베를린의 크로이쯔부르크 지역을 거닐었다. 밤 9시 기차를 타고 베를린을 떠날 예정이기에 마지막 식사를 할 식당을 찾고 있다. 7월 말이지만 거리는 마치 가을처럼 한산하다. 사람들의 담소는 오직 식당들의 열린 창문에서만 쏟아진다. 베를린에 혼자 왔을 때 친구와 함께 가고 싶었던 식당에 들어갔다. 창 너머로 보았던 그때는 테이블마다 초가 켜져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냈는데, 지금은 초 대신 꽃이 보인다. 예약하지 않아 남아 있는 바 자리에 앉는다. 친구와 며칠째 먹자고 이야기 하던 압페롤도 주문하고, 구운 채소와 후무스 세트를 골랐다.
친구가 손을 씻으러 간 사이, 나는 혼자 사진을 찍고 분주한 직원들, 독일어와 영어가 함께 들리는 베를린 사람들의 수다를 구경한다. 문득 휴대전화에 뜨는 시간에 시선이 멈춘다. 오후 8시 20분이었다. 눈에 힘을 줘서 다시 한번 본다.
맙소사.
이 시간에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단 40분 후인 오후 9시였고, 식당에서 기차역은 버스로 40분 거리이다. 식겁한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도 없고 다음 기차도 없는데, 기차를 놓치면 정말 큰 일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을 붙잡고 허겁지겁 메뉴를 포장할 수 있냐고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순간 나는 포장된 음식을 받았다. 친구에게 “우리 기차 타러 가야 해!”만 짧게 외친 후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달리고 있다. 휴대전화로는 택시 앱을 다운 받아 택시를 불렀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택시를 잡아타는 데 성공한다.
독일에서의 첫 택시다. 모든 풍경이 빠르게 지난다. 현금 결제를 하고, 기차역에 도착하고, 보관함에 맡겨둔 짐을 찾고, 플랫폼에 와 있는 기차에 탔다. 털썩 좌석에 앉으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쿵쿵 대는 심장 소리가 머리에서 울린다. 기차가 느리게 출발하자 등은 더 무겁게 쳐진다.
텀블러에 담아온 압페롤로 타는 목을 축였다. 쌉싸름한 얼음을 여러 개 깨뜨렸지만,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은 없다. 어떻게 시간을 까맣게 몰랐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잠깐 뇌가 마비된 걸까? 서툴고 어수선한 내 모습이 정말 싫은데, 이런 기분이 익숙해서 더 화가 난다. 나를 부끄러워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친구에게 다 들켰다. 내가 기차를 예약하고 시간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친구도 미안하다며 괜찮다고 말했다. 처참한 기분으로 구운 채소를 후무스에 찍어 먹었다. 두통이 있다던 친구는 곧 잠들었고, 나는 검은색만 보이는 창문을 오랫동안 쳐다 보았다.
결론:
기차 시간과 기차역까지의 이동 시간은 늘 기억하고 계획하자. 특히 기차를 타기 전에 식사를 해야 한다면 식당에 갈 시간도 여유 있게 계획하자. 그리고, 일정은 친구와 함께 기억하자. 만일의 상황에 빠르게 택시를 잡아 탈 수 있도록 택시 앱을 미리 깔아 두자.
실수영수증 no.3 파리와 여권 -110€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 내가 살게 될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5만원 정도의 기차값이면 단 3시간 만에 파리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얼마나 설레고 기뻤는 지 모른다. 백만원 넘는 비행기값을 내고 열 세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그 유명한 파리가 옆 동네가 되는 기분에 유럽 교환학생이 되는 게 몇배로 실감났다. 그리고 붉은 낙옆이 뚝뚝 떨어지는 11월, 나는 슈투트가르트 기차역에서 파리에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보라색 포인트가 있는 2층짜리 프랑스 기차가 선로에 우아하게 들어선다.
곳곳에 프랑스어 안내 문구가 적혀 있는 기차에 오르자 파리지앵이 뿌릴 것처럼 세련된 향수 냄새가 나는 듯하다. 현실은 꿉꿉한 의자의 먼지 냄새와 에어컨 냄새일 뿐이지만. 검은색과 흰색으로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과 카페테리아 직원은 모두 독일어와 프랑스어 둘 다 자연스럽게 한다. 기차를 구경하고 자리에 앉자 문득 여권 생각이 난다. “여권을 챙겼어야 하나?” 기차에서 여권 검사를 하는 건 본 적이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한국인이 여권도 없이 프랑스에 가는 도전을 하게 된다. 세 시간 정도가 지나자 나는 파리에 있었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만 보던 가을의 파리에. 잃어버릴 여권도 없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며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 다녔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 파리에서 사흘 정도를 보낸 후였다.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자 친구들은 “하리 여권 어떻게 됐어?”라고 묻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나는 밤에 국경을 지나는 플릭스 버스는 대체로 여권 검사를 한다는 인터넷의 글들을 확인했다. 불법체류나 난민 이슈가 커져 더 엄격한 분위기라고 했다. 불행한 건 내가 돌아갈 때 예매해 둔 것이 8시간짜리 야간 버스였다는 사실이다. 한밤에 버스에서 내려 경찰에게 여권을 내밀어야 하는데, 여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무서웠다. 버스보다 검문의 확률이 낮은 것이 기차였다. 100유로를 더 주고 돌아가는 기차표를 다시 샀다. 급하게 끊은 기차는 늘 비싸다. 하지만 기차 어플에서는 국경을 지나니 여권을 준비하라는 안내 문구가 이미 적혀 있었다.
잔뜩 쫄은 채 독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던 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국경이 가까워지자, 신분증이나 여권을 꺼내라는 방송이 여러 번 울려 나왔다. 심지어 커다란 덩치의 검은 옷을 입은 경찰들이 객실을 지나다녔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그들의 표정도 유난히 험악해 보였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간이 탁자에 신분증을 꺼내 둔 채 대화를 이어갔지만, 나는 꺼내놓을 게 없었다. 총을 찬 경찰들이 화장실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 사람을 꺼냈다. 나는 도망칠 곳 없는 쥐가 된 심정으로 식은땀을 찔찔 흘렸다.
그러는 사이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는 독일로 들어왔다. 어쩐 일인지 돌아다니던 경찰은 아무에게도 여권 검사를 하지 않았다. 끝까지 단단히 긴장해 있던 나는 내가 내릴 역에 도착하자 재빨리 땅을 밟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바삐하는 기차역에서, 나도 그들에 섞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었는 지. 그토록 그리웠던 여권은 내 방 서랍에 고이 놓여 있었다.
결론:
EU 시민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나라를 갈 때 국경을 걸어서 넘어도 여권을 가지고 다니자. 버스나 기차에서도 여권 검사를 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실수 영수증에 적은, 오랫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실수들이다. 실수들이 거대한 두려움으로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모아둔 후에는, 과한 자기혐오를 막기 위해 스스로 하는 변호와 사건의 소득을 적어 보았다.
변호:
아직 휴대전화와 여권을 진짜로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잃어버릴까 봐 여행용 체크 카드를 세 개나 가져와서 카드도 아직 두 개 남았다. 아직 남에게 크게 피해 주거나 남의 돈까지 손해 입힌 적은 없다. 내가 다쳐서 병원비 나간 적 없다. 제대로 미아가 되지도, 일기장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소득:
다른 사람이 헉,스러운 실수해도 크게 놀라거나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얼토당토않은 일이 일어나곤 하니까. 미래에 100유로 이상 위험부담이 있는 경우 여권을 챙기지 않을 확률이 줄었다.
펜을 놓았다. 지난 후회는 다 종이 위에 담아 두었으니 이제 다음을 살자. 실수 영수증은 또 업데이트 될 것이다. 실수는 다분히 우연적이지만 내면의 빈틈을 드러나는 외부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내가 발생시키고, 내가 대처한다는 점에서 무척 고유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무의식을 기록하고 해석해보는 꿈일기처럼 실수일지를 적는 것도 나의 빈틈을 들여다보고 능력치를 올리기 좋은 방법이다. 울퉁불퉁한 날들도 잘 메꾸며 살아가기 위해서.
번외. 실수영수증 no.1의 뒷 이야기
(97유로를 더 주고 도착한 우트레히트)
딱 좋은 날씨에 화창한 사람들, 해바라기를 한아름 들고 자전거를 타는 남자와 빨간색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가 보인다. 시내 중심을 흐르는 운하와 그 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요트에 연결한 튜브를 타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 직장인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학생들, 관광객들, 비키니를 입은 사람들이 작은 골목에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이다. 물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 수채화 그림을 그린다. 파란색 비키니를 입고 서서 패들 보트의 노를 젓고 있는 여자가 지난다. 쨍한 햇살이 내리쬐고 시간이 빨리 흘렀다. 역시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은 네덜란드다. 걷는 사람보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빠르게 지나치는 색색깔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화면 전환이 빠르게 되는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적당한 가격으로 혼자 방을 쓰는 에어비앤비를 찾았는데 그곳은 우트레히트 시내에서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근교였다. 기차를 놓친 것에 비해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에어비앤비를 찾았다. 3층짜리 주택이었는데, 걸을 때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나무 바닥이다. 내 방은 매우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2층에 있는데, 흰색 방문에는 작은 포스트잇에 “하리”라는 한글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써 있다. 기차에서 밤을 세고 도착한 격이기에 혼자 차지한 흰 침대에서 기쁘게 낮잠을 잤다. 혼자 에어비앤비에 와 보는 것도, 혼자 독일 밖의 나라에 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해가 노란빛이 되기 시작했을 쯤 잠에서 깼다.
호스트 아저씨는 친절하고 소탈한 백인 아저씨였다. 내가 그에게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있냐고 물었을 때,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의 자전거를 빌려줬다. 절대 리뷰에는 쓰지 말라고 당부하며 쉿, 하는 표정을 짓는다. “You’re good! Enjoy! (잘하네, 재밌게 타고 와!)”라고 하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전거를 출발한다. 웃으며 “I’ll be back! (무사히 돌아올게요!)”하고 외친다. 그는 장난스레 답한다. “I hope you can be back. (부디 그러길 바라)” 자전거를 빌려주신 아저씨의 친절함은 달콤하고, 자전거를 얻어낸 내가 대견해서 쌩쌩 강가를 달리는 얼굴에 함박 웃음이 걸렸다.
페달을 밟으며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I’m so fucking grateful for myself! 이어지는 가사가 귀에 쏙쏙 박혔다. 그녀(나 자신)는 내게 사랑을 가르쳤고, 인내심을 가르쳤고, 어떻게 고통을 다룰 수 있는 지 가르쳤어. 그래서 난 강해졌어.
서툴고 어수선한 모습이 정말 싫어도, 실수를 저지르는 내가 나를 가르쳤다. 다시 한번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더 나를 가르친다. 나 자신, 그 자체, 내가 벌인 실수, 내가 있는 곳이 다 내 선생님이다.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배우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산다. 실수하고 그 실수를 처리하고 슬펐다가 기쁘고 실망하고 뿌듯하고 그러면서 산다. 기차를 놓친 내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찌어찌 여기까지 먼 길을 왔다. “대체 내가 굳이 왜 가는 거지?”하는 의문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러나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과 가장 예쁜 집들을 보았다. 암스트레담은 여전히 가보지 않았지만 우트레히트라는 곳을 마음에 담았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자신에게 줘서 다행이다. 여기까지 오길 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