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요정

쓰는 것은 가장 큰 자기애

by 반하의 수필



독일에서는 3개월이면 일기장 하나를 끝냈다. 블로그도 빼곡히 쓰고 연간 다이어리도 매일 쓰며 일기장까지. 모든 순간을 기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강박은 없다. 다만 쓰지 않을 때보다 쓸 때, 일상을 즐기는 게 쉬워진다. 시간과 내 삶이 내가 만지고 주무를 수 있는 형태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비행기에서, 식탁에서, 벤치에서, 심지어 걸으면서도 종이에 대고 말한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듯 그곳에 끄적인다. 심심할 때는 심심하다고, 화가 날 때는 화가 난다고. 와날씨좋다기차놓쳤다배고프다싫다예쁘다그립다말했다들었다보았다…



사람들이 묻는다. “그걸 다시 읽어?” 그들은 갤러리에 쌓인 사진을 보지 않듯 써놓은 일기도 잘 들춰보지 않나 보다. 나는 써놓은 글도, 찍어놓은 사진도 많이 본다. 일기를 쓸 때 미래의 내게 보내는 짧막한 인사를 남겨둘 정도로 자주. 사진을 많이 찍는 건 종종 죄책감을 느끼고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글에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진은 많은 걸 뭉뚱그리고 ‘-한 척’ 오해하게 하는 반면, 글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세세한 감정이나 생생한 표현이 담긴다. 손가락으로 그 글자를 훑었을 때 내가 종이 위에서 보낸 시간이 다시금 살아 난다. 때론 “내가 이렇게 까지 자기혐오가 심했다고?”라거나 “내가 이때 이렇게 행복해 했다고?”하며 놀란다.



일기를 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읽는 행위들은 벌어지고 있는 삶을 해석하고 관점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른 일이 된다. 유치하고,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나. 기쁘고 밝고 행복한 내가 종이 위에 널려 있다. 우수수 떨어진 낙옆 속에 숨은 두툼한 알밤을 찾듯, 늘어놓은 다양한 자아의 모습 중 더 강한 것을 고른다. 더 진지하고, 더 용감하고, 더 멀리 보는. 그렇게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오가다 보면, 멍청할 때 멍청한 나를 기록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시간이 지나고 멍청했다는 걸 깨닫게 되면 나는 이미 덜 멍청해졌을 테니까.



들판 사이 길게 뻗은 길 위를 걷는다.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 지 모른 채 늘 가던 만큼 갔다가 돌아온다. 너무 혼자이다.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나 이외에는 누구도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지 모른다. 그 사실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날이다. 잠시 쓸쓸해 하다가 이내 깨닫는다. 그 누구도 평생동안 나보다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나, 나와 가장 친한 사람은 나여야 한다. 소리 없이 외친다. “무엇에서도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김하리 전문가는 되어야 쓰겄다.” 이미 그렇게 하는 중이었다. 쓰는 것은 가장 큰 자기애였고, 그 확실한 효과는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전문가가 된다는 것. 그건 하찮은 일이 아닐테다.


모든 것은 빠르게 과거가 된다. 나는 머지 않아 새로운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펼치고 있으리라.





IMG_8523.JPG 잘츠부르크에서








IMG_8515.jpg 뮌헨에서






IMG_0237 2.jpg 리스본에서








IMG_0216 2.JPG 바르셀로나에서








IMG_8100.jpg 뮌헨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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