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 굳은 아름다움

독일 친구의 집에 가다 (1)

by 반하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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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뭐예요?”하는 질문에 딱 한 가지 대답만 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답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너무 추상적이어서, 나도 이 꿈을 자주 잊곤 한다. 무엇보다 진심임에도. 무엇이 아름다운 사람인가? 어떤 삶이 아름다운가? 어떤 문제들은 소거법으로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당히 괜찮은 것, 욕망할 만 한건 너무 많아서 쉽게 나를 홀린다. 그런데 정말로, 진짜로 아름다운 것을 찾게 되면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된다. 아 이것이 진짜야, 나는 이걸 원할 거야. 다른 것들은 단단하게 포기할래.


나는 대체로 그런 진짜 아름다움을 사람에게 발견해 왔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다만 진심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반한다. 그의 주변에 대기하며 기회를 엿본다. 그 아름다움의 모습을 최대한 여러 번 보기 위해. 그러다 그의 아름다움이 내게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잔나는 독일의 교육 대학교에서 특수교육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그 학교에는 일 년에 세 명씩 한국에서 교환학생이 온다. 그녀는 지난 2년 동안 한국 학생의 버디를 하며, 그들의 독일 생활을 도와주고 친구가 되었다. 지난 해에 한국 친구에게 한글도 배워서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며 “안녕”이나 “배고파”와 같은 몇 마디의 말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영국 사람이기에 그녀에게 영어는 독일어만큼이나 자연스럽다. 풍성한 검은색 곱슬머리와 작은 코를 가진 그녀가 ‘전형적인 독일인’처럼 생기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그는 가끔 독일에서도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그녀는 머리를 굴린다. 그냥 유럽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나중에 어디에 살게 될까 하는 불확실한 미래도 떠오른다. 그녀는 영국인 아빠와 독일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이탈리아였고, 몇년 후 프랑스에서 살았으며, 또 몇 년 후 독일로 왔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이탈리아어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프랑스어는 여전히 능숙하다. 아무튼 그런 그녀는 현서라는 한국 학생의 버디가 되었고, 그의 기숙사 입사를 도우러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 왔다. 4월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현서와 내가 최초로 슈투트가르트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잔나를 만났다. 나의 버디는 급한 사정으로 한동안 만나지 못할 거라고 했기에 나는 현서와 잔나 뒤를 졸졸 따랐다. 잔나는 살짝 오므린 어깨로 앞장서서 걸었다. 열차를 타고 기숙사가 있는 동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주로 잔나와 현서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그날은 독일에서 영어로 친구를 만나는 첫 날이었고 나는 아직 그것에 능숙하지 않았다.


잔나와 현서를 지켜보는 일은 재미있었다. 나와 줄곧 한국어로 말을 하던 현서가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매끄럽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신기했고, 잔나의 생김새나 태도도 흥미로웠다. 잔나는 입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대화가 시작되면 작은 목소리로 살살 말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에 펑퍼짐한 검정색 잔 체크무늬 셔츠와 헐렁한 흑청바지를 입은, 전체적으로 힘주지 않은 스타일이지만 가는 반지나 하트 모양의 은색 펜던트가 달린 팔찌 등이 은은하게 반짝인다. 검고 풍성한 곱슬머리가 어깨를 타고 내려온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위아래로 빽빽하게 굴곡진 속눈썹이 그녀의 눈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목소리에 굴곡이 없고 잘 웃지 않아서, 나는 그가 오늘 너무 피곤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가 하고 짐짓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현서와 내가 포기한 아주 무거운 캐리어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렸고, 계단 3층을 힘든 기색도 없이 올라갔다. 나는 그의 취미가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그 단단함에 놀라워했다.


그 후로도 잔나를 몇번 더 만났다. 처음에는 교환학생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 그가 참석했기 때문이었고, 그 다음에는 잔나를 너무 좋아한 탓에 현서와 함께 잔나를 만나러 갔기 때문이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수록 우리는 낯을 덜 가렸고, 피곤하고 무표정해 보이던 그의 얼굴은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웃을 때는 소리를 내기 보다는 입을 다물고 배시시 웃었고, 그의 눈이 예쁘게 접혔다. 그의 말이나 행동에는 과장된 것이 없었다. 주변 환경이 어떻든 자신의 차분하고 평화로운 기운 안에 잘 머무르는 잔나에게는 성숙하고 단단한 향이 깊이 서려있었다. 독일에서 새학기를 시작하며 평소의 나보다 훨씬 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그녀가 조용하고 다정하게 사람을 끄는 모습은 여유와 위안을 주었다. 나도 그의 곁에서는 억지 부리지 않고 나 자체로 있어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잔나에게 내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했다. 오랜만에 만나면 그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에게 보고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늘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어두고 거의 꺼내지 않거나, 아예 갤러리를 열어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다. 잔나는 유려하지 않은 나의 영어 실력에도 대화의 깊이를 낮추지 않았다. 그는 주의 깊게 들었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의 생각은 대체로 명료하고 솔직했다. 외국에서 피상적인 대화에 지쳐있던 나는 잔나와 있을 때 납작해진 자아를 회복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해가 아주 화창했던 7월의 어느 날 현서, 잔나와 함께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비건 버거집에 갔다. 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굽이 있는 구두를 신은 잔나에게 엘레강스하고 예쁘다며 칭찬했고, 잔나는 그것이 자신의 추구미라고 베시시 웃더니 내 옷 스타일이 자유로운 아티스트 같다며 칭찬했다. 그리고 콘스탄츠에 있는 자신의 고향집에 놀러 오겠느냐 말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했고 잔나는 자기 집에 오고 싶어한 하리의 마음을 처음부터 눈치챘다고 웃으며 말했다.


잔나가 온 몸에 딱 붙는 청멜빵 바지와 워커를, 나는 두꺼운 가죽 자켓을 입었던 4월이었다. 잔나의 지난 짝궁이었던 시원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학교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날이었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름답다고 느꼈던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지켜보고 싶어 오버스럽게도 그 모임에 끼어들어 사진을 찍어주던 참이었다. 그날 시원은 잔나의 고향집에 가보았는데, 마치 지브리 영화에 나오는 것 같았으며, 그 집을 보자 잔나가 어떻게 차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을 들은 내가 어떻게 잔나의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잊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개강하기 바로 전인, 10월의 주말로 날짜를 정했다.

나는 오랫동안 몹시 행복한 기분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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