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여행 불가리아 두 번째 여행지 벨리코 타르노보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으며, 황제의 도시라 불리기도 했다던 벨리코 타르노보.
불가리아 민족정신의 중심지, 한 폭의 조화로운 풍경화, 화려한 빛의 향연을 벨리코 투르노보의 매력이라 정리하고 있다.(출처-셀프트래블 동유럽/상상출판 홈페이지)
※같은 지명인데 어디에서는 투르노보, 어떤 곳에서는 타르노보라 표기되어 있다. 어떤 외래어표기법을 따르는 것인지... 타르노보는 영문 표기를, 투르노보는 불가리어를 바탕으로 표기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가 볼만한 곳들을 검색하고, 여행을 다녀온 블로거들의 글과 사진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강북과 비슷한 곳일 거 같아 설렜다.
어쩌다 성북동의 길상사에 가게 되면 그 동네 골목골목을 산책하듯 걷다 온다. 골목이 가져다주는 그 정취가 좋고, 주택들의 담장과 그 간격들이 주는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조그맣고 개성 있는 찻집들도 좋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걸린 쇼윈도를 구경하는 재미도 많다.
특히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장소들을 좋아하는데 벨리코 투르노보의 구시가가 그런 내 취향과 딱 맞는 것 같았다.
오밀조밀 구시가를 중심으로 모인 다른 관광지들에 비해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차르베츠 성채를 첫 목적지로 정한다.
비잔틴 제국시절부터 요새가 지어지기 시작해 주변을 둘러싼 얀트라 강이 해자의 역할을 해 함락하기 어려운 성채가 되었단다. 하지만 1939년 오스만 제국의 끈길긴 공세에 함락되어 왕궁과 470여 채의 집들, 23채의 사원, 4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나 전부 소실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은 성모 승천 대성당과 볼드윈 탑이 재건되어 있다고 한다.
가장 위에 있는 성모 승천 대성당 앞에 서니 파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던 샤쾨르테르 성당이 생각난다. 건물들로 빼곡하던 파리와 달리 강과 울창한 나무들의 초록 너머로 보이는 뾰족한 지붕들.
성채를 오르느라 가뿐 숨을 돌리며 땀을 닦고, 가방에서 음료를 꺼내 목을 한 번 축이겠지. 예쁜 자연 안에 자리한 마을들의 모습에 감탄을 하며, 어떤 구도로, 어떻게 사진을 찍으면 더 멋질지, 지금 느끼는 그 감탄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질지 모르겠다.
불가리아의 전통적 건축미를 보여준다던 구시가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랜 시간 이 언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제 갈 길만 갔을 강물들을 바라보면 시원한 바람이 몇 번이고 지나가리라.
그다음은 트라페지차 성채. 성채만 계속 보는 지루함이 있을까, 싶지만 이곳에는 왕실 건물이나 귀족의 저택, 중세 시대의 교회 등 다양한 건축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차르베츠 성채의 강 건너편에 자리한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지금도 이 주변에서는 유물들이 계속 발굴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유물들을 모아둔 박물관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둘러보며 올라오는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커피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구시가로 향하는 길에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아 들어가겠지.
유제품이 맛있는 나라니까 카페라테를 주문하거나 뜨거운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함께라면 앞서 본 풍경들에 대해 감상을 나누거나 유물들을 보며 내가 상상한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떨 테고, 혼자라면 내 감상들을 잊으랴 열심히 메모를 남기겠지. 커피맛과 아이스크림 맛에 대해서도 잊지 않을 거고.
카페인과 당의 힘을 빌려 기운을 차리고 나면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보리스 데네브 미술관으로 고고!
불가리아의 유명 화가 이름을 딴 미술관이라는데 화가 보리스 데네브를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는다.
왜? 왜?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가리아에서 대한민국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무리 K-문화가 세계적인 유행이라지만 우리나라의 유명 화가인 이중섭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라고 하면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곳에서 유명하지 않은 동유럽이나 아프리카 혹은 남미 지역에서 유명한 화가나 작가라고 해도 우리나라에 소개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 작가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고작 6, 7년...
아직도 벽은 곳곳에 남아 있구나...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5,530여 점의 불가리아 작품이 걸려 있다고 했으니 불가리아 화가들의 작품 전시가 주를 이루려나?
이곳에도 인상주의의 물결이 일어났을까?
화풍은 서유럽 그림들과 얼마나 다를까...
파노라마 테라스에서 본 벽화에서는 피카소가 연상되었는데 이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어떤 새로움과 익숙함을 알려줄까...
상상 중에도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리는 보리스 데네브 미술관.
하지만 엄청 무뚝뚝해 보이는 건물 앞에서부터 이 미술관의 특색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쯤에서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며 문득 난감한 기분에 빠질지 모르겠다.
아, 뭐 이렇게 비슷비슷해.
옛 정취가 남아 있다는 곳에서도 비슷비슷한 건축물들이고, 역사도 비슷하고, 아직 일정은 남았는데 보고 싶은 건 이미 충분히 본 것 같은 느낌이 나를 가득 채우는 난감함.
잠시 눌러뒀던 여행의 피로감이 올라오고, 다 소화시키지 못한 풍경들이 신물처럼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면서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지쳤구나!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끼니때에 맞춰 계속 음식물을 집어넣듯 소화력을 넘기는 양을 보고 있었구나.
그때쯤이면 테이블을 치워도 좋은지 묻는 가게 직원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쓰는 불가리아 말을 들으면서 ‘여기는 세르비아와 다른 불가리아구나’를 새삼 떠올릴지도.
같은 불가리아라 하더라도 지난 도시와는 다른 분위기의 골목들과 사람들의 표정과 관광객들의 움직임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올지도...
그렇게 남은 일정은 시장이나 마트에 들러 싱싱한 야채나 과일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하자.
그곳에서 생기를 덤으로 받아와, 아직도 낯선 키릴 문자들이 가득한 제품들을 보며
우유를 한 잔 마시며 "오, 불가리아 우유 맛있다!" 하면서 불가리아만의 색깔을 하나 더 찾는 저녁을 보낼지도...
그렇게 장미가 유명하다는 불가리아만의 향기를 찾아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