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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하드웨어는 그대로니까요

- "생각해봤어?"를 읽고

by 준 원 규 수 Feb 09. 2025

-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발행



책장에 한참을 꽂혀 있었던 이 책을 읽어보자 꺼낸 후

이제는 볼 수 없는 쓰리샷의 표지에 마음이 씁쓸했고

'대한민국에 필요한 14가지 질문'이라는 부제에

시의성의 의구심이  들었다.


십 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이 지금 읽어 쓸모가 있을까?


너무나 놀랍게도 이 책에서  다루는 14가지의 질문들이 모두 지금의 문제들과 맞닿아 있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이제 1년이면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왜 십 년 전의 문제들이 아직도 이 사회에 굳건하게

혹은 더 강건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나마 가장 거리감이 느껴지는 질문은 '북한이 무서워? 우스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가득한 적대감으로 채운 혐오의 대상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것 같고,

이 정권에 들어와 북한은 정말 우리와는 별개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유전자 조작 식품, 삼성의 불법 승계, 원전과 전기요금, 교육, 국가권력의 사생활 침해, 의료 민영화 등등

너무 일상화 되어서 그러려니 받아들이거나

- 뭐 그런 거? 부당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새삼스러울 게  없을 만큰 늘 있던 거라 

  관심을 갖거나  화를 내면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느껴지는 기분?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진 부분들이 

이 책을 펼치며 잠깐 시의성에 대해 고민했던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책을 읽다보면

근원적인 문제는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어떠한 문제가 사회에 나타나는 것은 그 사회의 시스템을 이루는

법적 질서, 문화, 역사, 사회적 감성, 지도층의 인식 등등에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 틈은 때로는 정치적 문제에서 발생하고 때로는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그 문제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할 때

사회 구성원들이 혹은 사회 지도층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바람직한 해결 방향을 향해

질서를 만들고, 교육을 하고, 법을 바꾸거나 새로 만들고, 규칙을 적용해야 하는데

그 문제에 '바람직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자신들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 방향을 향해

방치하기 때문에 문제가 고착화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나는 한때 GMO, 유전자조작 식재료나 음식들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그 결과 좋아하던 옥수수 통조림을 먹지 않게 되었고

완두콩이나 콩 가공 식재료도 잘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유전자 조작이 된 콩이나 콩대를 먹고 자란 소나 닭에는 GMO표시가 되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GMO에 관대한 사회에서 

나같은 미약하다는 말보다 더 힘이 없는 한 개인이 무슨 수로 GMO에서 벗어나겠는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거다.


이 책에서 자사고나 특목고를 통해 본 입시, 교육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입시는 무척이나 고퀄리티의 우민화 정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입시에만 목을 메다보니 

거기에서부터 파생된 모든 교육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입시에 목을 메게 되었나.

태어나 19살 때까지의 시간을 투자하면 그 결과로 차지하는 대학 브랜드가 평생의 발판이 되어주는

이 사회 시스템, 사회 분위기, 문화적 감성이 원인이지는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검사, 판사, 경찰, 의사들의 민낯을 봐도

우리는 아직 교양과 인간성의 순위가 대학의 순위와 비례한다고 믿지 않는가.


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SKY를 가면 인생이 펴는데, 뭐? 대학의 서열을 없애?

내가 일평생 열심히 일해서 언젠가는 부자가 될 건데, 뭐? 종부세를 걷어?

내가 열심히 투자해서 언젠가는 잭팟을 터뜨릴 건데, 뭐? 금투세?

반.대.한.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어

더 많이 경쟁하도록, 더 많이 꿈을 꾸도록, 더 많이 욕망하도록 부채질하며

사회적, 정치적, 외교적 문제들로부터 눈감도록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일반 가정에서 내는 전기료가 산업용 전기의 적자부분을 메우고 있는데

이 불공정한 전기료 체계에는 관심이 없고

값싸게 많은 양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원자력발전소에 찬성한다.

북한의 핵무기에는 거품을 물면서 원자력 발전소가 사실은 핵발전소와 다를바 없다는 것은 모른다.

바로 옆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알면서 

우리나라처럼 작은 국토 안에서

남쪽의 발전소가 터지면 어떤 피해를 입을지에 대해서는

'설마'라는 안일한 믿음으로 눈감는다.

원피아라 부르는 기업과 연구소의 소속인들과 그들로부터 정치적 로비를 받는 정치인들의 이익 역시 감추어졌다.


그러니 이 책이 나오고 십 년이 지나는 동안

NLL을 둘러싼 북한과의 갈등은 대화마저 불필요한 무관심한 대상으로

의료 민영화 문제는 의대 2,000명 증원으로

극우와 일베 문제는 극우와 종교 단체 문제로

핵 사고와 전기 요금 문제는 친환경에너지 부족으로 유럽수입품 기준을 맞출 수 없는 문제로

- 물론 전기요금 문제를 개선된 게 없다.

변경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교육문제와 부의 불평등 문제는 더 심각해졌을 뿐 달라진게 없다.


기본적인 하드웨어가 바뀌지 않으니

자잘한 소프트웨어의 문제만 달라질 뿐이다.


요즘 여러 뉴스들을 접하면서 내가 점점 무기력하게 느끼는 부분은

공유, 공감에 대한 부분이다.

예전에는 서로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공유하는 상식이 있고

옳고 그름에 대해 공감하는 영역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진화심리학과  생존 본능"부분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보수정당 지지자는 저학력, 저소득 층에서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분석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져서 투표한다는 노회찬의 입장에서 

그들이 장기 집권당이었고 늘 권력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던 새누리당(지금의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에 유시민은 "모든 사회제도는 그 제도가 만들어지던 시기, 그 사회의 지배적 사고방식의 산물, 표현이다'라거 말한 소스타인 베블린의 말을  빌어 인간은 원래 관성의 법칙에 지배받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며 에너지 소모가 많은 혁신이나 변화는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IMF같은 상황을 만나 이대로는 죽을 것 같다고 느껴야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였다. 

이 주제 방송 당시 게스트였던 전중환은 진화란 좀더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받아들여 변화하는 것이라며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자신의 진화적인 이득에 도움이 되는 쪽에 투표하는 성향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에 이득이 되는 것은 사적 분배일까, 공적 분배일까?


이 부분에서 나온 이야기 중 젊은 시절 공단 같은 곳에서 어렵게 살았던 분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노동자의 권익 같은 것도 없이  고생스럽게 살았으니 그 분들이 진보정당을 지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그분들이 가진 삶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생스러웠지만  결국 가정을 지켜 아이들도 잘 키워내고 어렵게 장만한 내 집도 있고, 안정을 찾은 후 나이 먹어 지난 삶을 돌아보니 자기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더라는 거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권력에 익숙한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말이었다.

자신의 집은 종부세 대상이 아니건만 종부세 내는 강남 서초 같은 부촌의 할머니들 대신 광화문에 모인

나름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들...

뭔가 좀 슬펐다.


이 책 이후 십 년 동안 극우화 정도는 더 심각해졌고,

이제 정부차원에서 사회의 안정망이라 할 수 있는 법질서를 흐트러뜨리고

법의 권위를 무시하는 이 상황에서 

이 책의 지식들을 안다해서 내일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는 만큼 사회의 문제도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차가 막히는 이유를 모르고 앞차의 빨간 불만 따라가는 것보다 막히는 이유를 아는 게 덜 답답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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