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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게

by 준 원 규 수

초록이 아직 되지 못한 연두의 향연이 예쁜 날들이잖아.

하늘도 예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는데

네 생각이 났어.

이상하지?


정원이, 널 생각하면 하얀 셔츠블라우스를 입고

그때 유행하던 춤을 추다가

환호하는 반 아이들의 박수에 수줍어하며 웃던 모습이 떠올라.

까만 뿔테안경에 연한 갈색이던 네 곱슬머리도.


널 마지막으로 본 게

우리 졸업하고 삼년 후였던가.

학교 근처 횡단보도에서 진한 화장에 센 언니처럼 옷을 입고

학생 때 같이 다니던, 여전히 세 보이는 그 친구들과 함께 있던 너.

눈이 마주쳐 반갑게 손을 흔들던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못 본 척 하던 너.

그 이유를 난 그때 생각해내지 못했어.

내가 너에게 한 잘못이 뭐였는지도 모르고

너랑 내가 어떻게 멀어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오랜만'이라는 시간의 공백에 백치처럼 너를 반가워했던 내가

너는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흔히 말하는 노는 애들이던 네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내가 너랑 베프하겠다고 했던 내 말을 믿고

그 친구들에게 이제 너희와는 다른 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던 너.

그런 너를 살뜰히 챙기지 못하고,

주변의 아픔으로부터 자신만 지키기에 바빴던 나로 인해

다시 그 친구들에게 돌아갔던 너.


네가 어떤 용기를 내서 그 친구들에게 그 말을 꺼냈을까.

그 말을 들은 그 친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곁을 내주지 않는 나를 보며 네 마음은 어땠을까.

다시 그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네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죄스럽기만 하지.

나도 내가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될 줄 몰랐노라는 말조차 무책임한 변명이고.

너를 좋아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말조차 무력한 변명이지.



그래도 내게는 마지막의 싸늘한 네 표정보다

수줍게 웃으면 맑아 보이던 네 얼굴이 더 많이 남아있어 다행이지만

네게 나는 얼마나 밉고, 믿을 수 없는 배신자로 남았을까.


차라리 네가 나를 기억 못 할만큼 좋은 일들로 가득 채워진 시간들을 보냈기를 바라.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뭐 그런 해프닝이 있었지'라고 웃을 만큼

행복한 시간들을 지나고 있길 바라.


어쩌면 이것조차 내 위안밖에 되지 못할 바람이겠지만

어쩌면 이것조차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한 인사겠지만


그때 정말 미안했어, 정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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