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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지막 기억을

by 준 원 규 수



“이옥봉 씨, 마지막 질문입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사무원이 물잔을 옆에 내려놓으며 할머니를 향해 질문했다.

“죽기 전 마지막 기억은 뭐예요?”

손에 쥔 손수건만을 만지작거리던 이옥봉 할머니는 잠깐 뒤에 입을 열었다.

“그냥 어둠, 어두웠어요. 배고픔도 사라지고 기력이 떨어지니 들리는 소리들도 멀어지고…… 혼자, 이렇게 혼자구나 싶다가 그냥 어둠이 내가 되고, 내가 어둠이 된 거 같았지.”

말소리가 너무 메말라 사무원은 옥봉 씨에게 물을 권하고 싶었다.

“그럼 밝았을 때 마지막 기억은요?”

무언가를 떠올리듯 옥봉 씨는 천장이 있을 만한 위쪽을 올려다보며 눈을 천천히 꿈벅거렸다.

아무 것도 없이 끝없는 하얀 색만 펼쳐진 저승 사무실의 위를 한참이나 올려다 본 옥봉 씨는 짐을 내려놓듯 고개를 다시 숙였다. 머뭇머뭇 손수건을 손에 구겨넣듯 눌러대던 옥봉 씨가 사무원과 시선을 맞췄다.

“그 기억이 중요한 건가요?”

“네, 무척이요. 그 기억이 다음 생에 뿌리를 내리실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거든요.”

“전 다음 생에 나무나 풀 뭐 그런 거 되는 건가요?”

“아, 그건 그냥 비유적 표현일 뿐이에요. 마지막 기억을 저장하겠다고 하시면 다음 생에서 그 기억 속 생명체들과 인연을 이으실 수 있거든요. 쉽게 말하자면 인맥을 가지고 다음 생으로 가시는 거예요.”



이옥봉 씨는 하루 종일 굶었던 그 날을 기억한다.

전날 잠시 정신을 놓친 사이 대변을 옷에 실수한 일로 며느리는 밥을 주지 않은 채 출근해 버렸다.

점심 때, 아들이 밤샘 작업에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머니의 방문을 열어 보지 않았으므로 옥봉 씨 역시 죽은 듯이 있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자 성격이 괄괄한 큰딸이 찾아왔다.

정말 배가 많이 고파 기력이 떨어지던 찰나여서 옥봉 씨는 딸을 보자마자 밥부터 달라고 했다.

큰딸이 부엌으로 나간 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 먹을 게 하나도 없는데 엄마 오늘 뭐 드셨어?

옥봉 씨는 뭐라 답할 수가 없었고, 엄마가 답을 못하는 이유를 눈치챈 딸은 언성을 높이며 며느리를 욕했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온갖 욕이 이어지다 굵직한 남자 목소리에 끊어졌다.

- 이런 씨팔, 니가 지금 누굴 욕하냐? 이런……

누나와 맞붙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해대는 남매의 목소리에 섞여

플라스틱 바구니같은 게 떨어지고 물이 쏟아지고 쌀일 게 분명할 것들이 바닥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옥봉 씨는 밥 한 그릇의 무서움을 진저리치게 복기하게 되었다.

그래도 내 몸으로 먹고 살 때는 이렇게 시리게 서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때 다른 목소리가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

몇 달 만에 엄마를 보러 온 막내딸이었다.

노쇠한 엄마 앞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형제들의 모습에 막내는 옥봉 씨를 붙잡고 울었다.

- 엄마,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오래 사셔. 이런 꼴 보는 게 뭐 그렇게 좋다고 오래 사셔.


그날 이후로 옥봉 씨는 곡기를 끊었다.

슬픔이 가득차서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지만 일평생 슬픈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열심히 밥 먹고 살겠다고 발버둥을 쳤던 걸 생각하면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니 생각도 없어지고, 그저 졸리기만 했다.

몸이 힘들기도 했던 거 같은데 아쉬울 게 없었다.

못볼 꼴 많이 보고 살았으니 나이만 먹고 철들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자식 새끼들의 싸움질을 더 못 볼 것도 아니었으나 더 안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 후에는, 암흑이었다.



사무원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지만 호흡이 다소 거칠어지며 감은 눈 아래로 눈물이 스미는 걸 보며 옥봉 씨가 진짜 마지막 기억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정도 반응이면 기억을 저장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옥봉 씨, 지금 그 기억을 저장하실 건가요? 그 기억을 저장하시면 다음 생에도 그 기억 속의 사람들과 인연이 이어집니다.”


후우우.....

길게 숨을 뱉는 옥봉 씨의 한쪽 눈에서 미처 다 삼키지 못한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꼬깃꼬깃해진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데 손수건 구석에 빛바랜 카네이션 그림이 보였다.

“만약 기억을 삭제하시면 고아처럼 아무 인연도 없는 0에서 삶을 시작하시게 됩니다.”

“이제 이걸로 이옥봉은 없어지는 건가요?”

“그건 생각하시기 나름이라서요. 어떤 분들은 기억을 가지고 가니 다음 생에도 지난 생이 연결되는 거라 하시고, 어떤 분들은 기억을 가지고 가도, 새로운 세상에서 다른 존재로 시작하는 거니 지난 생과는 모든 것이 바뀌는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죠.”


그렇군요,라고 대답한 옥봉 씨는 아무리 돌아봐도 흰색만이 전부인 뒤쪽을 잠시 바라봤다.

차라리 마지막으로 본 붉은 철쭉이 마지막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쉬움을 거두듯 옥봉 씨는 사무원을 마주 보았다.

사무원의 두 눈 속 눈부처 옥봉 씨는 말간 표정이었다.



“저는 그 마지막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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