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와 버렸네, 홋카이도 2

- 비에이 투어, 비록 절정은 지났을지라도

by 준 원 규 수

눈이 없는 홋카이도 여행도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비에이 지역에 있는 팜 토미타 농장의 라벤더 숲 사진을 보고서였다. 사계체 언덕의 화려한 꽃밭 사진까지 보고 나면 그 화려한 색채들이 겨울의 흰 빛과 대비가 되며 여름의 홋카이도 역시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사게체.jpg 출처 - 엔데이트립투어 홈페이지 / 사계체의 꽃언덕
팜토미타 라벤다.jpg 출처 - 엔데이트립투어 홈페이지 / 팜 토미타의 라벤더 밭


팜 토미타 농장과 사계체 언덕의 꽃은 원래 6~8월 초까지가 절정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많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홋카이도 역시 이상기온으로 평년 온도를 웃도는 30도까지 오르는 더위가 일상이었고, 이에 꽃들은 7월 중순에 이미 졌다는 이야기는 블로거들의 글에서 많이 읽었다.

그렇다고 가고 싶었던 그 장소에 안 가기에는 아쉬울 거 같았고, 설마 꽃이 한 송이도 안 남아 있겠어? 싶었다.



그래서 여행 둘째 날 떠난 비에이 투어.

여행 바로 전날, 해일 경보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날씨는 정말 청량하게 더웠다. 멋쟁이 구름들이 하늘에 가득해서 더운데도 늘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콧노래가 나오며 기분은 좋았다.


IMG_2924.jpeg 비에이로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


비에이 투어는 라벤더 농장의 팜 토미타, 아오이이케라 불리는 청의 호수, 흰수염 폭포, 사계체 언덕, 새우튀김으로 유명한 준페이 식당이 있는 비에이 역이 거의 모든 관광상품 공통이다.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관광객의 밀집도와 햇살에 따른 색채 변화가 달라지므로 가이드의 일정 선택이 중요한 것 같았다.

우리 팀이 먼저 간 곳은 청의 호수, 아오이이케

IMG_4990.JPG 사진이 예쁘게 나올만한 곳을 선점하기 쉽지 않았다. 크기 대비 많은 사람들...

주변 화산의 분출물 성분으로 인해 물에 알루미늄이 포함되게 되었고, 그래서 물빛이 푸르다는 곳. 해가 높이 솟아오르는 정오에 갔으면 물이 살짝 하늘색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 호수는 아니어서 관광객이 조금만 더 많았어도 사진 찍기 진짜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람들의 감탄사를 잠시 멀리하며 풍경을 바라다보면 진짜 외국에 있기는 하지만 아시아 지역을 벗어난 유럽 어딘가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 세상의 모든 파랑을 걷어다 물에 풀고 살살 흔들어 색을 뺀다면 이런 색이 나올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관광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고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셔벗처럼 사각거리는 식감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청의 호수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다.


IMG_2931.jpeg 원래 저기에 까만 쿠키를 하나 붙여주는데 이미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과자가 떨어지기 전에 냉큼 먹었다.

다음 일정은 흰수염폭포.

생각보다 작았지만 물줄기의 존재감만은 뚜렷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IMG_5002.JPG 폭포수가 떨어져 흐르는 강물의 색이 "뽕따"처럼 하늘색이었다.

온천수 폭포여서 겨울에 오면 온통 하얀 눈 속에 저 폭포만 하얀 김을 내뿜는다고 했다. 예전 한 선생님이 “나는 겨울에는 사람들이 다 모두 인간적인 것 같아. 바늘로 찔러도 꿈적도 안 할 거 같은 사람들 코랑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 거 봐봐, 얼마나 따뜻한 인간들인 거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하얀 눈 속에 묻혀 혼자 온기를 내뿜는 물줄기..... 겨울이 되면 무척 인간적인 곳으로 변할 이곳의 풍경이 궁금해졌다.



다음은 점심도 먹을 겸 들른 비에이 역 주변. 워낙 유명한 준페이 식당은 예약이 아니면 힘들고, 도시락 주문을 해서 먹을 수 있다는데 식도락에 별 취미가 없는 나는 가이드가 추천해 준 식당에서 소바를 먹었다. 메밀국수, 소바의 원고장인만큼 기대가 있었는데 너무 짰다. 내 입은 한국음식에 최적인 것으로!

IMG_5019.JPG 비에이역 주변...

역사(驛舍)가 작았던 비에이 역처럼 주변의 마을도 작고 아담해서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 꽃구경을 하러 사계체로 고고!!!

이미 두 시 가까워진 오후에 사막도 아니면서 햇빛이 작열하고, 그늘을 찾기 어려운 사계체에서 투어 열차를 이용했는데 코스가 워낙 짧다 보니 5,000원 정도 하는 돈이 아깝기 짝이 없었고, 사진을 찍고 하려면 다시 걸어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해야 하므로 굳이 투어용 차량을 이용해야 했나, 싶었다. 4인을 기준으로 자유롭게 운전해서 움직일 수 있는 투어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이미 꽃들이 시들고 없더라는 것.

IMG_5021.JPG 분위기가 모네의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클로드가 있는 언덕이었나?

그래도 제철에 맞는 꽃들이 곳곳에 있었고, 해바라기를 닮은 꽃들과 언덕에 가득한 구름들을 보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왜 하늘을 그렇게 그렸었는지 이해가 갔다.

IMG_5035.JPG

또, 같이 관광 열차에 탄 사람들의 대화가 재미있었는데 경상도 분들인지 사투리 억양이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는... 그 내용을 복원해 보자면

A : 나는 니가 꽃 좋아하는 줄 처음 알았다.

B : 뭐 꽃이 좋겠나. 유명하다니까 와보자 했지.

꽃들이 보이는 곳을 지나면서

B : 꽃 보니 엄마 생각나네, 엄마랑 왔으면 좋아했겠다.

A : 맞지.

나도 엄마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닮은 꽃을 보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런 것도 공통적인 인정인 모양이었다.

IMG_5071.JPG 엄마를 생각나게 했던 해바라기, 그런데 우리나라 해바라기에 비해 줄기가 얇아서 해바라기 맞나? 싶었다.
IMG_5057.JPG 보고 싶던 꽃은 없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고 구름이 정말 예뻐서 탁 트인 시야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코스는 라벤더가 져버린 라벤더 명소 토미타 팜. 형제간에 싸움이 나서 두 농장으로 나뉘어 서로의 상품을 들고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의 롯데와 농심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7월 중순에 이미 라벤더가 만개해 베어버렸다고... 그래도 일부 남아있는 라벤더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다.

IMG_5074.JPG 올해 마지막 라벤더이지 않을까. 멋진 사진을 만들기에는 양이 적었다.

새로이 빈 밭을 가꾸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을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가로수의 굵은 둥치의 껍질이 보였다. 저렇게 열심히 가꾸며 이곳의 라벤더를 지속적으로 피워내겠구나. 가득했을 라벤더가 사라진, 비워진 농장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남을 만도 한데, 이상하게 그런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랬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IMG_5081.JPG 라벤더가 사라진 밭을 다시 채우는 사루비아(?)

이 팜 토미타의 특산품인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맛보고 버스로 고고.

홋카이도의 유제품은 무척 맛있는데 뜨거운 열기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후루룩 마셔버리는 것으로 경험은 끝. 라벤더 향이 화장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블로거의 글을 봤었는데, 너무 급하게 먹어서인지 향을 음미해 볼 시간이 없었다.


보고 싶었던 꽃들은 이미 절정을 지나 시들어버렸고, 투어 일정의 시간에 쫓기며(시간 맞춰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는 미션은 늘 마음의 부담이었다) 조금은 불만족스러울 만한 관광이었지만...

왤까.

보고 싶었던 풍경이 아니라고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내 눈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풍경들이었고 꽃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하루였다.

그래도 꽃의 절정을 눈에, 마음에, 사진에 담고 싶다면 6월 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상기온은 계속될 테니 말이다.


투어 버스로 편하게,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들은 다 다닌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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