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소한 재미, 이거저거
여행은 때로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그저 잠시 머물렀던 한 장소가 더 마음에 와닿는 경우도 있다.
파리의 빨래방에 앉아서 바라보던 그 골목의 아침 풍경,
친구가 잠시 누워 낮잠을 자는 동안 적당한 바람과 마실 나온 동네 주민들의 분위기에 한껏 신났던 영국 박물관의 정원 등등
‘지금’, ‘여기’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장소들은 늘 만나게 되어 있다.
그건 홋카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홋카이도에서 숙소는 스스즈키 역 주변에 있었다.
오도리 공원과 시계탑이 명소였는데
스스즈키 거리 역시 우리나라의 종로 거리처럼 대여섯 블록의 일직선이 모두 쇼핑가였다.
한 블록에 최소 대여섯 개 정도는 자리한 것 같던 드럭샵-우리나라의 올리브영이랄까, 하지만 체인점이 아닌 개인 상점으로 보이는 곳들도 많았고, 가게마다 가격이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또,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달라지는 장식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귀멸의 칼날> 홍보하는 훼미리마트...
그리고 우리나라 번화가에서는 보기 힘든 칼 전문 가게...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는데, 만약 우리나라에 칼만 파는 전문 가게가 있다 해도 이렇게 번듯해 보일까 싶었다.
상점 구경은 오타루도 못지않았다. 물론 거리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들도 여행의 묘미인데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듯한, 이제 막 산 것 같은 인형 하나가 거리의 조형물에 저렇게 걸려 있는 것도
유리 공예의 유명세를 아기자기한 장식물들로 증명하는 여러 소품 가게들도
가격이 마음에 들면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고, 소리와 외형 모두 마음에 들면 너무나도 비쌌던...
쓸데없이 높은 내 안목이 원망스러웠던 오르골 당도 모두 재미있었다.
그리고 하루의 피곤을 가시게 해 주었던, 분위기도 좋고 커피 맛도 좋았던 곳.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커피만 주문하는 게 가능했다.
내가 쓴 짧은 영어에 종업원이 얼굴이 일그러져서 잠시 오해를 했지만
본인이 영어를 못해서 당황했던 듯... 하지만 우리의 바디 랭귀지는 잘 통해서 별 문제는 없었다.
또, 홋카이도 산 유제품에 엄청난 신뢰가 생기게 해 준 디저트 가게도 있었다.
적당하게 달달한 맛에, 과일마저 신선해서 진짜 맛있었다. 커피랑 정말 정말 잘 어울렸다.
손님들이 필요에 따라 마실 수 있게 준비한 생수통에 귤껍질이 들어가 있는데
상큼하면서 달달한 귤냄새가 무척 좋아서 물을 두 잔이나 마셔버렸다.
또,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성행이라는 니조시장에서 대게를 사면 싼 가격에 쪄 준다는데
일정상 대게찜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은 좀 아쉽다.
그래도 운 좋게 오도리 공원에서 열린 세계맥주축제는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무척 조용한 편이었지만 알쓰인 내가 여기에서 처음 마셔본 하이볼은 무척 맛있었다. 하지만 음식점은 복불복인 듯,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보고 싶던 하얀 겨울도, 화려하게 알록달록한 꽃들의 절정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멋진 풍경들도, 아기자기 소소한 재미들도 마음에 많이 담아 온 좋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잠시 욕심을 내며 기도해 본다.
다음에 또 홋카이도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깊은 가을이거나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이 되기를!
여전히 내겐 '서해 바다'로 남은 홋카이도, 다음에 또 보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