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여행, 라플란드와 오로라
새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아우로라 aurora’에서 유래한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자즈마 입자가 지구의 자전축을 중심으로 대기권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상층부의 자기장과 마찰하여 일어나는 광전 현상이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오로라나 여러 물리적 현상들이 낭만적일 게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라는 질문을 자꾸 던지다보면 우연의 수많은 순간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들어 만들어지는 순간들이 낭만적이지 않으면 무엇이 낭만적이겠는가, 싶다.
사실 인간의 낭만을 뺏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경제이지 않을까.
핀란드 사고 여행을 위해 검색해보니 유로의 환율이 장난 아니다. 1,600원이 넘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비행기 가격이 생각보다 낮다는 것.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핀란드의 적기는 11월에서 3월까지라는데, 맑은 날 잘 보이는 날씨 조건을 본다면 17일에서 21일 정도가 눈이 온다고...
하지만 블로거들의 글을 보다 보면 오후까지 눈이 왔는데 밤에 눈이 그치면서 오로라를 봤다는 내용들이 있으니 1월 초쯤 여행을 가는 것으로 한다.
산타클로스 마을로 유명한 라플란드가 있는 핀란드인 만큼 크리스마스는 피하자는 생각으로 12월 29일에 출발해서 1월 9일 도착하는 비행기표를 검색, 직항 최저가가 148만원부터 시작된다. 경유 노선은 110만원 정도의 것도 있더라는, 하지만 24시간 비행기를 타고 싶지는 않고 돈 들지 않는 상상 여행이니까 직항 티켓을 구매한다.
그리고 북극권에 해당한다는 라플란드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으므로 숙소는 라플란드에만 머무는 것으로 찾아본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정말 할 게 많은 북유럽이지만 나는 딱히 겨울 스포츠에 재능이 있지 않고, 보는 게 좋지 하는 건 별로인 선비마인드의 인간이므로 그보다는 ‘뫼끼’를 경험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본다.
‘뫼끼’는 핀란드의 전통 오두막인데 산업화로 인해 자연과 멀어진 생활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 것으로 물을 직접 긷고, 불을 직접 피우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오두막이라고 한다. 핀란드 사람들이 여름 별장으로 쓰는 곳이므로 겨울에 여행을 가면서 진짜 뫼끼에서 숙박하면 동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일상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누리고 있는 이 편의가 진정 어디에서 왔는지를 돌아보고, 자연이 주는 불편함과 소중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으므로 오두막 컨셉의 숙소를 찾아보니... 많다.
눈이 한 번 내리면 걷다가 의자처럼 걸터앉을 수 있을 만큼 쌓이는 눈 속에 묻혀 먹고, 눕고, 걷고, 멍하게 앉아 있고, 음악을 듣다 그 맛있다는 따뜻한 블루베리 주스를 마시고…… 한가롭고 무위하게 하루 이틀을 보내본다.
주변의 눈들에 너무도 익숙해지고, 가끔씩 지나는 바람 소리와 내리는 눈송이가 더 이상 ‘괜, 찮, 다’라는 소리를 내지않는 상황이 오기 전에 가이드를 따라 주변 트래킹을 하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높이의 눈들과 상록수들 가득한 숲에서 눈에 젖은 숲의 나무 냄새를 맡으면 눈알마저 땡땡하게 얼 것 같은 추위마저 친근해지리라.
또, 어느 하루는 순록이 끌어주는 마차를 타고, 공항을 출발해서 라플란드까지 오기까지, 라플란드 시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순록들 모두 주인이 있다던 말을 실감하리라. 이렇게 썰매를 끌고 죽음을 맞이하면 뿔과 가죽은 장식용이나 의류용으로 쓰이고 살은 고기로 쓰인다는 순록에게서 예전 우리나라의 일소들을 떠올린 것이고, 숙소의 주인장이 인심 좋게 내준 넉넉한 양의 먹이를 내밀며 그 온순한 눈빛의 순록들 중 욕심쟁이를 따돌리느라 실랑이도 하겠지.
순록이 이끌어주는 들판을 내달리며 이따금씩 ‘눈의 여왕’을 떠올리리라.
여왕의 성에 혼자 남은 카이가 있는 곳까지 게르다가 타고 갔던 순록이 너네 할아버지니? 뭐 이런 망상을 할지도…….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낯선 어둠이 내뱉은 무수한 별들을 보는 것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여행 가방 안의 핫팩이 얼마나 남았는지 셈을 해가며 조금이라도 더 알뜰하게 쓸 생각을 하리라.
하지만 조금만 숨을 들이쉬어도 폐에 넘치도록 가득 차는 찬 공기가 익숙해질 무렵, 조금은 오로라를 보지 못하는 걸까 조바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면 다른 거라도 보고, 활동해야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면서 다른 사람들은 핀란드에 와서 무엇을 했는지 열심히 검색해 볼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야지.
이런이런! 네가 하고 싶은 여행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그걸 네 마음에 묻지 않고 왜 검색을 하는데? 누구도 갔으니, 이런 것도 하던데, 남들 본 거나 한 거를 따라하는 게 네가 원하는 거야? ‘남들처럼’이라는 거울조각을 빼버리고, 네 마음 깊은 곳에서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잠시 번화가로 나가 거리를 걷고 싶어지기도 하겠지만 차를 타고 두서너 시간을 왕복해야 한다는 조건도 유념해 두겠지.
차라리 가볍게 숙소 주변을 산책해 보자.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난 밤, 오로라가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처음에는 ‘와!’하는 감탄사 외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감탄사에 호응하듯 오로라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바람에 흔들리듯, 꽃잎을 흩날리듯 춤을 출 것이다. 그걸 바라보던 나는 어느새 웃고 있겠지. 그리고 주섬주섬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검색해서 외워둔 대로 수동모드로 전환, 조리개를 조절, ISO도 재설정하며 오로라를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으리라.
어쩌면 손이 꽁꽁 얼어 카메라를 조작하기에 너무 곱았을지 모르겠다.
둔탁한 느낌에 장갑을 벗고 렌즈나 조리개를 조작하다 금세 추위에 빼앗기는 감각에 놀랄지도…..
그러다 생각하게 될 거다.
이렇게 혹독하도록 매서운 겨울에 하늘에서 나타나는 이 신비로운 빛무리를 보며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오로라가 점차점차 희미해질 즈음에 나를 이곳으로 이끈 그 문장이 떠오르리라.
이제 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어?
거기에 얼마나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이렇게 답하리라.
“응, 신이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
이 오로라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관측된다는 말이 있다.
SNS에서 나타나는 게 맞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있던데
태양의 활동에 따라 가끔 중위도에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올 여름 진도에 갔을 때 찍은 일몰 사진 중 이런 게 있었다.
석양에서부터 선명하게 하늘색이 뻗쳐 있었는데 이런 게 오로라 현상인가? 싶기도 했다.
워낙 뜨거웠던 여름이었으니 지열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쪽이 더 합리적인 의심이지 않을까 싶긴 한데 말이다.
어쨌든,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오로라를 보겠다고 겨울철에 북유럽을 가지는 않을 거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어딘가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편하게 바라보는 오로라는 신의 사랑 같은 감동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네 선조들이 서리 맞으며 꽃을 피우는 국화나 잔설 속에 꽃봉오리를 올리는 매화를 보고 지조를 떠올리듯
극한의 추위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오로라 역시 밤이 지나 새벽이 오듯 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리라는
신의 절대적 약속처럼 느껴졌던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