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두 번째 상담 episode 7.
─지금까지 하셨던 이야기를 통해 선생님 심정을 느끼려 노력해봤어요. 뭐가 느껴지냐면, 부모님이 싸워요. 위험하고 말려야 되고, 뭔가 걱정스럽고 동시에 엄마가 안쓰럽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네요. 그리고 뭔가 이 아이가 정말 견딜 수 없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네...
─뭔가 굉장히 견딜 수 없는... 또 이렇게 차오르는 뭔가가 있는데, 이 아이가 뭘 견딜 수 없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고등학생 아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금의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옛날, 그 아이요.
─부모가 싸우는 상황에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감정,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음을 느끼는 상태.
─무기력함, 무능력함 그런 거 아니겠어요?
─네. 추측 말고요...
─부모가 싸우고 있는데 나는 방 안에 문을 닫고 들어가 어쩔줄 모르고 있는 무기력함. 둘이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저 싸움은 기약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
─해결은 되지 않고 저럴 거면 차라리 빨리 갈라서지, 왜 나한테 이렇게 피해를 끼치는 거야, 왜 이런 괴로움을 주는 거야...
─미칠 거 같고, 어어...
─왜! 다른 친구들 가족은 부모님이 대화도 잘 나누고 행복하게 잘 사는데, 왜 하필 나한테!
─도대체 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거야!
결국 감정의 댐이 터져버렸다. 억눌렀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코끝이 찡해지고, 숨을 삼켜도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까? 과거의 그 아이를 다시 마주하기까지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렇게 긴 시간을 떠돌고 있었구나...
─저럴바에는 차라리 이혼하고... 그냥 씨...
─지금 올라온 감정을 느껴보세요.
─네?
─몸을 느껴보시라고. 어떤 상태인지 몸 안에.
─답답해요 지금. 답답하고 가슴에 사람들이, "화병"이라고 하는 거 있죠. 알 수 없는 뭔가가 여기를 꽉 옥죄어 와요.
─느끼고 계세요. 받아들이세요. 아, 이게 있었구나...
─이걸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 어려움이 계속되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정말 미치겠구나...
─스읍... 후...
심장이 쑤셨다.
마치 압정을 삼킨 것처럼.
─이런 아픔들이 선생님 안에 있었군요. 그렇죠?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하고 싶은 말이라... 참 많은 게 얽혀 있어서 마음이 복잡하네요.
─음...
─차라리 심플하게 가는 방법을 택해야 할까. 당장 이혼하고, 비록 아이에게 죄를 짓는 선택일지언정 그냥 최대한 빠르게 이혼을 하고 그 이후 삶에 대해 방법을 알아봐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빨리 세월이 흘러서 사랑하는 우리 딸이 나와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선생님이 이야기에서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를 굉장히 두려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요. 그게 선생님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동기였던 것 같아요.
─많은 걸 통제하고, 많은 걸 알고, 많은 걸 내가 핸들링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게 선생님한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네요.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시거든요. 또 하나는...
─"내가 통제해야 된다"라는 부분? 맞아요. 그런 게 좀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측면으로 인해 다른 게 들어갈 여지가 없어요. 너무 많이 통제를 하고 있어서다른 관점이나, 다른 이야기나, 다른 방향 등 이런 것들이 들어가기가 조금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딸을 뭔가 선생님이 회복하고 싶은 선생님의 어린 시절로 여기는 듯한 느낌.
─굉장히 많이 '자기를 보듯이 또 자기를 대하듯이' 하면서 자신에게 주고 싶은 거를 딸에게 많이 반영하시는 특징이 있으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제가 틀릴 수 있어요. 아직 제가 잘 모르죠.
─굉장히 삶이 불안하고 많은 걸 통제해야 되는 아이가,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엄마, 아빠가 싸우고 내 심정을 흔들어 다니까 아이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아이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근데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통제하고 핸들링을 할 수 있는 건 없고 감당하며 견뎌야만 했던 그 시절의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아마도 굉장히 힘들었겠다.
─후... 힘들었겠죠...
─그게 지난 시간에,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나의 어려움도 참을 수 있고, 나에 관한 뭐든 건 내가 이렇게 다 감당할 수 있는데,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이게 예측 불허고 도저히 남편의 기분이나 둘 사이의 문제는 내가 감당이 안 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던 내용과 약간 연결되는 측면이 있기도 하네요. 그죠?
─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어... 이것도 통제할 수 없고 저것도 통제할 수 없고... 근데 내 어린 시절을 표상하는 딸이 지금 남편과 나의 관계 사이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게 마치 내가 과거에 힘들어했던 것처럼 느껴지고... 그런 상황에 놓여 계시는 군요.
─그렇죠... 그런 거 같아요.
─사실 동일시냐 아니냐,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봤거든요.
동일시(Identification)는 심리학에서 개인이 타인의 특성, 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특히 발달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적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냐, 아니냐."라기보다는 '그런 부분이 좀 있나'하는 걸 좀 생각해보는거죠.
말을 하면서도 자꾸만 스스로를 변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찌푸려진 이마에 스치는 긴장감이 내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을 더했다.
─그러니까 그럴 바에는 이혼을 해서 갈라서는 게 차라리 '딸의 정신 건강과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싶은 확신이...
─아마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제일 제일 쉬운 방법?'이겠죠. 그러나 이제 그거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고... 사실은 친엄마가 있다는 게, 선생님한테 엄마가 굉장히 미숙하고 너무나 많은 걸 채워주지 못한 엄마였지만 그래도 그 엄마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고. 지금은 엄마를 또 이해할 수 있고... 이런 삶을 사실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도 아마 선생님이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마 갈등하고 계시는 거 아닐까 싶기는 하네요. 제가 오늘 이해한 거는 이런 정도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오늘 어떠셨어요?
─지금 우리가 나눈 이 사연은 아무한테도 이야기 한적이 없거든요. 아무한테도. 진짜 아무한테도 한 적 없어요. 이 정도 얘기는...
─그동안 잘 묻어놨던 괴로운 상처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미루고 있었나봐요.
─왜냐하면 풀어가려면 너무 많은 얘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후... 모르겠네요.
─오늘 추측할 수 있는 거는 선생님이 아마 상당히 불안이 높은 아이였던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을 주시하고 긴장해야만 했던 그런 예민한 아이.
─부모님 사이가 불안정하고 막 집에 큰일이 날 것 같은 위기상황인 것도 힘들지만, 그 상황에서 난 항상 이런 불안을 통제하고 있어야 되는데 통제가 안 되니까 더 막막하고...
─그 아이가 정말 정말 힘들었겠다 싶네요.
─......
─네... 힘들죠. 지금 보면 원래 엄마와 아빠 둘 다 모두 예민한 사람이에요. 둘 다 안 맞아요. 그러니까 왜 같이 사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솔직히 말해서.
─아휴, 많은 부부가 그래요...
─근데 또 옛날과 다르게 요즘은 TV 프로그램에서 조차 이혼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하는 것도 많잖아요. 타인의 삶을 보면서 '결국엔 다 사람 사는 게 똑같구나, 비슷하구나'하며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내 이혼하고 다시 잘 사는 사람들도 꽤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오히려 '나는 엄마 아빠처럼 저렇게 살 이유가 없다. 평생을 40, 50, 60년을 저렇게 괴롭게 살 이유가 없다.'라고 더 확신을 할 때가 많아요.
─......
─너무 많이 울었네요.
'그래도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을까. 흐트러질 일조차 없던 뒷머리를 의미 없이 쓸어내리며 말했다.
─어쨌든 시작했으니까 끝을 보면 좋겠어요. 설령 그 끝이 제가 기대했던 게 아니라 할지라도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자꾸 의미 찾지 말라고 하셨지만. 하하.
─네...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해봐야, 걸어 가봐야 그 길이 맞는지 아닌지 알테니까요.
─그럼요. 선생님이 상당히 두 가지로 얘기하세요. 하나는 '내가 예측을 다 하고 뻔히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알고 있어'라고 얘기를 하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혹시 뭔가 제가 모르는 다른 게 있을 수 있어요'라고 두 가지의 말씀을 왔다, 갔다 하시거든요. 상담이라는 거는 사실은 두 번째에 해당돼요.
─네... 모르는 거예요. 끝까지 모르는 채로 이야기하고요. 저는 아마 끝까지 선생님을 잘 모를 겁니다. 그러나 만나는 순간순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사이에서 이만큼씩 이만큼씩 자기를 알게 되는 그런 게 좀 있어요.
─네, 선생님. 그렇게 끄집어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 서랍을 당당하게 열 수 있게끔 끄집어내주시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죠.
─아무튼 이 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없으세요?
네. 멈출 생각은 없어요.
끝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그러면 다음 시간에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