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세 번째 상담 episode 2.
행여나 엄마가 예전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하실까, 모든 걸 가슴에 묻고 살았지만 상담을 통해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상담을 거듭할수록 “작은 인연과 오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뚜렷하게 다가왔다. 결국 언젠간 '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확신과 용기로 점철된 전화 한 통이었다. 동시에 20년 만에 마주한 차가운 고통이었다.
─심리 검사도 했고 진단도 받았던 옛날, 의사가 말했던 병명을 기억하시는지 여쭤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네요. 혹시 공황장애였냐고 물어도 기억이 안 난다며 에둘러서 얘기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내가 병원에도 물어봤는데 오래돼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하니까 그제야, '공황장애는 아니었고 뭐 불안장애 같은 거였던 것 같아.' 하셨죠.
엄마의 흐릿한 기억이 안쓰러웠다. 동시에, 그 희미함이 독한 술처럼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러셨군요.
─네. 엄마 말씀도 그렇고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마 어릴 적 저는 불안장애를 앓았던 것 같아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도 멍해지거나 약간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듯한 증상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병원에서 검사도 하셨어요? 그럼 결과지를 받으셨을 텐데요. 집 어딘가에 있겠네요.
─네. 그걸 물어봐야 될 것 같아요. 검사를 받을 때도 그렇고 제가 단 한 번도... 여쭤본 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17살 때 이후로 처음 묻는 거니까...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네요.
─그게 제일 확실해요. 거기 끝에 보면 이제 진단명이 있거든요.
─그러니까요. 엄마가 숨기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아니면, 정말 기억을 못 하실 수도 있고요. 20년이면, 잊고 살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걸 왜 숨기실까요?
─모르죠 뭐. 괜히 엄마가 '걱정 인형' 스타일이거든요.
─엄마가 걱정이 많으세요?
─쓸데없이 걱정이 많으세요. 그래서 이따금 엄마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른들도 걱정이 많죠. 근데 엄마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말씀을 참 자주 하시거든요.
─맞아요.
─만약 엄마가 좀 더 어른스러웠다면 어떤 게 달라져 있을 것 같으세요? 뭐가 떠오를까요?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꽤 많이 듣고 자랐다. "의젓하다." "역시 맞이라 그런지 씩씩하다." 그럴 때면 속으로 늘 '쳇,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하며 억지웃음을 지으려 애썼지만, 볼이 딱딱하게 굳어 입가에 부자연스러운 떨림만 남았다.
─저랑 동생을 불러서 '이런 상황이었고 그래서 이렇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생각이다. 많이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하며 설명하고 달래줬을 거 같아요.
─부모님이 크게 싸우셨던 그 이후에?
─네. 부부 싸움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흐지부지...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거잖아요.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그래도 자식새끼들이 받았을 상처는 생각해 줬어야지 않았을까요, 어른이니까... 근데 아마 엄마도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겠죠...
─뭔가 좀 설명해 주고 상황을 알려줬다면, '선생님이 조금 안정이 되셨을 수 있겠다.' 그런 얘기군요.
─네. 그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때 좀 더 안정이 됐다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그때 안정이 됐다면... 그때 내가 그렇게 병원에 다닐 정도로 괴로웠지만 어쨌든 '엄마의 생각은 저렇구나.' 그러니까 그냥 '나는 내 삶을 열심히 살면 되겠구나. 이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은 어쩔 수 없으니 그저 내 삶을 열심히 살면 되겠구나.' 싶었을 거 같아요.
─네, 초점을 선생님 삶으로 둘 수 있었을 거라는 거군요. 그때는 어땠는데요?
그때는 어땠냐는 질문이 꽤나 당황스러웠다. 딱히 어떤 생각 없이 살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학교는 가야 하는 거고 시험 때가 되면 시험 보고... 꿈과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삶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따금 반성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뭘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땐 어떤 상태였을까요? 선생님 마음이... 언제가 떠오르세요?
─음...
─별거 아니래도... 어떤 장면이 떠오르세요?
─고 1 때 아픈 이후에 제가 운동을 했어요.
─고등학생 때요?
─네. 고등학교 2학년 때요. 정신 건강을 챙겨야겠다 싶어서 '엄마 나 운동할게'라고 했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엄마가 운동을 해보라고 권하셨었나... 아무튼 그렇게 나를 찾아가기 위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했었던 것 같아요.
─어떤 다른 조금 몰두할 수 있는 걸 이렇게 찾으셨군요.
─네, 운동.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미래에 뭘 하고 싶어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고 그냥 공부하라니까 하고 학교는 가야 되는 거니까 갔을 거고...
─아...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러니까 제가 이런 게 잘 기억이 안 나요. 막 친구들하고 뭐 좋았었던 기억들도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많고요.
─그때 좀 더 선생님 자신한테 주의가 기울어지고 부모님 사이가 불안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선생님의 삶은 어떻게 바뀌어 있었을 것 같으세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네! 그렇죠.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상상으로.
─지금은 뭐가 달라졌을까요?
─그랬었다면... 그랬... 다면.
ps.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가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잔잔한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다만 우리 딸이 바라보는 내가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어른스러움"은 청명한 날 신은 장화처럼 거추장스러운 '내 모습'을 만들 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쏠린다. 어쩌면 생각의 저편에서 언제나 엄마가 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맑고 따뜻했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어른스러울 필요는 없다는 걸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
덕분에 나는 언제든 엄마라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지친 날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엄마가 옳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