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세 번째 상담 episode 3.
─그랬다면 제가 지금처럼 혼자 이렇게 막 파고들진 않았을 것 같아요.
─혼자 단정 짓고, 확언하고 또 파고드는 모습이 없지 않았을까... 지금의 저는 뭔가에 한번 꽂히면, '다 필요 없고 이게 맞아!' 이런 스타일이 있잖아요.
─맞아! 네... 잘 아시네요.
─네. 그런데 핵심은 제가 이런 인간인 걸 아니까 더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요. 점점 외골수가 되는 거죠. 자꾸 외로워지고... 남을 배척하게 되고,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하면서...
─맞아! 어...
─선생님이 하셨던 "가정"처럼 만약 어린 시절 안내해 주는 부모님이셨다면 지금처럼 자꾸 단절되는 방향으로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의 생각이나 시선에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 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근데 그게 "부모님의 사건 때문에"가 아니라 이야기의 초점이 '그런 엄마 아빠가 아니었더라면' 이어야 할 것 같아요.
─저에게 '병신 같다'며 답답하다고 또 매번 부족하다고 압박하는 아빠와 그렇게 부정적인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에 맞춰져야 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선택은 네가 하는 건데 엄마, 아빠가 먼저 살아보니 이런, 저런 방법이 있더라. 그런 상황에서 이런 걸 해봤더니 좋았고 저렇게 했더니 별로였어."라는 얘기를 해주고 자신의 삶과 경험을 나눠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씀을 하시는데 약간 뭐랄까... 아픈 게 좀 느껴지는 것 같아요.
─......
─뭐랄까요? 되게 지금 현재 선생님의 모습에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대견하고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스스로 어떤 면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쉽고 속상하고 바꾸려고 해도 잘 안 돼서 몸부림치는 면이 있으신가요?
─맞아요. 선생님 말씀에 생각이 떠오르네요.
─고1 때 그런 어려운 상황을 견뎌낸 이후에... 정신이나 마음 상태도 괜찮아져서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이후에 제가 제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렸거든요. 그때부터 독기를 품고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 방어적으로 변한 거 같기도 하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상관하지 마'라는 태도로 고슴도치처럼 그렇게...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태도와 성격을 바꾸고 말겠다는 의지로 살다 보니까 뭔가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 같은 것도 생긴 거 같고요.
─저는 선생님을 잘 몰라요. 당연하죠. 만난 지 얼마 안 됐기도 했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가 지나가냐면... 선생님이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굉장히 노력한 분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치열한 노력을 하셨던 부분이 지난 시간 끝날 무렵에 저한테 굉장히 깊숙이 다가왔어요. 정말 진정으로 자기를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그런 탐구심 같은 게 저한테 굉장히 많이 느껴졌다고 저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선생님이 그렇게 자기를 알려고 탐구하고 파고들었는데, 그런 탐구가 서로 잘 엮여 있기보다는 약간 구슬이 따로따로 있는 느낌이랄까? 어떤 부분에서는...
─......
─전체를 하나로, 즉 사람이 딱 이렇게 모아져 있다기보다 약간 따로따로 따로...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이야기하시다가 선생님이 몇 번 길을 자꾸 잃으시거든요.
─네. 맞아요.
─그게 주로 어떨 때 그러냐 하면 선생님이 정말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 시작했다가 약간 곁가지로 자꾸 흐르는 때가 있어요. 그 곁가지로 흐를 때 보면 굉장히 아팠던 흔적이 느껴지는 거예요. 굉장히 아팠고 자신감이 없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보완하려고 자기를 막 부스팅 하다 보니까, 약간 자기를 좀 과하게 이렇게 어필하려는 그런 면 때문에 자꾸 길을 잃게 되시는 면이 있어 보이고요.
─아마 그걸 본인이 아실 거예요. 아시는데, 아직은 그 부분을 곁가지를 쳐내기가 좀 어려우신 면이 있으신 거죠? 저는 그렇게 이해가 돼요.
선생님이 방금 하신 말씀, 그게 바로 나였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깊은 곳의 나. 어쩌면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인정하는 순간, 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떳떳해!'라고 외쳤다. 마치 갑옷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말들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그게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칼날로 내 상처를 도려내듯, 선생님의 말은 아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선생님의 굉장히 좋은 장점은, 그동안 노력해 왔던 혹은 원래 만들어진 선생님의 어떤 모습들을 넘어서서 새로운 나를 바라보며 조절하고 또 수정하고 싶어 하는 특성... 그 너머에 선생님의 시선이 있다는 거 그게 아주 좋은 장점인 것 같아요.
─한편, 집요하게 파고들고 의지를 굉장히 강조하는 면이 있어요. 그런 부분이 그동안 본인에게 도움이 됨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가까운 관계에서 상당히 부작용이 많으셨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실 뭐든지 지나치면 오히려 힘들 수 있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소신'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면 미련한 거고 고집불통이고 독단적으로 비치겠죠. 근데 이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고, 그렇게 밸런스를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인가 너는 원래 어떤 사람인데?' 하는 생각에 이르러요. 근데 사실 그것도 웃기잖아요, 그것조차 이분법적인 생각이잖아요.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한다라는 게 고정 불변한 게 아닌데...
─그렇죠. 지금 현재 모습만 보는 거죠.
─그리고 어떤 대화의 상대나 내가 마주한 상황의 맥락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는 건데, 마치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바뀔 생각이 없어, 이게 진짜 나야' 하는 내 모습을 바꾸는 순간 내 가치관과 신념이 흔들리니...
─아무도 건드리지 마! 이렇게?
선생님이 빠르게 호응하며 내 말을 받았다.
─네.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동안 타인에게, '만약 내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를 건드리지 말거나 네가 바꿔. 아니면 우리는 같이 어울릴 수가 없어'라는 느낌으로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요. 그러면 남편 입장에서... 남편 문제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으시겠지만... 방금 언급하신 선생님의 특성은, 남편이 같이 살기에는 상당히 어렵고 힘들 거예요. 그리고 가정에서 한 사람이 감정으로부터 자꾸 이렇게 괜찮은 척하고 회피하면, 상대방은 더 쫓아와서 더 막 시끄럽게 하는 게 일반적인 부부 관계거든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면도 알고는 계시죠?
─지금 제가 본인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게 부부 관계가 다 선생님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나는 의지가 강하고 뭐든지 개선하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사람이야, 매일 공부하고... 근데 당신은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의지도 박약해. 그래서 너는 답이 없어!' 이렇게 해버리면... 그거는 참 어렵죠. 그죠?
─네... 어렵죠.
─그래서 제가 원하는 건 여기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데 남편에 대해서 사실 초반에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거든요. 나는 이혼할 거고! 이런 느낌으로...
─지금도 생각은 똑같아요. 이혼은 할 거예요...
─네, 그니까요. 하지만 이혼하더라도 다음에 어떤 배우자를 만나도 지금 본인의 그런 측면은 영향을 끼치게 돼 있으니까... 그런 면도 조금 오픈해서 같이 얘기해 보자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