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세 번째 상담 episode 4.
─선생님을 보면 이런 이미지가 떠올라요. 단단한 바퀴에 브레이크는 엄청 좋아. 와이퍼 독특해. 뭐 하여튼 여러 가지 재미있는 부품과 좋은 어떤 성능을 가진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데 정작 '이게 어디다 쓰는 거지?'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마치 부품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자동차를 보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들어보니 꽤 설득력 있는 표현이었다. 그래도 고장 난 자동차는 아니어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랬구나. 혼자서 애 많이 쓰고, 많이 개발하고, 많이 수집하고 이러셨구나...
혹독한 계절을 지나 드디어 움튼 작은 새싹을 바라보듯, 선생님이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을 더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 모든 걸 다 반대로 했던 것 같아요. 아마 이게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잘할 수 있어.'를 되뇌며 계속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다 보니까...
─아이고 그랬구나... 이게 얼마나 연결되어 있길래...
서로의 말이 바삐 포개졌다.
─누구라도 저를 무시하면 속으로 '난 너희들과 달라.' 하며 스스로 더 잘하기 위해 채찍질을 했었죠. 그때부터 저를 특이한 구석으로 몰아갔던 경향도 없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저의 진짜 모습을 찾고 싶어서 여행도 많이 다녔었고... 항상 혼자 다녔고, 혼자 생각했나 봐요. 뭐... 아무튼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다 보니까 말씀하신 그 표현들이 좀...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통해서 정말 선생님이 사춘기까지 뭔가 굉장히 고통스럽고 굉장히 힘들었구나, 혼란스러웠구나가 느껴지고요. 단지 지금 결혼 생활 때문에만 힘든 게 아니라 선생님 스스로 뭔가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든 부분이 있었구나 그리고 환경적으로도 어려웠구나를 알았어요.
─선생님에게 필요한 거는 노력은 알아서 하시는 것 같아요. 이제는 조금 노력을 줄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아직 제가 잘 모르니까 '줄이세요'라고 얘기를 못하고, '줄여야 되는 면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은 드는데... 어쨌든 선생님한테 지금 중요한 거는 소통이 필요해요.
─환기를 시키고 뭔가 그 외골수적이고 배타적이고 약간 좀 파고들고 이런 면에 대해 소통을 해서 약간 좀 품을 넓히고 뭔가 각자 따로 노는 부품을 조금 조립해 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잘 굴러가게끔 하는 그런 작업이 선생님한테 필요하실 것 같네요. 상담을 좀 지속해 봐야겠는데요.
─그런가요? 하하...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게 혼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버리니까.
─맞아요. 우리가 만약에 작업을 계속하신다 그러면 선생님의 배경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선생님이 항상 자기만 주제로 정해놓고, 배경 안에서 자기를 잘 보지 못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배경이 되어서 선생님을 좀 봐드리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잘 의존해야 잘 독립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저희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이따금 하거든요. 뭐 하여튼 그거는 계속 염두에 둬야죠. 상담의 목적을 의존하게 하는 건 아니거든요. 오늘 우리가 두서없이 얘기를 나눴는데 제가 아직은 선생님 얘기도 많이 들은 게 없고 그래서 이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만 얘기를 조금 피드백을 드린 것 같아요. 지금 마음은 어떤 상태인 것 같으세요?
─마음은... 일단 엄마가 걱정되고요. 아까 전화로 물어본 것 때문에 괜히 쓸데없이 또 걱정하실까 봐.
─엄마 걱정을 정말 많이 하시는군요. 어...
─네. 엄마 걱정 많이 하죠. 걱정 많이 해요. 엄마를 아니까...
─혼자 또 '우리 딸이 또 갑자기 저걸 왜 물어봤을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하며 마음 졸일까 싶어서요.
─엄마도 좀 파고드는 면도 있으신가 봐요?
─뭐... 아마... 조금은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기대고 기댈 사람은 거의 엄마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딸한테 엄격하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친구처럼 따뜻한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좀 큰 것 같아요.
─반대급부적인... 네, 그런 것도 없지 않은 것 같고 아무튼 그래서 걱정이 조금 되긴 하네요.
─네, 그리고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 내 몸이 어떤 상태인가 내가 감정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보셨을 때...
─그냥 뭐 딱히 딱히 이상할 건 없고 그냥 편안한 것 같아요.
─편안하세요?
─네. 편안한 것 같아요. 딱히 뭐 어떤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거 보니까...
─네. 그러면 오늘 여기까지 할까요?
─네. 좋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뵐까요?
─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