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네 번째 상담 episode 2.
난 항상 호기심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 많고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이내 어둠으로 사라지는 습성이 다른 말로는 꾸준하지 못했고 끈기가 없었다는 뜻 아닐까 싶은 생각에 자책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에 뭔가 지금까지 이룬 거에 대한 굉장한 프라이드가 느껴져요. 뭘 많이 이렇게 쌓아놨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이 있으실까요? 본인이 이렇게 프라이드를 느끼는 부분이 많이 있으신 것 같네요.
─많이 쌓아놨다라...
─일단 연봉에 프라이드가 좀...
─전혀요. 연봉은 프라이드는 아니고 그냥 그거는 예시를 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과 뭔가를 계속 변화하려고 시도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과의 차이에 대한 예시를 들기 가장 적절한 게 연봉이었다 뿐. 제가 이만큼의 연봉을 받는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지는 않아요. 운이 좋아서 승승장구한 것도 분명히 있겠죠. 또 결과론적인 거잖아요. 지금까지 제 모습은...
─어쨌든 내가 이렇게 변화시켜서 쌓아 올려 왔다고 아까 이야기하신 부분이 있는 거 같아서요.
─네. 그런데 그게 '내가 연봉을 많이 받기 위해서 했다'라기보다는 내가 더 잘하고 싶고 회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다 보니까 회사에서 그런 저를 인정해 줬던 거죠. 더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 다른 회사를 찾아 도전하고 그곳에서도 열심히 해서 인정받았던 거고요. 뭐 그런 거죠...
─네. 그럼 연봉은 아니라고 하시니까 그러면 뭘 선생님의 어떤 업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업적이요?! 업적...
─내가 그렇게 의도적으로 목표 지향적으로 의식적으로 노력해 와서 내가 이거를 이루었다는데 굉장히 프라이드가 있으신 것 같거든요. 뭐를 그렇게 느끼시나요? 솔직하게, 항상 솔직해야만 우리가 길을 찾아갈 수가 있어요. 솔직하지 않으면 500시간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어...
─맞아요. 그래서 솔직하려고 하는데...
─후... 진짜 그런 게 없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까 뭐라고 하셨냐면.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서 내 삶을 이만큼 올려놨다."
─네 맞아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다 하는 표상적인 것들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미로 속에 갇힌 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뭐가? 음.... 선생님이 이야기하실 때 약간 이런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으로서는 혹시 이렇게 중심 잡고 살기가 좀 어려운 면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고 잘 살았다' 뭐 그런 것 같아요. 혹시 이런 측면에 대해 자부심이 있으신 건가요?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날 둘러싼 힘든 환경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신 차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일 해가지고 이루어냈다. 뭐 그런 느낌일까요?
─그러니까 그 목표라는 게...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그런 거를 선생님은 목표로 해서 해야만 뭔가 할 수 있었던 선생님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그게 외적이든 선생님 내적이든 그렇죠?
─하... 어렵네요.
─아니요. 괜찮아요. 여기에 깊이 들어가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선생님을 이해하려고 그냥 질문드려본 거예요.
─이제 또 다른 얘기로 넘어가시면 돼요. 네 그렇죠 항상 이게 매듭을 지으려고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열어놓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닫힌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혹시 꿈꾸신 거 있나요?
─꿈이요?
─네 꿈이요. 기억나는 꿈이 있어요? 밤에 잘 때?
─밤에 잘 때 꿈. 요새 꿈 잘 안 꿔요
─아니면 여태까지 살아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꿈이나 자주 꿨던 꿈이 있나요?
─......
예전에는 꿈을 이따금 꾸곤 했겠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꿈을 꿔도 금세 잊혀지거나
악몽이어서 고개를 흔들어 지워버리려 노력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러면 아주 어릴 때 제일 처음 기억은 뭐예요?
당황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제일 처음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