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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혼일기 19화

진짜 자신의 내면을 보는 방법

이혼일기, 네 번째 상담 episode 3.

by 검정멍멍이




나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초등학교 때까지 빨았다. 이 주제 또한 언젠가 엄마, 아빠랑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사연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인가 2학년까지 손가락을 빨았던 것 같다. 딸을 키우며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이 있다. 언제까지 손가락을 빠는 게 보통인가. 다행히도 또 고맙게도 우리 딸은 손가락을 빨지도 않았고 쪽쪽이도 이유식 먹을 때쯤 자연스레 멀어졌다. 쪽쪽이에 집착하지 않는 딸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뿌듯했다. 아직 제 힘으로 뛰지도 못하는 딸을 벌써 다 키운 기분이랄까? 나와 다른 딸의 모습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어릴 적 내가 갖고 있던 불안 증상이 내 딸에게는 보이지 않아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고 토닥이며 잠든 밤이 있을 정도로...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10살이 다 될 때까지 손가락을 빨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나는 뭔가 달랐다. 국민학교 1~2학년 때는 성적도 최상위권이었고 반장도 했었다. 정년이 가까워진 '할머니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셨다. 겨울이면 반장이었던 나에게만 슬그머니 건네주시던, 등유 난로 위에 정성스레 구운 은행 몇 알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외 여러 기억으로 말미암아 나는 어른들에게 예쁨을 받고 자랐던 아이 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런 내가 손가락을 그렇게 오래 빠는 게 이만저만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어떤 날은 손가락을 빨지 않게 하려고 된장을 바르기도 했다. 또 냄새나는 암모니아를 묻힌 거즈를 엄지손가락에 테이핑 해서 잠을 자기도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그 냄새나는 거즈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빨아 손이 퉁퉁 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으나 엄마, 아빠가 온 힘을 다해 손가락 빠는 버릇을 고치려 노력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내가 뭔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혹은 굉장히 비범했거나...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돌아본 적이 있다. 다 큰 초등학생 애가 손가락을 계속 빨고 잔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을법했고 그런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는 '애정 결핍'이라는 진단명을 내렸다. 무심한 척 냉정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 시절에는 엄마, 아빠도 시골에서 '손가락을 오래 빠는 일로' 찾아갈 병원도 없었을 테고 또 진단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을 테니까... 굳이 엄마, 아빠 모두가 피곤하게 물을 이유는 없었다.




─시골에서 컸다고 했었죠?


─네. 시골이죠.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주변 환경이 어땠어요?

뭐가 보이나요? 집은 어디쯤 있었어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에서 상세한 설명을 원한다는 선생님의 속 마음이 읽혔다.



─5층 아파트였고요. 주변에 산도 있고, 논도 많고 그랬어요.


─아 그랬군요.


─그 근처에 아파트 담벼락 너머 왼쪽 편에는 초등학교도 바로 붙어 있었고 오른편에는 단독주택 같은 시골길도 있었어요.


─아... 그렇게 자랐군요.


─네. 막 뛰어놀고 그랬어요. 논바닥에서. 잠자리도 잡고 개구리도 보고요.


─어린 시절이 참 풍성하고 좋네요.


─......


─그렇게 툭툭 떠오르는 대로 흘러가시면 돼요.




─손가락을 왜 빨았을까 그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여기 오른쪽 검지손가락을 계속 뜯는 버릇이 있어요.

─여기. 이쪽이요...


자랑도 아닌 손가락을 선생님이 잘 볼 수 있도록 눈높이로 들었다.



뭔가 불안이 심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도 모르게 여기를 뜯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뜯어낸 살점이 아프면 그제야 인식을 해요. '아... 내가 또 여기를 뜯고 있었네.' 근데 어릴 적 손가락을 심하게 빨았던 것과 여기 손가락 살을 뜯는 거랑 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좀 자학적이잖아요. 자기 손가락 살을 뜯는다는 것 자체가... 물론 심하게 피가 날 정도로 뜯지 않는 게 한편으론 다행이죠.


자랑도 아닌 걸 마치 멋들어진 무용담 마냥 늘어놓는 내 털털함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런 것들이 왜 그럴까 하며 이따금 나름 진지한 의문을 갖고 살아왔어요. 그리고 이런 저의 버릇이나 습성을 오늘 상담하면서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이유가 결국 내가 계속 남 탓하려고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가, 그래서 자꾸 이런 핑계들을 찾아내고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물론 '남 탓'이라 하면은 부모님 탓인 거죠.


─네.

─핵심은, 어릴 적 나를 키우던 엄마와 아빠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아니면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애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손가락을 빨게 만들었을까 싶어요.' 또 어린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였길래 그렇게 불안해했던 건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죠.

왜냐하면 제가 딸을 지금까지 키워보니까 전혀 그렇게 안 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저와 남편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 말도 거의 안 하고, 그야말로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딸에겐 '제가 경험했던 그런 비정상적인 불안 증상'이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으니까...

─근데 '도대체 어땠길래 나는 그렇게 된 거야?'라는 질문을 부모님께 던지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벌써 30년도 지난 얘기를 이제 와서 한들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한 거죠. 또 진실을 내가 안다고 하더라도 결국 부모님 탓을 하려고 내가 지금 이렇게 자꾸 깊게 파고드는 걸까 싶었어요.


─이런 고민 중에 <몰입>이란 책을 읽게 됐어요. 진지하게 읽다 보니까 결국에는 그렇게 '파고들지 않는 게 내 삶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고민하게 된 거고요. 특히 "자꾸 내면으로 파고들어서 여기에 집중하는 것보다 외부에 혹은 주변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중하는 게 오히려 이 몰입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다"라는 얘기에 깊이 공감했어요.




─아니 그 책에서 얘기하는 거는 자기 셀프 자존심에 몰입하지 말란 얘기지, 자기 내면을 보는 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아...


─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막 이렇게 붙들고 거기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자기 내면을 봐야 되는 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아는 데 기본이죠.

─그죠? 선생님은 약간 뭐든지 의도적으로 자꾸 바꾸시는 면이 있어요. 모든 정보를 본인의 생각에 맞게 이렇게 바꾸시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엄마, 아빠 탓을 하고 나는 이래'라고 초점을 두기 위해서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요... 엄마 아빠한테 얘기를 해보고 내가 뭘 원했는지 나에 초점을 두지 않고, 나의 마음이 어떻게 굴러가고 이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는가 이거를 파악하는 데 더 관심을 둔다면 그건 또 의미가 있을 수 있죠.


─......


─자존심과 자존감이 다르듯이, 그게 조금 달라요.

─방금 하신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그래요?


─나는 도대체 어땠길래, '어릴 적 내가 그렇게 애정 결핍처럼 혹은 정서 불안처럼 보이는 손가락 빠는 행위를 계속했었을까?'라는 질문을 부모님한테 하는 게 나를 알기 위한 거 아닌가요?

─알기 위한 거지만, 다른 의도가 있을 수도 있죠. 모르죠 그건.


─그거는... 그러니까 나라는 아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질문일 수도 있고 나라는 아성을 해체하기 위한 질문이 될 수도 있어요. 같은 질문이.


─아... 그렇죠.


─네. 본인의 태도에 따라...

─맞아요. 저는 해체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면 질문이 조금 달라야 돼요. 일단 선생님은 손가락 빠는 게 뭐라고 표현했지 뭐 얼마나 내가 불안했길래 하면서 이미 애정 결핍이라고 단정을 하시잖아요.


─맞아요. 네.


─그런 것도 열어두고 하는 질문이 아니죠. 벌써 아성이 딱 느껴지는 거죠. 당신 때문에 나는 불안하고 나는 애정 결핍이야 라는 전제가 벌써 들어간 거잖아요.


─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걸 발견하기 어렵다는 얘기죠. 칙센트미하이 <몰입> 책에서는...


─그런가요...


─네. 그러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보고 질문을 하면 새로운 게 발견된다. 그 아까 책에서 느낀 중요한 세 가지 얘기하셨는데, 그게 다 같은 말이에요 사실은...



─그럼 어떻게 질문을 해야 돼요?


─이미 원망이 있으신 거죠?


─네... 원망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선생님하고 대화해 보면서 제가 이런 얘기를 어디서도 할 수 없었다 그랬잖아요. 대화를 하다 보니까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거를 빨리 털어내고...


─어 그렇구나.

'내가 지금껏 너무 괴로운데 이제는 더 이상 괴롭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내가 이 얘기를 꺼내서 괴로울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어 대화를 한번 해보고 싶어.' 이렇게?


자! 지금까지 상담한 지 35분 지났거든요. 35분 만에 선생님이 자연스러운 진짜 얘기를 처음 하신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는... "나는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이 많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들이 제가 제가 오늘 두 가지 묻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첫 번째는 내가 남을 탓하는,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를 탓하는'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그거랑 두 번째는 엄마, 아빠한테 솔직하게 내 감정을 느끼면 가 내 생각을 얘기를 해볼까 하는 것도 괜찮을까요? 차라리 그게 제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걸까요?


─일단 해보시죠. 뭐 해보고 엄마, 아빠 반응은 어떤지 잘 관찰해 보시고 또 이야기하면서 내 안에서 어떤 반응들이 오는지 어떤 감정들이 올라오는지 관찰해 보시면서 뭔가가 출발을 하겠죠.


─화가 많이 날 것 같아요. 얘기하면서도 몇 번을 상상해 봤거든요.


─화 좀 날 수 있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렇게 따질 것 같아요. 근데 그러면 또 부모님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입술이 굳게 다물자마자 한때 정말 좋아했던 책 <언어의 온도>에 나왔던 명 문장이 떠올랐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아이고 하하...

─산전수전 다 겪고 30년, 40년째 사시는 부부인데 그거 갖고 뭐 그렇게까지 그럴까요...



농익은 세월에 무심한 듯 말하는 선생님의 반응에 나도 재빨리 하얀색 물감을 덧칠하듯 옅은 미소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가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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