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이혼일기 17화

희망이 없는 결혼생활을 변화시킬 줄 아는 사람

이혼일기, 네 번째 상담 episode 1.

by 검정멍멍이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꼭 얘기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잠깐만요.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종이를 한주먹에 움켜쥐어 꺼냈다.



제가 두서없이 또 얘기할까 봐 메모를 좀 해왔어요.


─두서없이 하시는 게 잘하시는 거예요.

─오늘은 좀 두 가지를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을 가져왔는데...


─제목이 뭐예요?

─"몰입"이요.


─아. 칙센트미하이요?


─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쓴 책. 예전부터 읽어야지 하다가 결국 올해 초에 책을 샀어요.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는 중인데,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스트레스 때문에 약해지는 사람도 있는 반면,
오히려 스트레스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 있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희망이 없는 상황을 통제 가능한 새로운 플로우 활동으로 변화시킬 줄 아는 사람은
1. 자의식 없는 자신감
2. 주변 환경으로의 관심 전환
3. 새로운 해결책의 발견과 같은 변화 능력이 있다.



<몰입> 363 페이지에는 자의식 없는 자신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유난히 이 내용이 풀린 신발끈처럼 계속 신경 쓰였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희망을 찾아서 잘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은 자신감이 있지만 자만심은 또 찾아볼 수 없다. 또 이들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않다."

어쩌면 이 문장에서 말한 사람이야 말로 '오랫동안 내가 정말 원했던 내 모습인 것 같다'라는 생각에 한동안 책의 다음 문장으로 눈을 옮길 수 없었다.


자신의 목표 목표와 의도하는 바만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만이 자신을 더 이상 환경에
대립되는 세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때로는 더 큰 체계를 위해서
자신의 목표를 희생시켜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알고
원하지 않는 규칙을 따라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겸손함이 강한 사람들의 역설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의식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주변 환경에 언제나 깨어 있으면서
그 안에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그게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도 힘을 얻는 사람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런 내용들에서 느낀 바가 참 많았어요.


─네.


─지금의 저는 주변 환경에 깨어있지 못하고 융통성 없이 살아온 지가 오래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고착화 돼서 오히려 문제임을 깨닫고 비로소 바꾸려고 시도하는 요즘인 것 같고... '이 상담 자체가 그런 소중한 기회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오늘 제가 뭐 이런 내용을 말씀드리면서 두 가지를 좀 제가 대화해 보고 싶었는데, 하나는 제가 자꾸 타인을 탓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인이라 하면은 제가 자꾸 원가족을 얘기하면서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것 같은 느낌도 마음 한편에 있는 것 같아서요.


오히려 나보다 엄마, 아빠가 더 힘들었을 텐데 '굳이 이제 와서 과거를 탓하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동시에 부모님께 솔직한 내 상황과 느낌을 얘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오래된 주춧돌처럼 박혀있었다. 20년도 지난 일로 뜬금없이 잘 살고 있는 가족들의 삶에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뭘 하나 싶지만, 그래도 내 속 사정을 이야기해도 될지... 이런 두 가지를 선생님과 대화해보고 싶었다.



커튼을 치고 잠시 주위를 환기시키던 선생님이 돌아와 말씀하셨다.

─조금 안내를 드리면 상담이... 상담 처음 해보시는 거죠?

─네. 그렇죠.


─상담자마다 스타일이 달라요. 어떤 상담자는 인지치료 이런 거 많이 들어보셨잖아요. 지금 선생님이 하시듯이 목표를 명확하게 잡고 의식적인 부분에서 이렇게 같이 협력해서 노력을 시키는 그런 상담이 있어요. 이런 사고방식은 뭐가 문제고 이렇게 딱, , , 딱 해 가면서 하는 게 있고요.
─또 다른 상담은 저처럼 하는 방식이 있죠. 아까 농담이 아니라 '그냥 중구난방으로 이야기하시는 게 잘하시는 겁니다'가 사실 꽤 의미 있는 말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인간의 마음이 형성돼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인 부분이 많아요. 우리는 자신을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죠. 오히려 그런 측면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네.


─그냥 이 얘기했다, 저 얘기했다 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보고 자연스러운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상담은 선생님이 끄집어낸 걸 솔직하게 보는 만큼 효과가 있어요. 또 하나는 우리가 뭘 얘기하는지 모르고 얘기할 때 오히려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얘기를 좀 드리고 싶어요.

─왜, 칙센트미하이가 "목표와 의도의 역설"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자존감을 다루겠어. 나의 부모에 대한 뭘 다루겠어' 이런 식으로, 딱! 정하는 게 오히려 굉장히 시야가 좁아지고 창의적인 길을 발견 못할 수 있다는 말이죠.




─창의적인 거 말씀하시니까 떠오르는 게 있어요. 책에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찾는 과정이 예술가가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하려고 애쓰는 과정과 유사하다면서 화가를 언급했어요.



독창성이 결여된 화가는 마음을 미리 정한 후
끝까지 본래의 의도대로 작품을 완성시킨다.

반면 창의성이 풍부한 화가는
마음속 깊이 느낌은 있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목표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캔버스에 나타난 예기치 않은
색과 형태에 따라 그림을 계속 수정해나가
결국 애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창작품을 탄생시킨다.



─그렇죠.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화가가 예술성이 더 높다...


─네, 그 부분이 딱 와닿았어요. 자꾸 제 스스로 저를 프레임 안에 가둬놓고 이 프레임에 벗어나면은 괴로워하고...

─다른 사람도 그걸로 재단하고...


─네. 재단하고... 그런 내 모습을 바꾸고 싶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거 같고... 뭐 그런 느낌이랄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똑같은 마음이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저를 '에라 모르겠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잖아요.


─자명한가요? 그게?


─그렇지 않나요? 금수저가 아닌 이상...

─이야... 정말 이거는 유튜브에 많이 나오는 그 '갓생' 얘기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중에 너무 몰입된 거 같은데요? 의도, 노력... 등등...


─그런가요? 그런데 "갓생"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얘기하기 전부터 저는 계속 그렇게 인생을 살아와서...

─제가 이런 주제에 대해 엄마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만약 내가 첫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내 연봉은 이제 4천 후반 정도가 됐을 거야. 그런데 엄마, 나는 지금 거의 그때의 두 배를 벌어. 이런 삶을 위해 얼마나 많이 이직했고, 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생각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그만큼 발버둥 쳤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겠지. 옛날 회사에서 한숨 푹푹 쉬던 대리, 과장들처럼 가만히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절대 없었을 거야.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돈이 내 가치를 평가한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닙니다. 요즘은 뭔가 여러 생각이 혼재돼 있어요. 지금까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다 보니 이렇게 마음에 병이 생길 정도로 괴로워진 건 아닐까?

─그리고 주변 사람들조차 나를 무서워하거나 못마땅해야 할 상황들도 꽤 자주 있는 걸 보면... 그러면 '내가 너무 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적당한 선을 넘어서 너무 또 한쪽으로 치우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드는 상황인 거죠.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자기 계발서처럼 교훈을 주는 거는 가급적 좀 멀리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모르겠어요. 저라는 사람이 원래 생겨 먹은 게 이런 건지, 결국에는 이런 어려움도 누군가의 성공 사례를 통해서 다시 한번 힘을 얻고자 하는 생각이 계속 있는 것 같아요.

─네, 괜찮아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그게 선생님한테 익숙한 방식이고 한 번 성공했던 방식이고 그러니까 그게 더 쉬우시겠죠...


─아무튼 그렇습니다. 또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을 드리긴 했는데 너무 억지로 끼워 맞췄던 걸까 싶기도 하네요...


굉장히 호기심과 탐구심이 많은 분인 것 같아요. 알고 싶어 하고 계속 파악하려고 하고 그런 면이 많으시네요.




keyword
이전 16화친구처럼 따뜻한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