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니뇨 Feb 27. 2019

폐공장

 나의 첫 드라마의 메인 세트는 신도시 주변에 위치한 폐공장에 있었다. 그곳은 예전에 비료를 만드는 곳이었다고 했나, 아무튼 화학제품 관련 공장이었다. 단지가 은근 컸고 굴뚝도 여러 개 있었지만 많은 건물 중 사람이 남아있는 건물은 수위실 뿐이었다. 공장 단지는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 바닥은 여러 갈래로 쪼개져있었고, 그 틈으로 자란 잡초의 키가 컸다. 균열이 많아 기울어진 곳도 많았다. 심지어 베이비 콤보 스탠드가 쓰러질 지경이었다. 수평을 잡기가 어려워 수평자와 쐐기가 필요했다. 아마 샌드백도 많이 올렸겠지. 


 세트가 지어진 건물은 여러 곳이었는데, 하나같이 먼지가 수북한 곳이었다. 촬영을 하다 밖으로 나와 숨 좀 돌릴 때면 먼지가 기도를 거쳐 폐로 들어가 폐포 하나하나에 모두 맺히는 느낌이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먼지가 수없이 흩날렸다. 항상 맨손을 선호하던 나는 손바닥 색이 변하는 걸 보고서야 장갑을 꼈다. 형들은 언젠가 꼭 끼게 된다고 했는데 이런 이유였나 싶었다. 


 다들 먼지를 마시며 일하는 것에 익숙한 건지 분주하게 장비를 나르고 세팅을 했다. OK 사인이 들리고 몇 초 후부터 사람들은 참으로 바삐 움직였다.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10씬은 족히 찍으니. 때에 따라 15씬도 넘게 찍는 날이 있었는데, 첫 방영 날짜가 잡히고 더 바빠졌다. 정말 정신이 없어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지경으로 걷고 뛰었다. 30-40명은 족히 되는 스탭들이 하나같이 발을 굴러대니 먼지를 스프링클러로 뿌리는 것 같았다. 입에서 먼지가 씹히기 시작했다. 기온은 한여름이었지만 대기는 잿빛 봄이었다. 


 중간중간 쉬는 짬이 날 때마다 건물 밖으로 나가 침을 뱉고 물을 마셨다. 그 와중에 담배까지 틈틈이 피워댔다. 흡연을 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였는지, 그렇게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날마다 피워댔다. 내가 너무 자주 들락날락하자 형들은 막내가 본분을 망각하고 밖에 나가 숨을 돌리는 걸 참지 못했다. 그들은 누가 먼지 많은 걸 몰라서 안 나가냐며 항상 장비 근처에 있으라고 했다. 점점 입구의 철문은 육중해졌고, 카메라 롤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 세트에 들어갈 때마다 밤을 꼬박 새워 새벽에 끝났던 것 같다. 촬영감독은 크레인에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질 않았고, 우린 콘티도 없이 그와 연출의 요구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맹렬하게 컷을 찍어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소강상태가 되고 그걸 반복했다. 그렇게까지 찍어야 하나 싶었는데, 그렇게 찍어야 어떻게든 분량을 벌어놓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자정이 넘어가고 한 시, 두 시, 세 시가 넘도록 끝나지 않자 비루한 몸은 잠을 요구했고, 앉을 수 없었던 나는 서서 졸기 시작했다. 처음엔 졸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려보고, 찬물도 마셔보고 했지만 다들 그렇듯이 나도 체념하고 졸음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롤이 돌아가는 도중 중심을 잃고 쓰러져 거하게 욕을 먹기도 했다. 쓰러지는 건 싫었지만 쓰러지고 나선 일어나기가 싫었다. 가축들 조차 키우지 못할 바닥에서 먼지를 먹어도 깨어나지 않는 순간 자체가 행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드라마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