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면접관이 되어보니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한 5년 전이었나. 내가 처음 국제기구 면접준비 할 때 느꼈던 어마무시한 막막함은, 사실 요즈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관을 이겨내면 우리 세포는 게으르거나 다행스럽게도 그저 즐거운 추억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삶의 주요한 모멘텀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하려는 편이다. 오랜만에 옛 다이어리를 뒤져 보니, 역시나 지금 생각하는 추상적 어려움보다 그때의 나는 정말 엄청난 막막함 속에서 헤메고 있었다. 새삼 얼마나 어렵게 오늘이 왔는지 잊었던 벅참이 올라온다.
이번에 뽑는 인턴 포지션에 86개 레쥬메가 도착했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통상 인사 부서(HR)에서 '롱 리스팅'(Long listing)을 하고 1차 추천대상을 표시한 후 개별 비즈니스 유닛으로 전달한다. 그러면 해당 팀에서는 이 중 서면시험 또는 면접 대상자를 골라 숏 리스팅(short listing)을 해서 인사부서로 회신한다. 그 뒤 서면 시험(written test), 인터뷰등을 거쳐 최종선발하는 방식이다. 물론 국제기구마다 세부적인 절차는 다를테지만, 조직의 미션에 부합하는 인재를 숙고하여 뽑는다는 자체에서는 저마다 비슷한 접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훌륭한 지원자는 많다. 이 행성에서 엄청난 인재들이 지원했다. 4개국어를 하고 마스터 학위를 마쳤거나 이미 다른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마친 경우도 부지기수다. 매번 느끼지만 과연 내가 그들을 평가할 깜냥이 있는지에 관하여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그들이 보내온 자기소개서를 읽는다. 지원서류들을 꼼꼼히 챙겨 보고 다음 기준들에 부합하는지를 따져 본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응원과 존중이다.
서류평가 단계
먼저 제일 중요한 것은 이 포지션 자체에 대한 경력, 전공, 이해도이다. 인턴을 뽑을 때엔 전공과 방향성을 보고, 고용 직원을 뽑을 때엔 그간 해온 일들을 본다. 레퍼런스 체크는 나중 문제다. 우리팀은 금융범죄팀이기 때문에 금융범죄에 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 기본적인 자금세탁에 관한 이해, 최신 자금세탁 범죄 동향 등에 관한 식견이나 경험이 드러나는 레쥬메는 아무래도 눈에 띈다. 같은 논리로, 어느 부서이든 국제기구에 지원할 때엔 자기 경험 중 당해 부서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부분을 자연스레 드러내 주면 좋겠다. 지원과정에서의 미덕은 겸손이 아니라 선발자로 하여금 자신있게 내 동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말과 글을 준비해 주는 것이다.
인턴 선발이라면 전공이나 배경지식, 사용언어 중심으로 본다. 처음 시작하는 분에게 어떤 경력이 있는가요 라고 묻는것은 왠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서 양심에 찔린다. 그래서 무리하게 경력만을 우선하고 싶지는 않다. 반면 고용이나 회원국 파견 직원을 뽑을 때엔(인터폴 채용방식은 Contract, Secondment, Intern 세 종류) 법집행기구에서의 금융범죄 수사경력이나 자금세탁 관련 전문 경력들을 챙겨본다. 앞으로 함께 일할 동료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건 사실이지만, 해당분야 전문지식이나 경험에 관하여는 아무래도 해박한 사람이 좋다. 내가 가르쳐줄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 분야를 이끌어 갈 사람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제기구 레쥬메를 볼때 가장 첫번째로 '기준 부합성'이다.
꼭 우리 금융팀이 아니라도, 다른 부서나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기본적인 방향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인재가 첫번째 기준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원하고자 하는 부서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내가 만일 선발된다면 무슨 역할이 기대되는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막막할 수 있다. 때론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상당한 경우 오픈소스 검색만으로도 어느정도 사전 준비가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면 1차 서류평가를 통과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서면시험 (경우에 따라)
지원서류가 어느정도 기준에 부합하면 다음으로 서면평가 또는 인터뷰가 진행된다. 서면평가는 국제기구마다 다를 수 있는데 인터폴 금융팀의 경우 자금세탁방지 등에 관한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서면평가를 수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통상 120분 정도 동안 3가지 정도 질문을 주고 그에 관한 답변을 에세이 형식으로 시간 내에 이메일 회신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경력직 고용직원 채용과정에서 출제했던 문제들 중 생각나는 예시로는, "What is Money Laundering", "How we can stop or intercept crime proceeds internationally", "How to investigate Virtual Assets facilitated financial crimes" 등이 떠오른다. 질문 자체는 간단하지만 막상 제한된 시간 동안 짜임새 있는 글쓰기를 하려면, 관련분야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주제다. 하지만 팀의 일상 업무를 이해하고 함께 수행하려면 필수적인 지식이다. 인사부서 HR에 문제를 보내고, 지원자의 개인정보가 가려진 상태에서 답안을 받아 채점하고, 이를 HR로 다시 회신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제출된 답안들은 놀라울 정도의 수준이다. 분량도 유의미하지만 어떤 용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설득력있게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령 관련 분야 전문용어를 사용한다거나, 해당 팀에서 최근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위 사례같은 경우, Placement-Layering-Integration 이라는 자금세탁의 3단계 접근법이라든지, STR, SAR, CDD, travel rule 등 자금세탁방지 용어들을 표현하면 아무래도 눈에 띈다. 미리 정해둔 기준에 맞추어 채점하고 순위를 매긴다. 이 중 일부를 직접 인터뷰할 대상으로 선정한다.
인터뷰
인터뷰에 관한 다양한 전문적인 연구와 견해들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과연 이 분이 우리팀에서 함께 일할만한 동료로서 적합한지를 보는 과정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 동료에 대한 배려, 다른 부서와의 협업의 경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와 그것을 극복해 낸 계기,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경험과 그 이유 및 그로 인한 변화 등 인터뷰 질문들에는 루틴이 있다. '인터뷰이(interviewee)'일때 느꼈던 막연함은 '인터뷰어(interviewer)'가 되어보니 상당부분 해소됐다. 사실 인터뷰 질문들은 어떤 형태로 나오더라도 4-5개로 압축되는 카테고리 안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그 질문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는 질문인지를 짐작하는 것이 첫 단초가 된다. 결국 그 4-5개 카테고리 범주 안에서 기본적인 답변의 방향을 준비하는 것이 스마트한 인터뷰 준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내가 인터뷰어로서 사용한 5가지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다. 내부 지침을 그대로 밝히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요 범주 정도를 소개하면, 그간 살아온 배경과 업무이력(Background or Career), 팀으로 일하는 경험(Teamwork), 매니지먼트 스타일 또는 매니지먼트에 바라는 점(Management), 선발 직위자체와 관련한 경험 또는 스킬(Technical and specific to the position), 소통(Communication) 등이 있다. 예를 들면 각 카테고리별로 여러 유형의 파생질문들이 가능하다. 가령 팀웍과 관련해서는, "좋은 팀을 만드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른 팀과 협업한 경험이 있나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팀 동료가 있었나요, 그렇다면 그 경우 어떻게 대처하였나요", "스스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요, 그렇다면 독립적 또는 팀플레이 중 어느 방식을 선호하나요", "국제적인 환경에서 근무하기 위해 어떤 준비 또는 경험을 하였나요" 등과 같은 질문들은 모두 팀웍 카테고리 안에 해당될 수 있는 질문들이다. 따라서 카테고리 별로 기본적인 답변을 준비하면 비슷한 질문 유형들에 대하여는 준비된 공통 답변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패널들이 추가질문을 하는 등 반드시 예상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기본적 범주를 설정하고, 그 방향성에 관한 기본 답안 중심으로 준비한다면 어떤 유형의 질문이 나오더라도 그 안에서 응용해서 답변하기가 용이하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나요
전문가 면접은 상호 평가다. 일방적인 질문과 답변 뿐만 아니라, '인터뷰이'가 패널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내가 참여했던 인터뷰 패널에서는 대부분 준비했던 질문들 말미에 "끝으로 더 하고싶은 말이나 질문이 있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지원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동시에 준비했던 질문지 이외에 대상자를 평가할 수 있는 추가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현명한 지원자라면 만약 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백지수표처럼 활용하면 좋겠다. 통상 면접에서는 준비한 부분을 모두 보여주기 어렵다. 면접관이 질문했던 부분 이외에도 지원자가 어필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서 마지막까지 주어진 기회에 충실하면 좋겠다. 예를 들면 "만약 제가 여러분과 함께 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은지 조언해주실 부분이 있는가요"와 같은 코멘트도 괜찮다. 듣는 이로 하여금 이미 지원자를 팀의 동료로 전제하고 생각하게 하는 질문 유형이기에, 만일 면접 결과가 49%와 51% 사이에 위치하던 경우라면 예기치 않은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너무 구체적인 근무 조건이라든가, 또는 종교 인종 정치 등 짧은 시간동안 토론되기에 다소 논쟁적인(controversial) 주제는 피하는 것이 낫다.
패널들도 바쁘다
인터뷰 패널을 모집하려면 대략 한달 이상 기간을 두고 일정을 조율한다. 인터폴의 경우 선발하는 보직에 따라 약 3~5명의 인터뷰 패널을 구성하는데, 다양성에 관한 규정이 있어 대륙, 인종, 성별 등이 치우치지 않도록 알맞게 배치한다. 그러다보면 인터뷰 일정 자체를 잡기가 난망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마침내 인터뷰가 성사되었을때, - 다른 미팅들에서도 마찬가지이듯 - "오늘 제 인터뷰를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해요"라는 정도의 코멘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는 동양 문화의 겸손 보다는 에티켓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하지만 겸손은 인터뷰의 미덕이 아니다. 잘 하는 것은 잘한다고 제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지원자들을 이 지구상에서 처음 만났다. 지원 서류로만 보던 분을 직접 대면하게 되어 패널들도 설레고 반갑다. 부디 왜 우리들이 당신과 함께해야 하는지 설득해주면 좋겠다. 국제사회 앞에서 당당한 지원자가 멋져 보였다.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미국 유학경험도 있고 학위까지 받은 동양권 지원자가 "영어는 제가 조금 미숙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면접을 마치고 패널들이 평가할때 언어능력을 중간 정도로 평가했던 적이 있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선택하는 워딩들이 인상을 결정한다. 그 지원자는 영어를 무척 잘했다.
세상 모든 인터뷰이 그리고 인터뷰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행운이 함께하기를 빈다. 2022년 4월
** 표제 사진은 2021년 11월, 동아시아 법집행기관 동료들이 한국에 모여 일정을 마친 뒤, 네트워킹 시간 중에 '오징어 게임' 복장.
https://www.yna.co.kr/view/AKR2021111514040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