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의 흔적을 찾아서 (전라남도 강진군)
우리나라가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만세 시위를 했던 역사적 기념일인 3월 1일. 저는 한 역사 인물의 흔적을 찾아 목포를 떠나 강진으로 향했어요. 강진에는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의 유배지이기도 하고, 다산초당에서 많은 제자들과 책을 저술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흔적을 찾아 떠난 것이에요.
강진 버스터미널에서 농어촌 버스를 타고 다산초당으로 향하였어요. 농촌은 봄날을 준비하듯 녹색의 모습이 많이 보였으며, 꽃들이 펴 있는 모습도 보였지요. 하지만 이 날은 강풍이 심하게 불었어요. 강풍주위보라는 메시지도 와 있었으니 말이에요.
먼저 다산 박물관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정약용 선생의 일생과 책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다산은 정약용 선생의 다른 이름(호)인데, 차 나무로 가득한 산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정약용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알려주고, 그와 관련하여 저술한 책들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가 남긴 책들만 해도 500여 권에 달한다고 해요.
특히 다산초당에서 많이 저술하였다고 하는데, 정약용도 열심히 연구하고 책을 썼지만, 그의 제자들도 , 그리고 강진에서 인연을 맺은 제자들도 힘껏 도왔다고 하네요. 503권의 저작을 남겼다고 하는데, 이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네요.
법, 경제, 사회, 수사, 기하학, 농업, 건축,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해서 책을 저술하였어요. 그리고 형인 정약전에게 안부를 주고받은 글, 부인인 홍혜완이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주고받았던 편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적어 시집간 딸에게 선물했다는 사실을 통해 정약용은 가족 또한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천주교와 관련된 집안이라, 일찍이 서양문물과 학문(서학)에 관심을 갖고 받아들여, 배다리 건설, 수원화성 건축을 담당했던 정약용. 정권이 바뀌자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이곳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제자들과 대화하고, 차를 마시고, 천일각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정약용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2024년 3월 1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