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권리 1.

선진 시민의식을 기대하며

by 곽희성

습관처럼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가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 간다.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는 기본이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은 호사스러운 덤처럼 따라온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통로 양쪽에 시동을 켠 채 서 있는 여러 대의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편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오래 공회전을 하는 차량을 볼 때마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라는 두 가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늘 그랬듯이 애써 무시하고 산책길에 올랐다.


약 1시간 30분 후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전히 세 대의 차가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처음으로 그들—운전이 직업인 사람들—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그들의 본업은 운전이지만, 대부분 고용인이 상당히 연세가 있는 탓인지 어딘가 집사처럼 고용인을 보조하는 역할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한데, 저기 공회전 금지 표지가 있습니다. 지나는 다른 주민들을 위해 시동을 오래 켜 두는 건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미안합니다.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하는 사람,

“알았어요.”라며 퉁명스럽게 창문을 올리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라며 인상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을까?


오래전에 보았던 The Remains of the Day, 그리고 그 영화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보여준 높은 직업의식과 품위가 떠올랐다.

그런 사람들을, 이 시대의 한국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절대로 안 된다”라고 인상을 쓰며 사라지는 사람과는 과연 어떤 논쟁이 가능할까. 결국 나는 그의 고용인 집을 확인한 뒤 인터폰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다른 주민들의 쾌적한 아침을 위해, 오랜 시간 시동을 켜 두는 일은 자제해 달라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과 부딪히며 살 수는 없다.

매일 아침 정중하게 부탁할 수도 있고,

관리사무소에 항의할 수도 있으며,

주민 투표를 통해 규정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일부터는 아파트 정문이 아닌 다른 출입구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 아파트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만든 또 다른 출입구가 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쪽으로 나가면 예쁜 정원을 지나 흙길을 걸을 수 있다. 흙길을 걷는 일 자체도 충분히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 남는 작은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딪히기 싫어서, 피곤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계속 피해 가기만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과연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런 쓸쓸함이 밀려오는 것을, 애써 외면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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