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by 곽희성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면 이 책 “클라라와 태양”이 많이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지루하지 않게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은 아니다.

“클라라와 태양”은 작가의 전작인 “나를 보내지 마”와 연결이 되어있고,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영화 “아일랜드”가 보여주는 세계와도 닿아 있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새로운 모티브를 끌어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고, 그런 이유로 성공적인 전작의 연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의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보내지 마”와 “아일랜드”에서 주인공들(과연 인간의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사육되는 그들을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은 오직 신체적 기능을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존재인 반면, 클라라는 거의 완벽한 기계인간으로 만들어져서 AF(Artificial friend)라고 불리며 인간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한다.

학습능력과 현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며,

어떤 면에서는 세속에 전혀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클라라를 소유한 진화한 인간 소녀 “조시” 보다 더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조시”는 우여곡절 끝에 클라라를 구입한 소녀 즉, 클라라의 주인이자 친구이다.

“조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향상된 인간으로 묘사되는데, 작가가 구현하는 미래 세계의 인간은 만들어진 AF와 타고난 그대로의 평범한 인간,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향상된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향상된 인간은 어떤 이유인지 건강상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단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 “조시”의 언니가 그런 경우로 그려진다.

마치 16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에서 우수한 혈통의 보존을 위해 근친을 반복하다 자멸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인다.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는 명목상으로는 딸인 “조시”를 위해 클라라를 구입했지만 진짜 목적은 “조시”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딸을 대체할 목적(크리시 자신을 위한)으로 구입하여 “조시”와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도록 학습을 시킨다는 반전이 꽤나 신선하다.

물론 존재의 이유가 입력된 클라라의 눈물 나도록 맹목적인 헌신으로 “조시”는 건강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당연히 클라라의 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지만 본인의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매장 쇼윈도에 디스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면을 마련해 놓으려 한다는 것, 또 그 순간이 지난 다음에 그런 일시적 모습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


조시가 자신과 단 둘이 있을 때와 다른 여러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자신을 대하는 행동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조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한다.


클라라의 놀라운 학습과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단면이지만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단면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인간이 고난을 이기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내면의 능력이나 외부의 불확실한 어떤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사랑의 힘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불리는 ”우리들 “, ”멋진 신세계“ 그리고 ”1984 “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은 국가의 계획에 의해서 공장에서 인간을 생산하고 통제된 공간에서 그들의 정신과 행동을 감시하는 것인데, 당시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이상적인 세계가 과연 행복한가?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는 것은 이 정도가 전부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이야기의 현대판 미래 세계를 구현했다고 본다.

단순히 인간의 신체를 대체하기 위한 존재에서 더 나아가, 외롭고 결함이 있는 인간의 친구가 되는 피조물의 잔인하고 억지스러운 이야기이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일부러 찾아서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나에게 책은 문장으로 기억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계를 창조하거나 복잡한 사건의 연속보다는,

지금까지 누구도 표현하지 못한 인간 내면의 감정을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내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영희 교수님이 번역한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의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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