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소소하게 삶을 돌아보다.

by 곽희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독 가족을 읽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각자의 역할, 할머니와 엄마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로 살아간다는 설정이 신선하다.

그리고 그들의 생계 수단이 좀도둑질이라는 것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서인지 읽기 편하고 페이지도 잘 넘어간다.

많은 일본 소설이 그러하듯 가볍지만 참신한 소재로 부담도 큰 기대도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런 그들에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5살 소녀 유리가 합류한다.

엄마 역할의 노부요는 한 번에 유리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보다 자신이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 판단한다.

물론 유리도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유리의 친부모도 그 아이를 찾지 않았다.


오랜 학대로 인해 온몸이 상처 투성이인 유리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같이 살고 있는 오빠 역할의 쇼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노부요는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죄의식 없이 남의 물건을 훔치며 살아가는 자신에게 면죄부가 있다고, 세상이 그녀에게 행한 많은 악행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다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유리 같은 아이가 있으니 자신의 결점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내가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결국은 나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었다.


좀도둑 가족 구성원 모두는 각자의 아픈 이야기가 있다.

“린”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유리를 보호하기 위해 오빠 쇼타는 일부러 경찰에게 붙잡히고, 그 일로 좀도둑 가족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다.

그들 모두를 심문하는 경찰 앞에서 노부요는 모든 책임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피를 나눈 가족의 무관심과 차별과 폭력의 희생자들이 모여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법의 심판을 받을 일인가?라고 노부요는 속으로 말한다.

우리가 그런 이유로 벌을 받는다면 그들을 버리고 학대한 사람들은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도 속으로만 말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고, 내면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오직 겉으로 보이는 사실을 기준으로 그들을 벌하려는 경찰에게 엄마 노부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노부요는 감방에 수감되고 나머지 가족은 새로운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린 “은 본래의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 학대를 받기 시작하지만 ”아니요. “라고 말할 용기가 생기고, 보호시설로 들어간 쇼타는 아버지 역할의 ”오사무“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그가 지신이 바라는 진짜 아버지임을 인정한다.


난간을 잡은 린의 손끝이 시렸다.

쓰레기장 옆에 작은 눈사람이 있었고 누군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린은 난간 밖으로 몸을 쑥 내밀었다.

시선 끝에서 무언가 들어왔다.

린은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불러봐.

소리 내어 불러봐.


그들에게 밝은 빛이 드리우는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는 끝난다.

읽기는 쉬웠지만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의 플롯을 정하고 인물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를 제시하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다른 소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와도 닮아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이 혈연도 시간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함께 했다고 반드시 소중한 관계가 아니고, 5분도 안 되는 짧은 대화를 통해서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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