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도 큰 오피스 막장 드라마
“Again! One, two, three, four! One, two, three, four! Again!” ("다시!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다시!")
데비가 내 코앞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시작한 지 겨우 오 분이 지났을 뿐인데,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땀이 가슴골을 타고 내렸다. 대체 어떤 자학적인 싸이코가 '버피' 같은 동작을 생각해 냈을까? 아니, 대체 왜 나는 데비가 뚱뚱해서 나보다 운동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잘하는 건 숨쉬기 운동과 걷기뿐인데, 정작 데비가 왕년에 해병대였다는 건 새까맣게 잊은 채 점심시간에 운동을 해서 일단 살을 빼자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데비는 좋아하면서 찬성을 했고 내쉬빌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점심시간에 20분간 회사 짐에서 운동을 하고 20분 걷는 루틴을 시작했다. 걷는 건 운동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 데비에게 나는 초보라 이렇게 운동하면 즉사할 수도 있다고 위협해서 타협한 거였다. 데비는 한심한 듯 나를 쳐다봤지만 자신도 운동 안 한 지 너무 오래라 자신이 없었는지 동의를 했다.
짐에서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죽을 맛이었지만, 그녀와 근사한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는 우리 회사 주변을 도는 건 즐거웠다. 커다란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서 땀에 젖은 내 몸을 시원한 바람으로 말려주었고, 흙내음, 나무 내음이 물씬 나는 그 길은 혼자라면 무서울 수 있었으나 거구의 데비와 함께여서 마음 놓고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생각지 못한 이점이라면 그녀는 의외로 재미있는 대화 상대였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그녀는 웬만한 사내 가십은 다 꿰고 있었다.
“You know, I was at the office this weekend trying to catch up on work.” ("내가 말이야, 이번 주말에 오피스에 나와서 밀린 일처리를 하고 있었거든.")
내가 말을 꺼내자 데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느췄다.
“Didn’t expect anyone else, but Katie was there. I’ve barely seen her at her desk, so I don't really know if she ever works. But I guess she does work hard seeing that she’s coming in on weekends.”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케이티가 오피스에 있더라고. 늘 자리에 없으니까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 몰랐는데, 주말에도 오피스에 나와있는걸 보니까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나 봐.")
“Hmm...” 데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소리를 냈다.
“And then I saw something strange. Bill, you know, the CEO, right? I’ve barely seen him at the office over the years. But there he was, on a weekend, and he brought two massive German Shepherds. They came charging out of his office barking their heads off when I came to my cubicle. I almost had a heart attack. But then Katie calmly opened her drawer and pulled out dog biscuits. Like she knew they were coming. How would she know that?” ("그런데 좀 이상한 걸 봤어. CEO 빌 말이야, 내가 여기서 일한 지 몇 년째인데 그를 오피스에서 본 건 손가락에 꼽거든. 그도 주말에 오피스에서 일을 하더라고. 그런데 황소만 한 저먼 셰퍼드 둘을 데리고 왔어. 내 큐비클로 들어오는데 그 둘이 짖으면서 그의 오피스에서 달려 나오는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케이티가 자기 책상 서랍을 열더니 개 비스킷을 꺼내는 거 있지. 케이티가 아니었으면 물렸을지도 몰라. 케이티는 어떻게 그 개들이 오피스에 올 거라는 걸 알고 대책을 세웠을까?")
“That’s because she’s Bill’s mistress. Those dogs know her. They were barking at you” ("그거야 케이티가 빌 정부니까. 그 개들은 케이티를 알지. 너 때문에 짖은 거야.")
데비가 경멸 어린 어조로 비웃으며 말했다.
“What?” (뭐라고?)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You didn’t know? When Bill sold the company, one of the conditions was that Katie’s position would be protected. Katie was a high school drop out waitress when they met but Bill paid for her college and helped her rise all the way to finance manager. Oh, he also paid for her new boobs.” ("몰랐어? 빌이 이 회사를 창업하고 키워서 지금 우리 회사에 팔았을 때 조건 중에 하나가 케이티 자리를 보장해 준다는 거였어. 대학 졸업장도 없는 웨이트리스를 7년에 걸쳐 대학에 보내주고 겨우 파이낸스 매니저까지 올라오게 도와준 게 빌이야. 아참, 가슴 성형수술도 해줬지.")
데비는 킬킬 웃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Have you ever actually seen her do any work?” ("케이티가 제대로 일하는 거 본 적 있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내 보스 하는 일을 다 일일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당연히 뭔가 내가 모르는 걸 하고 있겠거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Katie’s taking credit for everything you are doing. That’s why they hired you. Someone actually has to do the job.” ("네가 하는 일 다 케이티가 생색내고 있을걸. 그래서 널 뽑은 거야. 누군가 케이티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해야 하니까.")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뭐라고 말도 못 한 채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Does Niles know?” ("나일즈도 알고 있어?")
데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Are you kidding? Niles was part of the deal. Bill brought him in when he sold the company, promised him the CFO role. He’s the one who structured the entire finance and accounting org to make this all work.” ("농담해? 빌이 이 회사를 팔면서 CFO 자리를 약속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게 나일즈야.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걸 다 커버하기 위해 파이낸스하고 어카운팅 조직도를 이렇게 세우고 지휘해 온 게 나일즈라고.")
나는 머리가 띵 해져오는 걸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데비를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피스로 돌아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일즈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도무지 생기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