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나를 오래 보아온 마음이 꺼내준 따뜻함
이별 뒤에는 오래도록 공기 속에 남아 있는
잔향처럼
내 마음에도 묵직한 적막이 머물러 있었다.
사람을 다시 믿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웠던 마음이
조용히 부딪혀 반짝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무렵, 한 아이가 내 일상에 들어왔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사람.
처음엔 그저 대화를 잘 들어주는 동생 같았고,
내 마음이 닿기엔 너무 멀고 어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사람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을 때면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고,
내가 끝까지 말할 수 있도록
조용히 마음을 비워두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
전 남자친구는 마음보다 앞서가는 사람이었고,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말 사이의 숨 결까지 놓치지 않았다.
사람에게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연인 사이에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믿는다.
그 점에서 그는 더욱 선명했다.
작은 일에도 고마움을 표현했고,
상대가 불편해질까 늘 먼저 배려했다.
그런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나이에 보기 어려운 다정함의 결이었다.
사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아이,
멀리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사람이었다.
내가 이별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나는 좋은 사람인데…
그 힘듦에서 얼른 꺼내주고 싶었어요.”
그 말은 가벼운 동정이 아니었다.
오래 나를 지켜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심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 오래 굳어 있던 부분이
살며시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때때로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짊어지려 했다.
작은 일에도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했고,
누군가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끝까지 자기 탓으로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아렸다.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 혼자 쌓여 있었을까 싶어서.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말을 꺼냈다.
“네가 나라면 생각해봐.
그 상황에서 나를 탓했을 것 같아?”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주 천천히, 확실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고개 젓는 모습을 보고
조금 더 부드럽게, 마음을 얹어 말했다.
“봐, 너라면 나한테 절대 그렇게 얘기 안 했을 거야.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 자신에게도
그 정도는 말해줘도 돼.
너 혼자 다 안아도 되는 일 아니야.
조금은… 너를 가볍게 해도 괜찮아.”
그는 그 말을 오래 붙잡았다.
마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자기 자신에게 향한 따뜻한 면제를 받은 사람처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서 부족한 걸을
부드럽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렇다고 이 감정이
곧 사랑으로 이어질 거라 확신할 순 없다.
연인으로 이어지기엔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걱정되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관계든 괜찮다.
우정이어도 좋고,
지금처럼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관계여도 충분하다.
그는 내게 새롭게 다가온 사람,
이별이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사람,
마음의 온도를 다시 느끼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 단이가 준비한 작은 선물 —
아깽이 단이 시절을 담은
작은 스티커 이벤트를 진행 중이에요.
참여 링크
https://brunch.co.kr/@fd2396b57b014f3/112